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루아의 맛’의 떼루아terroir는 프랑스어로 땅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특히 와인이 온 땅을 가리킬 때 흔히 쓰는 말로, 과일나무가 자라는 데 영향을 주는 모든 요소를 칭합니다. 땅의 특징과 더불어 비와 바람, 햇빛과 같은 기후, 산과 계곡, 해안가와 같은 지형적 특징에 따라 과일 맛이 달라지죠. 또한 농부의 성격과 와인 메이커의 철학과 손길에 따라 와인의 맛도 달라집니다. 와인의 맛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통틀어 떼루아라고 합니다.
한 잔의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한 움큼의 땅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와인 맛이 다른 것은 땅이 다르기 때문이고, 땅이 다른 것은 지역마다 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와인이 포도의 출신지에 따라, 농부의 농법에 따라, 와인 제조자의 제조 방법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것은 신비롭습니다. 세상의 모든 와인이 같은 맛을 낸다면 인생은 참 지겨울 것입니다. 지역마다 다른 땅이 있고, 다른 술이 있고, 다른 음식이 있고, 다른 문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각기 다른 추억을 가진 풍요로운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겠죠. 프랑스에서 온 농부 도미는 충주 수회리의 떼루아를 한 병에 와인에 담아내기 위해 농사를 짓습니다. 이 한권의 책에는 그 남자 떼루아의 맛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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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현 김연수가 함께 쓰고 그린 그래픽노블 작업과정
두 사람은 2004년 파리에서 처음 만나 지금까지 여러 번의 작업을 함께 했다. 글 작가 신이현의 시댁인 알자스를 여행하면서 알자스에 빠져서 ‘이거 그리고 싶어요!’ 이렇게 해서 ‘알자스의 맛’ 작업을 함께 했다. 두 번째 작업인 ‘떼루아의 맛’은 충주 시골 마을에서 농사짓고 와인 만드는 프랑스 남자 이야기이다. 제주에 사는 김연수 작가는 가끔 충주에 놀러 왔고 그때마다 농부의 뒤를 따라다니며 스케치를 했다. 해가 뜨면 밭으로 간 농부는 무념무상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밭일을 한다. 어둠이 내리면 문득 놀라서 허리를 세우고 밭을 내려온다. 황무지 같은 밭이었는데 올 때마다 조금씩 살아나고 푸름이 깊어진다. 숲과 같은 포도밭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은 기록해야만 할 것 같아요!”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농부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작업을 시작했다. 3여 년의 세월 끝에 도미의 한국 농부생활, ‘떼루아의 맛’이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