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빠 엄마와 호기심 대장 봉구의
이상하고 아름다운 유치원 가는 길
엄마는 아침마다 뭐가 그리 바쁠까요? 눈을 뜬 봉구와 눈 맞출 시간도, 아침밥 먹는 봉구와 이야기할 시간도 없이 헐레벌떡 뛰어다녀요. 집 밖을 나서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봉구는 유치원 가는 길이 늘 기대돼요. 그리고 눈에 띄는 것이 있을 때면 외치죠. “엄마, 잠깐만요.” 백 번도 더 다닌 골목길인데 어느 날은 무뚝뚝한 전봇대 아저씨가 로봇이 되어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편지통이 메롱 하며 놀리기도 해요. 무엇보다 두근거리는 일은 문구점을 지날 때예요. 문구점에는 없는 것 빼고 다 있어요. 봉구가 제일 좋아하는 슬라임도 있고요. 하지만 조심해야 해요. 문구점 할아버지는 보름달이 뜨면 발바닥 보이는 아이들을 데려간다는 소문이 있거든요. 봉구는 소문을 믿지 않지만, 문구점은 할머니가 있을 때 간대요. 왜냐하면 봉구는 할머니를 좋아하니까요. 할아버지가 무서운 게 절대 아니에요. 조금 더 가면 봉구 친구들이 사는 지하 세계가 있어요. 한 달 전에 떨어뜨린 미니 자동차, 엄마가 용돈으로 준 100원짜리 동전, 주머니에서 봉구도 모르게 빠져 버린 젤리가 이제나저제나 봉구가 오기만 기다리죠. 친구들이 잘 있는지 하루에 한 번 꼭 들여다봐야 해요.
엄마는 봉구 맘도 모르고 시계랑만 말해요. 봉구도 알아요. 엄마가 회사에 늦으면 안 된다는 걸요. 봉구는 엄마를 위해 달리기 시작해요. 엄마는 위험하다며 말리지만, 봉구는 마음이 급해요. 그래도 용암 바다는 버섯 동산만 밟으며 조심히 건너야 하죠. 엄마와 함께 훌쩍훌쩍 봉구는 신이 나요. 버섯 동산이 끝나자 부글부글 용암 바다가 이어지고 봉구는 발만 동동 굴러요. 조금만 가면 되는데 이를 어쩌죠? 과연 바쁘다 바빠 엄마와 호기심 대장 봉구는 오늘도 무사히 유치원에 갈 수 있을까요?
작가의 상상력과 공감력이 돋보이는
흥미진진하고 가슴 따뜻해지는 생활 밀착형 판타지
어른이 아이와 소통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루하루가 새롭고 요모조모 신기한 것투성이인 아이의 생각 보따리를 새로운 것보다 익숙함에 둘러싸인 어른의 눈으로 가늠하려면 꽤 노력이 필요하지요.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말보다는 눈을 맞추며 웃어 주고, 시계를 보며 혼잣말하기보다는 아이에게 “지금 뭐 해?”라고 물어보고, 하지 말라고 말리기보다는 함께 손잡고 뛰어 보면 어떨까요? 이영림 작가는 아이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 작품 곳곳에 아이 눈에 비친 세상을 다채롭게 풀어냈습니다. 아이 눈에 비친 세상에서는 무엇이든 살아 있고, 쉴 새 없이 아이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움직임 없던 전봇대는 빤히 쳐다보며 인사하는 로봇으로, 편지 꽂힌 편지통은 함께 놀자며 놀리는 이웃 친구로, 담벼락 창문은 아이를 곁눈질하고, 초인종과 문손잡이, 소화전과 대걸레까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아이를 맞이합니다. 엄마가 회사에 늦을까 봐 걱정하며 뜀박질하던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자신의 놀이 세상으로 푹 빠지기도 합니다. 보도블록을 골라 밟으며 태권도도 해 보고, 보도블록 사이를 비집고 나온 버섯을 보며 마음속 버섯 동산을 신나게 밟아 보지요.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아이를 안고 뛰는 엄마는 아이에겐 세상에 둘도 없는 최고의 익룡입니다. 유치원에 도착한 뒤 돌아서는 엄마를 향해 “엄마, 잠깐만요!”를 외치며 달려가는 아이의 모습에서 아이들 상상의 끝과 마음속 버팀목이 언제나 그곳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흘려 버린 일상에서 건진 이영림 작가만의 톡톡 튀는 판타지 이야기가 아이들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가 되어 줍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법 같은 환상의 세계가 펼쳐지고, 그 속에는 순수한 동심이기에 더 진하게 느껴지는 따뜻함이 가득하지요. 골목을 누비며 구석구석에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듯, 작품 속에서도 매 장면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을 느껴 보세요. ‘빨리빨리, 어서어서’를 잠시 내려두고 “오늘은 어떤 재미있는 일이 생길까?”라고 아이에게 말을 건네 보세요. 기대가 담긴 아침의 첫발은 멋지고 대단한 하루를 선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