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부는 바람에 몸 맡기고
흐르는 냇물에 발 담그듯
우리말을 누리다.
“우리나라 국어사전은 우리말을 알차게 담은 꾸러미일까?” 하고 물으며 사전을 읽고, 사전을 새로 쓴 발걸음이 1992년부터 2024년까지 이르렀다. 《우리말꽃》은 최종규가 서른세 해에 걸쳐 우리말사전을 처음부터 새롭게 쓰고 엮으면서 새삼스레 배우고 익힌 삶넋과 살림길과 사랑빛을 55가지 이야기로 들려준다.
문학을 하든, 수학·과학을 하든, 정치·경제·철학을 하든, 통·번역을 하든, 우리는 서로 ‘말’을 나누면서 ‘마음’을 느끼고 ‘생각’을 편다. 모든 길에서 밑바탕은 말이다. 과학기술도 문화예술도 연구개발도 교육도 말로 이루고 일군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우리말에 마음을 안 쓰거나 뒷전이다. 이러한 얼거리에 말씨앗 한 톨을 심자는 뜻으로 《우리말꽃》을 선보인다.
삶을 이루는 밑바탕을 그리는 말부터 살리고 살찌우고 사랑하면서 나누고 누릴 때라야, 모든 길을 새롭게 열고 가꾸고 짓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말꽃》은 “우리말은 꽃이다”라는 이야기를 펴고, “말글마음을 돌보며 온누리를 품다”라는 줄거리를 풀어놓는다. 또한 “우리말을 꽃피우자”는 뜻이자 “우리말 꽃씨를 심자”는 뜻며, “우리 스스로 말꽃을 누리자”는 뜻을 품은 책이다.
말더듬이로 놀림 받았지만
한자말이 아닌 우리말은 더듬지 않고 소리 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누구나 쉽게 말하고 쓸 수 있는 우리말사전 쓰기 길을 걷다.
말꽃지기(사전편찬자)인 최종규는 말더듬이에 혀짤배기인 몸으로 태어나, 어릴 적에 늘 놀림 받았다. 이러다 열 살에 마을 할아버지한테서 천자문을 배우는데, 어린이가 소리를 잘 내지 못 하면서 더듬거나 새는 낱말이 모두 한자말인 줄 알아차린다. 열 살 때부터 옥편과 사전을 샅샅이 뒤져서 “소리내기 쉬우면서 더듬지 않을 만한 낱말”을 하나하나 찾아보니 모두 ‘그냥 흔한 우리말’이었다. 흔하게 쓰는 쉬운 우리말은 말더듬이 어린이도 수월하게 소리를 낼 수 있는데, 어른들이 으레 쓰는 한자말은 소리를 내기부터 어려운 줄 깨닫고는, ‘뜻만 좋으면 되는 말’이 아닌, ‘뜻과 소리가 하나를 이루면서 어린이한테 쉽게 스밀 말’이어야 한다고 느꼈다. 열 살부터 열일곱 살까지는 따로 “국어사전을 새로 쓴다”는 생각은 못 했지만, 국어사전을 샅샅이 읽으면서 말소리와 말뜻이 어우러지는 길을 찾아나섰고, 열일곱 살부터는 “이런 엉터리 국어사전을 뒤적이느라 애먹지 말고, 스스로 새 국어사전을 쓰자”는 꿈을 품고서 이 길을 걸었다. 《우리말꽃》은 “누구나 말꽃을 누리는 꽃길”을 맑고 밝게 나누는 실마리를 헤아리는 이야기꾸러미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