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소년 올리버의 험난하고 진진한 모험담
지극한 비참에도 훼손되지 않는 영혼
영국 어느 소도시에서 한 아이가 태어난다. ‘올리버 트위스트’로 이름 붙여진 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되어 구빈원(영국 국교의 행정단위인 교구의 책임 아래 극빈자들을 반강제적으로 수용하는 곳, 옮긴이주)에서 자란다. 그는 갖은 수모를 겪고 고향을 떠나 무작정 런던으로 향하고, 우연히 페이긴 영감을 필두로 하여 소매치기를 일삼는 무리에 흘러들어간다. 그리고 페이긴 일당에 의해 신사 브라운로우의 손수건을 훔친 도둑으로 몰리게 된다.
올리버는 따뜻한 심성을 가진 브라운로우 덕분에 누명을 벗고, 소매치기 무리에서 벗어나 보살핌을 받는다. 그러나 이내 다시 뒷골목을 전전하는 사익스와 낸시에게 납치되어 페이긴 일당에게로 돌아가고 만다. 올리버는 도둑질을 강요당하는 상황에서도 특유의 올곧고 맑은 천성으로 끝까지 저항하고 총상을 입은 채 메일리가에 의해 발견된다. 메일리가는 그를 거두어 온정 어린 친절을 베풀지만, 올리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더 큰 범죄와 그를 향한 모략이다. 흥미진진하다 못해 파란만장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올리버 트위스트의 유년기 모험담은 그의 투명한 성품으로 인하여 거듭되는 역경 틈에서도 꺼지지 않는 빛을 발한다.
계층을 종단하여 탐조하는 인간 본성의 집약체
범죄와 부조리를 넘어서 승기를 잡는 선의 원리
1837년부터 『벤틀리의 잡지』(Bentley’s Miscellany)에 연재된 『올리버 트위스트』는 발표 직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고난 속에서도 때 묻지 않는 어린 올리버의 고결한 성품과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그의 역경은 계급에 관계없이 독자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다음 편을 기다리게끔 만들었다. 19세기 런던 거리의 명암에 대한 거리낌 없는 고발과 더불어, 평생을 비참하게 살아왔음에도 특유의 영민함과 마음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애정으로 올리버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낸시의 희생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디킨스는 유년시절 악화된 집안 형편으로 인하여 구두약 공장에서 혹독한 노동환경을 몸소 체험한 바 있다. 그는 어린 올리버에게 가해지는 가혹행위와 굶어 죽는 하층민의 곤궁함을 구체적으로 그리는 데에 심혈을 기울이며, 1834년 영국 의회가 제정한 신(新) 구빈법을 강하게 비판했다. 새롭게 제정된 구빈제도는 공리주의에 입각해 빈민을 게으른 사람들로 분류하고 이들에게 최저생계임금 미만의 구호만을 지원해야 한다는 이념하에 도입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중간 관리자의 횡령과 폭력은 빈민 착취의 구조를 체계화했다. 디킨스는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구빈원을 주된 배경으로 삼아 일꾼에서 말단 교구 관리, 교구 이사에 이르기까지 계층을 가리지 않고 풍자하여 당대 구빈제도와 사법제도의 허상을 낱낱이 폭로했다. 막을 틈 없이 새어 나오는 조소 끝에는 씁쓸하면서도 속 시원한 뒷맛이 감돈다. 이와 같은 사회소설적인 면모는 런던 뒷골목의 생생한 묘사나 낸시의 입체성과 더불어서 범죄소설의 요소를 강화하여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단행본 서문에서 디킨스는 “어린 올리버를 통해 선의 원리가 온갖 역경 속에서도 살아남아 끝내 승리하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10면)고 밝혔다. 이 세대에 선이 이토록 선명하게 승리하는 이야기는 드물다. 절대적인 선악 구분이 사라진 시대에 출간된 지 200년을 향해 가는 이 작품은 어떠한 맥락에서 현재와 공명할 수 있을 것인가. 올리버는 숱한 고난 앞에서도 친구 딕의 진심 어린 축복, 브라운로우가의 살뜰한 보살핌 그리고 메일리가의 다정한 환대를 마음 깊이 새기고 살아간다.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바로 그런 기억들이다. 깊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애정과 응원이 서로를 지탱하고 연대하도록 하는 힘이 된다는 사실은, 『올리버 트위스트』를 집어 드는 지금 여기의 독자들에게도 변함없이 굳건한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