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헌석 문학평론가의 해설에서 일부 발췌)
#1
거울 속에 오라버님이 웃고 계신다
그런 오라버니 기억만으로도
나는 평생 행복하다
-「나의 오라버니」 일부
박화자 시인은 산수(傘壽, 80세)에도 손녀와 마주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지는 분입니다. 고등학생인 손녀와는 60년 차이, 세상에서 말하는 ‘갑년 띠동갑’인데도 마주 앉아 독서를 하며 행복을 가꾸는 분입니다. 액자 속일까, 거울의 틀에 끼어 있었을까, 책을 읽다가 오라버니 사진을 보게 됩니다. 가슴에만 간직하였던 오라버니를 추억하면서 평생 행복하다고 술회합니다.
#2
시침 떼며
건드리지 마세요
봉숭아 씨방처럼 폭발할 수도 있고
도꼬마리 열매 되어 붙을 줄도 안답니다.
-「다 알고 있다」 일부
박화자 시인의 문학적(文學的) 품격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예수님도 눈을 돌리고, 부처님도 돌아앉을 정도로 무도한 사람들의 행태를 만납니다. 그럴 때 ‘악소리’를 지르거나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같이 흔들 수도 있겠지만, 점잖게 한마디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자세가 놀랍습니다.
#3
소리치며 세차게 떨어지는 비는
튕기며 방울이 되어
동동 떠내려가 흙탕물로 모여
피난민처럼 아우성이다
-「봄비 2」 일부
봄비의 속성을 시인은 〈가늘게/ 지질거리며/ 소리 없이/ 가만히 내려앉는다/ 아무도 몰래 살금살금/ 뒤꿈치 들고 다가오나?〉(「봄비 1」) 라며 살얼음도, 음지의 언 땅도 쓰다듬고, 발가벗은 몸들도 녹여준다고 밝힙니다.
그러나 빗소리가 갑자기 거칠어지면, 앞에서 인용한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어 인용한 부분이 쉽게 혹은 아주 당연한 묘사로 보이지만, 치밀한 관찰의 결과로 형상화된 작품입니다.
#4
할머니
무릎 아파 평생을 뒷방에 계셨지요
그 나이 되어보니 가슴이 저려옵니다
-「별에 계신 할머니께 보내는 편지」 일부
산수에 이른 시인에게 할머니로 불리는 분이 살아 계시다면 120세, 혹은 130세쯤일 것 같습니다. 시인은 어렸을 때를 회상하며, 그 할머니께 편지를 씁니다. 손녀가 보기에 그 할머니는 무릎이 아파 평생 뒷방에 계신 분입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할머니께 자신도 무릎 수술, 암 수술, 여러 번 끼워넣고 떼어내고 하면서도 잘 지내고 있다고 전해 드립니다.
그 할머니는 아주 오래 전에 별세하셔서 지금은 하늘의 별에 사시는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