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광야, 문학의 지평선을 여는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 좋은 시 100 選
올해도 웹진시인광장의 제 17 회 올해의 좋은 시 수상자 황인찬 시인을 뽑고 2024년 올해의 좋은 시 100 선을 내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좋은 시 500 선에서 다시 100 선으로 다시 10 선으로 오는 치열하고 공정한 과정을 거치며 이뤄지는 일련의 과정이 이제 웹진 시인광장이 세계에 펼쳐 보여주는 유일무이한 축제일 것이다. 박성준 ‘고덕 ’ 황인찬 ‘당신 영혼의 소실’ 하 린 ‘눈사람의 시간 ’ 신철규 ‘취한 꿈’ 조용미 ‘연두의 습관’ 문정희 ‘6번 칸’ 이수명 ‘오늘의 자연분해 ’ 장옥관 ‘밤의 커튼이 쳐진 빨래판 ’맹문재 ‘사북 골목에서’ 육호수 ‘희망의 내용 없음’이 10 선에 선정되었고 그 이전에 거둔 100 선의 시는 시의 정수를 보여주고 어느 시 하나 수상작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이 같은 100 선의 옥고를 모아 한권의 책으로 엮어내었다. 이 일은 코로나 시절에도 꾸준히 이어져 왔고 예년과 같이 올 해에도 이어졌다. 2024년 올해의 좋은 시 100 선이 시인광장의 끝없는 연속성을, 연대기를 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한 해가 마무리가 되었다. 시가 표면적으로는 순탄하나 사실 시의 치열함, 시의 결렬함을 시인광장이 무삭제 완역판으로 고스란히 올 해도 보여주었다. 시에는 우주가 담겨 있고, 우주의 노래가 담겨있고. 세상이 담겨있고, 세상에 대한 당부가 담겨 있고, 세상의 이념이 담겨있고, 개인사가 담겨있고, 미세한 풀잎의 떨림이 담겨 있고, 생장점의 분열과 분열이 담겨 있고, 표면장력이 약해 깨어지는 이슬의 아픔이 담겨 있다. 시가 한 시대를 나타나고 시에 한 시대의 흐름을 바꿔놓으려는 몸짓도 있다. 시에는 삼라만상이 다 들어있다. 시로 시인 자신을 나타내고, 시로 누군가를 부르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시가 꿈으로 데려가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 이처럼 올해도 시인광장을 통해 읽혀지는 수준 높은 시들은 읽는 사람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았을 것이다. 시의 보고인 시인광장에 들어와 다양한 시를 보고 시의 경향이나 개별화된 시, 새로운 시의 물꼬를 트는 시를 만끽했을 것이다. 누구나 좋은 시 500 선과 문단소식 신간알림과 각종 장르의 문학을 시인광장을 통해 접하며 늘 역동성이 있고 신선한 시인광장이 시의 광야, 문학의 지평선을 여는 곳임을 알았을 것이다. 시인광장의 역사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원호 선생님이 웹의 세상이 미래를 주도해 나갈 거라는 선견지명이 시발점이 되었다. 혼신을 기울여 오늘 날에 우리 문학의 금자탑을 이뤘다. 시인광장은 한 마디로 우원호 시인의 족적이자 분골쇄신한 결과물이다. 그런데 건강상의 이유로 지금껏 김백겸 주간, 김신용 주간, 김영찬 주간에 이어 주간 자리를 맡았던 내게 발행인이라는 자리를 맡도록 하여 주시었다. 과분한 자리이면서 부담되는 자리이나 우원호 선생님과 전 주간님들을 모시고, 편집주간 방민호 시인, 편집 부주간 김조민 시인, 편집장 최규리 시인, 편집위원 권성훈시인, 김효은시인, 하상만 시인, 석민재 시인, 김광호 시인, 채종국 시인, 김태경 시인, 정윤서 시인을 모시고 반석을 놓아주신 우원호 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다시 도약하는 시인광장으로 매진해 나가겠다.
차라리 광장의 장엄한 나무 한 그루로
ㅡ우원호 선생님에게
김왕노
시인광장을 밤새워 살을 깎아가며 당신이 가꿨습니다.
시의 이파리마다 당신의 숨결이 잎맥으로 도드라지고
당신이 영역한 시가 남아메리카로 북경으로 케이프타운으로
옥빛 조선의 하늘을 스쳐 시 구름으로 흘러가는 것을 봅니다.
찬란하게도 시의 광장을, 광야를 초인처럼 가꿀 자 누구입니까.
당신의 분신인 시인광장에 당신이 쓴 백두산이란 시가
백두대간처럼 용트림하며 가슴을 뜨겁게 달굽니다.
당신 청춘의 무덤이 된 시인광장에 오늘도 시인들이 드나들며
당신이 심어서 피운 시 향기에 취합니다.
시인광장에 펼쳐지는 하늘은 그저 하늘이 아니고 시 하늘이고
시인광장에 흐르는 강물이 그저 강물이 아니고 시 강물이고
시인광장 어느 것 하나에 당신 손길 스치지 않는 것이 없었고
광장은 광장이 아니라 시의 중심이고 시의 영토고
이만큼 세상에 넓고 깊은 시의 청정지역을 누가 가꾸겠습니까.
