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문
‘들 풀’이다.
시인 임규상은 “들 풀”이다. 필명 그대로 어떤 수식이 필요없는 날것이다.
젊은 날 맑은 정신 놓쳐걸인으로 유랑하던
어느 여름밤 들길 지나다
색정 못이긴 낯선 사냐놈이
둠벙가에서 씨를 심어
그 씨 영글어
동네 어귀 상여 집에서
짚 가마니 깔고 날 낳아둠벙가에서 씨 받았다고
울 엄니 둠벙에 나도 둠벙에
…
- 「둠벙예」 부분
이보다 더 날카롭고 생생하게 삶의 바닥을 짚어내는 언어는 없다. 그 날것이 뽑아내는 시어는 독자의 심장을 후비는 예리한 칼날이다. 들플의 모체는 대지다. 그 어떤 인위적 손짓도 배제한다. 시인은 여순사건 그 혼란의 시기에 아버지를 잃었다. 그로인한 생은 어쩔 수 없는 야생의 들 풀이다.
첫새벽 꽁보리 방아 허기진 배
시장기 못이고 동여맨 허리
꼬깔모자 갈퀴나무 칼바람 엄동설한
냉골 아랫목 한숨이 서리어 서리고
긴긴 동지섣달 부엉이 우는 밤
배겟머리 적시어 눈물짓던 이여 …
- 「울 엄니」 부분
그 절절한 사모곡은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는다. 도 깊은 지성이 심장을 저격한다. 홀어머니의 삶이 그를 시인으로 이끌어 낸 것인지도 모른다.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난 자리 그대로 숙명으로 살아가야 하는 들 풀 그렇게 시어도 야생이다. 그 날것의 날카롭지만 가볍지 않는 품격을 갖춘 “들 풀의 시”가 독자의 정서에 충족을 주리라 믿는다.
- 이기현 시인
임규상 시인의 첫시집 〈시들지 않는 꽃 그 향기〉는 매우 거칠고, 우직한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시인은 고향인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지금도 그 곳에서 삶을 영위하면서 고향을 지키고 있는 향토시인이다. 더구나 그는 지역 정치를 감시하며, 지역 발전을 위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는 지역 재야활동가이기도 하다. 특히, 광주 5.18관련 단체를 활동하면서 오월문제를 시로 쓰기도 하고, 희생된 영령들의 원혼을 풀어주는 작품을 발표하고 있기도 하다. 한마디로 그는 향토시인이면서 민중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시인은 지척에 사는 고향 동리 주민들 특히 여성, 이웃아줌마, 할머니 등을 대상으로 한 시들이 많이 읽힌다. 아마 이는 자신을 길러 낸 어머니를 모티프로 한 작품을 비롯 누이, 담넘어 아줌마, 홀로된 이웃 여성 등의 연민어린 사정을 직설화법으로 시를 통해 그려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임규상 시는 민중시인, 또는 리얼리즘시인으로서 당당하게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진정성있는 시인으로 평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