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쓰는 일, 잘 노는 일
2023년 5월 28일, 우리 다섯은 어떤 힘에 이끌려 탐탐시시(耽探時詩)라는 나무 아래 모여 앉았다. 처음에는 詩를 읽고 쓰는 일, 詩를 만나고 찾아가는 일을 하자고 모였으나, 어쩐 일인지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노는 일에 더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명확했으나 그 끝을 알 수 없으니, 다들 몸으로 詩를 읽고 쓰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하기야, 사람이 사람을 만나 어울리고 물들고 물들이는 일이, 놀고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고 노는 일이 무슨 대수랴!
저, 저기 조수리 사는 대인 씨는 살사 춤꾼이라 흥에 겨울 것 같드만 살펴보니 소심하기 이를 데 없을 뿐 아니라, 혼자 노는 데도 너무 정통하여 가는 길이 옳은지 그른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런저런 가던 길 쭉 가느라 괜히 바쁘더라.
하, 엄살떠는 일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선 씨는 엄살도 엄살이지만 오지랖은 물론이거니와 배포는 그보다 더 커, 이게 무어야? 이게 무어야? 맘만 먹으면 사내 서넛은 잡아먹고 느긋하게 나무 그늘에 앉아 이쑤시개 들 여인이더라.
이, 이 봅세! 새침한 듯 섬세한 우리 지영 씨는 어떻고.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갈 여인이라. 뒤돌아서는 사내 돌려세워 멱살잡은 일 숱할 것이며, 멱을 잡기도 전에 뱉어낸 숱한 언어가, 그 말들이 사내뿐 아니라 세상을 들었다 놓을 지경이더라.
거, 늘 앞서니 뒤돌아보고 다시 돌아와 둘러보며 남 챙기느라 정작 자신은 못 챙기는, 재주가 많아도 너무도 많아 넘치고 넘치다 못해 흘러넘치는 한준 씨는 그저 주워 담을 일이 더 걱정이라. 급기야 그 걱정까지 집어삼킬 태세니 더 걱정인 사내더라.
여하튼, 하여튼, 아무튼 ...
초록은 동색이거나 근묵자흑近墨者黑 일지라도 이를 어쩌나? 나는, 나는야 아직 물들고 물들일 채비도 되지 않았거늘.
2024년 2월 10일
제주 예촌 [열권의 책방]에서
열책지기 이 순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