당신이 떠난다 해도 떠날 수 없게 우리는 붙잡을 것이고
언제나 시인광장에서 감옥에 갇힌 듯 갇혀서
시의 탈자와 오자를 잡아내고 모든 시인의 숨통을 트여주려고
불철주야 시의 광장을 활짝 열어두고 불면으로 지새우며
가물거릴 때마다 찬물로 끼얹어 당신을 일깨우던 인고의 세월
우리 어찌 그 긴 세월을 영영 잊을 수가 있을까요.
선생님 당신은 이제 시인광장에 영원한 거목으로 그늘을 드리우며
우듬지까지 자잘한 시의 꽃, 수천수만 시의 이파리가 파닥이는
아름드리 시 나무이시기를 바랍니다.
그 많은 병마와 이기면서 시인광장을 가꾸던 정신은
쉽게 쓰러지는 우리에게 끝없이 직립을 가르치는 대쪽이었습니다.
차라리 선생님 광장의 장엄한 나무 한 그루로 불멸하시기 바랍니다.
김왕노 발행인 겸 편집인(제17회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상 심사위원장)
경북 포항에서 출생.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꿈의 체인점〉으로 당선. 시집으로 『황금을 만드는 임금과 새를 만드는 시인』, 『슬픔도 진화한다』,『말달리자 아버지』,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중독』, 『그리운 파란만장』,『사진속의 바다』,『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게릴라』 등이 있음. 2003 년 제8회 한국해양문학대상, 2006 년 제7회 박인환 문학상, 2008 년 제3회 지리산 문학상, 2016년 제2회 디카시 작품상 2016년 수원문학대상 등 수상. 201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문학창작금 등 5회 수혜. 현재 웹진 『시인광장』 발행인 겸 편집인, 시인축구단 글발 단장, 한국 디카시 상임이사, 한국시인협회 부회장.
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
ㅡ수상 소감(受賞 所感)
고작 시 한 편을 써놓고는 그것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야 마는 저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시가 삶을 따라가지 못하고, 삶이 시와 만나지 못하는 것이 괴롭게 느껴지는 때는 더욱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시를 왜 놓지 못하는 것일까, 왜 시를 계속 써야만 하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날이 많았습니다. 시는 너무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양식인지라 귀 기울여 듣는 사람에게만 가까스로 가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겨우 전달할 수 있는 세계가 있으므로, 시는 언제나 더 작게, 더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말하고자 합니다. 이 작고 부질없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기울여 줄 이가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으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시를 포기하지 못하는 까닭이었습니다.
너무 작아서 우리가 놓쳐버리고야 마는 우리 삶의 바스러진 파편 같은 것들을 헤아리는 일이, 그리하여 그 작은 세상을 새롭게 발견하여 바꿔버리고야 마는 일이 가능하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시인들은 겨우 한 편의 시가 이 세계 전체를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망상에 가까운 기대감으로 시를 써나가곤 합니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대체로 계산에 서툴고 사리에 어두운 사람들이어서, 그렇게 넓은 소통과 깊은 소통을 동시에 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모처럼의 수상 소감 지면에 이렇게 뻔한 소리를 늘어놓게 되어서 참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서툴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한 해 동안의 좋은 시를 추리는 그 과정 자체가, 그와 더불어 그 안에서 서로의 시를 읽으며 귀를 기울이는 그 시간 자체가 가장 값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어리석게 살겠습니다. 앞으로도 어리석고 서툰 시인 동료들과 함께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ㅡ수상시(受賞詩)
당신 영혼의 소실
황인찬
〈당신은 지금 죽었습니다
약간의 경험치와 소지금을 잃었습니다〉
밥을 먹고 있는데
그런 메시지가 어디 떠오른 것 같다
스테이터스, 그렇게 외쳐도 무슨 창이 허공에 떠오른다거나 로그아웃이라고 말한다고 진정한 현실 세계로 돌아간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식탁 위에는 1인분의 양식이 있고
창밖으로는 신이 연산해낸 물리 법칙에 따라 나무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너는 분갈이를 해야 한다며
거실에 앉아 식물의 뿌리와 씨름을 하고 있었는데
(이미 구면인 신이 찾아와 내게 말을 건다
〈이것이 당신의 영혼입니다〉
-작군요
〈이것이 당신의 슬픔입니다〉
-없는데요
〈그것이 당신의 슬픔이군요〉
……잠시간의 침묵
그리고 나무들의 흔들림이 멈춘다)
회상이 끝나면 어느새 너는 없고 너무 커서 부담스러운 고무나무 한 그루가 거실 창가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이 나무에는 너의 영혼이 깃들었고
이것을 잘 가꾸면 언젠가 네가 열매 맺힐 것이라 믿으며
나는 잘살고 있다
딱히 네가 죽은 것은 아니었지만
〈당신은 지금 죽었습니다〉
다시 내 머리 위 어디쯤
메시지가 떠오른 것만 같았고
-부활은 안 할게요
그렇게 말해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계간 『어선 테일즈』 2021년 겨울호(창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