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버텨나가는 자조적 개인과
비관을 어루만지는 담담한 손짓
두 번째 이야기 「올드 레이디 버드」는 계약직 영우와 미술관 정규직 학예사 정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다룬다. 큐레이터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영우는 학예사 정에게 선물을 주기도 하며 그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우는 정의 세계, 부유하고 평온한 세계를 동경하며 그들이 귀여워하는 고양이에게 부러움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정은 실수로 차로 고양이를 치어 죽인다. 영우는 고양이 수습을 바라보면서 정과 자신 사이에 비밀이 생겼다는 묘한 기쁨을 갖지만 그 이후 정은 영우를 피할 뿐더러, 영우의 계약직 마지막 출근 날에는 휴가를 낸다. 영우는 쉬면서 고양이를 임시 보호하다가 입양자로 나선 주경에게 고양이 테루를 넘겨주고서, 그들의 생활에 집착하다가 곧 자신이 원하는 것은 어떤 포근한 사랑이라는 결말에 이른다.
영우의 고양이는 아직 밖에 있었다. 추위와 어둠 속에. 그러니 이곳 역시 고양이가 있는 세계였다. 그리고 영우 또한 추위와 어둠 속에 길 위를 떠도는 것으로 오래 전부터 고양이가 있는 세계에 머물고 있었던 거였다. 고양이를 간절하게 좋아하지는 않는 마음 그대로도 온전하게 속한 채. 고양이는 그런 식으로 모두에게 공평했다. 나쁜 동네 산책을 하는 길 위의 사람들 곁에서, 공평한 추위와 공평한 어둠을 나누며 (132쪽)
체념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지극히 현실적인 ‘해피엔딩’의 세계
2024 현대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장례 세일」은 평생을 실패한 세일즈맨으로 살아온 아버지 독고 씨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그의 장남 현수가 벌이는 일종의 희극이다. 서른이 넘도록 계약직을 전전하는 현수는 장례식장에서 일하게 되는데 그곳에서는 직원 가족이 상을 당하면 30퍼센트를 할인해주는 혜택이 있었다. 현수는 평생 가난 속에서 살다 간 아버지의 죽음을 그곳에서 치르기를 바란다. 그러나 친구가 거의 없어 텅 빌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상상한 현수는, 이 서글픈 죽음을 성황리에 마무리하고자 그간 독고 씨가 일하며 관계를 맺던 이들에게 과대 광고성 죽음 세일즈를 시작한다. 그것은 아버지의 친구와 동료들에게 거짓으로 꾸민 감사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가 보낸 가짜 추억이 담긴 감사 메시지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고, 마침내 아버지가 죽자 장례식장에는 예상보다 많은 이들이 찾아온다.
어쩌면 누군가의 ‘그래도 싼’ 인생은, 본인이 무언가를 이루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아무 관계없는, 이유 없는 타인의 완전한 선의에 의해서 다른 의미의 ‘그래도 싼’ 인생이 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현수는 먹먹히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비싼 가격을 매기더라도 그래도 싸다, 그래도 싸, 라고 중얼거리게 되는 한 사람 몫의 공정. 그러니 현수뿐 아니라 그 누구도 타인과 자신의 인생에 함부로 싸구려 인생이라는 가격표를 붙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은 결코 누구에게도 허락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독고 씨의 죽음은 오늘 밤, 낯설고 온전한 선의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은 ‘그래도 싼’ 죽음이 된다. (203~204쪽)
『테레사의 오리무중』에 실린 느슨하게 연결된 세 편의 단편에서 공통적으로 이어지는 특징은 세계를 바라보는 박지영 식의 날카로운 유머와 거미줄처럼 이어진 인물들의 관계다. 박지영은 각기 다른 사정을 가진 인물을 등장시켜 사람의 복합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를 연결시켜 독자들의 삶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테레사, 영우, 현수를 보게 한다. “박지영 소설의 인물들에게 노동자로서 경험은 단순 ‘체험’이 아니라, 곧 자기의 정체성이나 자기 삶의 가치를 압도적으로 좌우하는 요소로 작동하며, 그렇기에 이들에게 ‘어떤 노동자인가’하는 물음은 자신의 일부를 넘어 전체 가치에 대한 증명과 직결돼 있다.”(선우은실_해설 중에서)
이 인물들의 삶은 너무도 희극적이고 코믹하지만, 그사이에 담긴 삶의 비애가 남기는 여운은 깊고 짙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는 테레사의 아홉 번째 자아를 함께 찾아가고, 친구가 될 거라고 착각 혹은 소망한 영우의 마음을 이해하며, 버티는 삶을 살아온 자신에게 드디어 감사 편지를 쓰게 된 현수의 결심을 읽어나갈 때, 우리는 『테레사의 오리무중』을 통해 “각각의 소설에서 종내 포기하지 않는 인간적 가치에 대한 희구” 그리고 “현실의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아주 본원적인 연대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