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의 꽃 소식이 찬바람에 실려 오지만 내 고향 북녘의 산과 들은 하얀 눈 세상일 것이다. 꿈결에도 그리워 눈물짓는 어머니의 묘소에도, 불쌍하게 눈을 감은 누나와 쌍둥이 형들, 동생들의 봉분에도 하얗게 눈이 쌓였을까? 그래서 썼다. 가슴을 짓누르는 아픔을, 그리움을, 슬픔을…. 눈물을 삼키고 입술을 깨물며 써 내려갔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장영진 저자의 장편소설 『영재 이야기』는 ‘영재’라는 인물의 한 생애를 조명하고 있다. 주인공의 출생부터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던 유소년 시절, 소꿉친구인 ‘형식’과 ‘선철’과의 우정 그리고 ‘선철’을 향한 남다른 감정, 여자같이 곱상하게 생긴 외모에 어딜 가나 예쁘다는 말을 들었던 청년시절에서 아내 ‘미라’와의 결혼생활까지. 유복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순탄하게 굴러가던 인생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재일동포 종철이와의 대화에서 영재는 “난 이 땅이 왜 점점 싫어질까? 모든 걸 벗어 버리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날아가고 싶어.”라는 말을 한다.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그의 운명이었을까?
그는 결국 사선을 넘어 남한으로 향한다. 중국에서의 고된 노역과 대사관에서의 숱한 거절로 인해 좌절되었던 남한행은 결국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 죽기 살기로 38선을 넘은 시도 끝에 성공한다. 그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 번뿐인 인생, 자신의 온몸에 칭칭 감겼던 쇠사슬을 풀고 자유롭게 밤하늘을 날고 싶다는 갈망일 것이다. ‘미라’와의 결혼 생활에서 자신이 평탄치 않은 삶이란 걸 깨닫게 된 영재는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자기 자신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집을 나오게 된다.
나는 『영재 이야기』의 ‘영재’와 ‘선철’에게서 「브로크백 마운틴」의 ‘잭’과 ‘에니스’를 보았다. 마음의 과녁에 꽂힌 대상을 비껴갈 수 없는 없는 맹목의 그리움을 보았다. 눈먼 그리움은 필연적으로 심연의 외로움에 이를 수밖에 없을진대, 『영재 이야기』의 ‘영재’로 하여금 북을 떠나 중국 대륙을 떠돌게 만들었던 것도, 다시 두만강을 넘어 휴전선으로 남하하도록 몰아붙였던 것도,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도저한 외로움이었으리라.
- 정길연(소설가)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며 남한으로 넘어온 ‘영재’가 이제는 자신답게 살 수 있는 삶, 내면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