우리의 연대는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투쟁이다
『미드나잇 레드카펫』에 수록된 여섯 작품은 모두 ‘여성’ 인물을 중심으로 서사를 이끌어간다. 「마법소녀, 투쟁!」에서 마법소녀들은 목숨을 걸고 괴물에 맞서 싸우지만, 시민들은 마법소녀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히어로’라면 응당 희생이 따르는 것 아니겠느냐고 묻는다면, 이미 우리가 목격해온 많은 ‘히어로’들이 있기에 수긍할 수 있겠다. 그러나 마법소녀들에게 짧은 치마나 딱 붙는 유니폼을 입히고, 괴물이 공격하는 긴박한 상황에서조차 아름답거나 예쁜 장면을 기대하는 대목에서는 이 또한 히어로가 마땅히 감내해야 하는지 반문하게 된다. 특히 마법소녀에서 은퇴하면 또 다른 마법소녀를 낳기 위해 결혼을 해야만 한다는 그들의 삶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역할과 책임을 강요당하는 우리 현실과 직결된다. 이러한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찌찌레이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어느 근미래, 여성들은 순수 혈통의 인간을 낳고 영양소가 풍부한 모유를 공급해야 한다는 이유로 ‘인공 가슴 이식수술’을 받는다. 소설 속 남성들은 더 건강한 몸을 위해 인공 장기나 신체로 교체하면서도, 여성은 ‘임신’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며 제대로 된 약조차 처방해주지 않는다. ‘임신’이 하나의 성에 국한된 필수적 책임인 듯 강요되는 이 불편한 설정이 성별에 따른 차별적 역할 부여가 여전히 만연한 우리 사회를 연상케 한다는 사실이 꽤나 안타깝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하는 수난은 「이달의 네일」과 「앨리스 인 원더랜드」에서도 이어진다. 하루아침에 미세먼지 인간으로 변한 「이달의 네일」의 ‘하늘’은 몸이 바스라지고 방 안이 먼지로 가득해지는 순간을 맞닥뜨린다. 그러나 ‘하늘’은 옆에서 자고 있는 ‘언니’를 깨울 수도, ‘미세먼지 인간’ 변이자를 찾는다며 아파트를 휘젓고 다니는 경찰 앞에 나설 수도 없다. ‘하늘’이 어떤 선택을 하든, ‘언니’와 동성 연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사회가 규정한 ‘평범’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늘’은 ‘소수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앨리스 인 원더랜드」는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여왕’과 ‘하트 잭’ ‘앨리스’ ‘체셔’ 등의 익숙한 캐릭터를 불러내 새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동화에서는 남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여왕’의 잔인하고 악랄한 모습이 주를 이루었다면, 김청귤의 소설에서는 ‘여왕’임에도 불구하고 ‘여’왕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회의 모순을 다룬다. 나아가 능동적으로 삶의 주체가 되기를 선택한 ‘앨리스’가 ‘여왕’의 ‘주체성’ 역시 되찾기 위해 노력하며 성장해가는 과정은 여성들의 ‘아름답고 우아한’ 투쟁의 길을 보여준다. 반면, 작가는 또 다른 ‘여성’ 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개인으로서, 그리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를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