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해지는 우리 동시
권영상, 김제곤, 안도현, 유강희, 이안으로 이루어진 선정위원은 ‘올해의 좋은 동시 2023’을 선정하기 위해 2022년 11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국내에서 발표된 신작 동시를 검토하였다. 1차로 각자 20~30여 편의 동시를 추천하고, 여러 차례 논의를 거듭하여 최종적으로 57명의 시인이 쓴 동시를 선정하였다.
힘없는 것들에 대한 눈길 두기
우리 사회에는 강자와 약자,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처럼 비대칭적인 관계들이 존재한다. 그러한 관계는 오랜 관습이나 부조리, 견고한 사회 시스템을 바탕으로 형성되고 존속되며, 시간이 흐를수록 구성원들에게 익숙해지기 쉽다. 특히 작은 부조리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올해의 좋은 동시 2023’에 선정된 작품 중에는 힘없는 것들이 다수에 의해 소외받는 현장을 포착한 일군의 작품이 있다. 대표적으로 성명진의 「개 둘」을 들 수 있겠다. 사람과 오랫동안 마을에서 동거해 온 친숙한 동물인 ‘개’가 인간의 불필요성에 의해 버림받고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다. 주인 없이 길거리를 배회하는 개들에겐 생존권이 없다. 인간의 무자비한 위협 속에서 개 둘은 도망보다 저항을 택한다. 아무 수식 없이 이루어지는 마지막 두 행의 발화가, 힘없는 것들을 발견하는 성명진 시인의 맑은 눈빛을 보여 준다. 외에도 유강희의 「내가 도니까」와 문봄의 「깨」를 비롯해 힘없는 것들에 집중한 시들이 있었다.
막연하지만 아름다운 것들
우리의 미의식은 추상적이기에, 어제까지 덤덤해 보이던 것들이 오늘은 막연히 아름다워질 때가 있다. 고영민의 「친구」는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감각하는 장면을 잘 포착하고 있다. 시 속의 ‘나’는 친구가 자기를 때리면 같이 때리라는 엄마의 말에 대해, 그 친구를 똑같이 때리면 아파할 것이라는 막연한 고통을 염려한다. 기성세대가 개인의 고유성을 무시하고 정량적으로 사람을 판단하던 것에 비해 ‘나’는 개개인을 구체적인 존재로서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태도지만, 그것을 엄마와 화자를 대비시켜 보여 줌으로써 새삼 다시 발견하게 한다.
장철문의 「달에 간 손」이나 방주현의 「씨앗」, 이화주의 「귤」, 최승호의 「칠성장어가 칠성무당벌레에게」 등도 먼 것을 감각하거나 기다리는 일을 시적으로 표현하면서 막연한 아름다움에 닿아 있다. 아름다움을 적절한 상황과 이미지로 표현했다는 면에서 시의 본질에 충실한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힘든 세상 가볍게 만들기
『올해의 좋은 동시 2023』에는 딱딱한 일상을 풀어 보려는 동시들도 있었다. 송찬호의 「비누」는 서로에게 주먹을 꽉 쥐고 적대성을 드러내는 현대 사회에서 상대방의 기분을 풀어 주는 방법을 유쾌한 비유로 전한다. 곽해룡의 「천국에 오신 할머니」도 바늘귀에 실을 힘겹게 끼우는 할머니의 모습을 재치 있는 묘사로 풀어내며 우리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소재로 일상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동시들도 있다. 안도현의 「팔꿈치」는 팔꿈치를 소재로 사람의 관계를 재미있게 보여 주고 있으며 김개미의 「분꽃은 나의 시간을 아니까」 역시 드라큘라 화자와 분꽃의 독특한 관계를 다정한 언어로 풀어내었다. 송선미의 「우린 모나미」와 신민규의 「사랑이란」은 사물의 특성과 언어유희에 착안한 비유로 관계에 대한 통찰을 담아냈다. 조인정의 「밥을 먹어요」나 신솔원의 「씨감자」처럼 죽음의 의미를 나름의 방법으로 쉽게 풀어 가거나 홀가분하게 덜어 내는 작품도 있었다.
이처럼 온화한 태도는 사람을 향해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김륭의 「양말 가게」와 김봄희의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기찻길 시장」은 사물도 살아 있는 것처럼 느끼는 아이들의 순수하고 따듯한 마음을 잘 담아내고 있다. 최휘의 「사과의 생일」과 홍일표의 「모과 이야기」는 자연이 능동적이며 사람과 교감할 수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안의 「참새」와 이만교의 「꼬마 뱀을 조심해」, 우미옥의 「어쩔 수 없는」, 임복순의 「언제 와?」, 장동이의 「걱정이다」 등은 생명의 소박한 본성을 드러내며 동심이 살고 있는 ‘동시의 뜰’이 무엇인지 잘 보여 준다.
_‘해설’ 참고
심사위원들은 수록된 동시들이 “새롭고 신선하고 다채롭다”고 평했다. 작품 활동을 오래 한 시인들은 각자의 고유한 방법으로 동시의 본성을 살리며 동시를 더욱 친근하고 재미있게 다루었으며, 젊은 시인들은 특유의 활력과 추진력으로 각자의 동시를 명쾌하게 밀어붙였다. 동시는 주요 독자인 아이들을 비롯해 어른들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는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여느 해와 다름없이 풍성한 올해의 동시들을 읽으며 활짝 열려 나는 동시의 지평을 내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