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게임의 경계에 선 청소년에게
‘플나나 농장에 입장하시겠습니까?’
“넌 왜 말을 별로 안 해?”
『플나나 농장의 휴식』은 현실과 게임이라는 두 세계를 넘나들며 흥미롭게 전개된다. 하지만 현실의 이면은 날카롭기만 하다. 나연은 현실과 게임 속에서 점점 일상의 균형을 빼앗긴다. 이런 모습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온라인에서 살아가는 청소년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청소년에게 학교라는 공간은 익숙하다. 학창 시절엔 수업, 쉬는 시간, 점심시간 등 하루의 반 이상을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보낸다. 그렇기에 ‘친구’의 부재는 커다랗다. 원래 나연은 유쾌한 성격에 할 말은 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친구들과 멀어지고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나도 예전에는 병든 닭 같지 않았다. 지금이야 누가 뭐라고 한들 대응할 힘이 없지만, 그때는 오히려 싸움닭에 눈치도 좀 없었다. 그래서 건드리지 말아야 할 걸 건드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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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해야 할 말은 삼키고, 수군거림은 못 들은 척한다. 누군가 나연에게 변했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나연은 인간관계 자체가 힘들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자 엄마는 변하기 시작했다. 이제 학교에 빠지면 안 됐고, 공부하라고도 했다. 특히 2학년이 되자 조바심은 심해졌다.
-18p
게다가 가족에게 의지했던 마음마저 잃었다. 나연이 친구를 못 사귀는 것을 안 엄마의 노력은 입시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주변의 압박은 심해지고, 학교생활은 지쳐 간다. 나연은 스스로 휴식을 찾아 나선다. 그러다 마주친 ‘플나나 농장의 휴식’은 달콤하기만 했다.
“친절한 사람을 조심하세요”
플나나 농장은 현실과 12시간 차이가 난다. 농작물을 기르고, 양장 기술을 배우려면 하교 후에도 바쁘다. 나연의 말을 빌려 ‘그곳에도 내 생활이 있으니까. 현실보다 더 나를 위해주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책상 위에 틀어진 인강은 일시 정지 버튼이 눌려있고, 문제집은 깨끗하다. 나연은 친구들이 아닌 게임 속 캐릭터와 대화하며 고민을 털어놓거나 대화를 이어간다.
지비는 신규 유저다. 나연은 같은 독서 모임 회원인 지비와 친해지고 싶어 한다. 공통점이 많았고, 대화가 잘 통했다. 나연은 지비를 위한 집들이를 열기도 한다. 지비는 장미 꽃다발을 주며 나연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둘은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며 가까워졌다.
To. 나쥬
친절한 사람을 조심하세요.
From. 달그네
‘친절한 사람을 조심하세요.’라는 메시지는 잔잔한 이야기에 금을 긋는다. 우리는 ‘친절’이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막상 친절을 마주했을 때 머뭇거리거나 의심하기도 한다. 이 메시지는 서사가 진행됨에 따라 아찔한 전개로 뻗어간다. 독자는 나연을 통해 현실의 건강함과 균형을 알아차릴 것이다.
나연은 달그네의 메시지가 불편하기만 하다. 평소에는 가만히 있으면서 독서 모임에서 토론할 때는 의견을 물었다. 나연에게 알 수 없는 메시지가 자꾸만 왔다. 달그네가 말하는 친절한 사람은 누구일까. 나연은 달그네가 누구인지 알아내야 했다. 거기에 어딘지 모르게 현실 속 친구들도 수상해 보인다. 플나나 농장과 현실이 합쳐지는 건 말이 안 됐다. 나연은 휴식을 찾으러 갔지만, 두 세계가 점점 얽혀가는 걸 느꼈다.
여러 소문이 뒤엉켰고, 집으로 가는 하굣길은 불편하기만 하다. 나연은 골목길을 걸으며 귀를 쫑긋 세웠다. 그때 나연의 발소리에 이어 다른 소리가 같은 박자로 느리게 겹쳤다. 그때였다. 나연의 세상이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여러분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과 시선을 맞추는 선자은 작가는 모두의 ‘나연’을 위해 작품을 적었다. 이야기는 청소년 시기이기에 더 공감가고, 부딪힐 수 있는 현재를 담았다.
또 오셨군요.
플나나 농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꿈 같은 휴식이 되길 바랍니다.
현실에 지친 나연에게 ‘플나나 농장의 휴식’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게임은 장소와 시간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다. 빨간 머리 앤과 비슷한 이미지로 꾸민 캐릭터로 현실의 나를 감출 수도 있고, 나만의 초록 지붕 이층집은 멋지기만 하다. 거기에 취미가 맞는 사람끼리의 독서 모임까지 완벽했다. 친절한 캐릭터에 자유로운 세상이다. 나연은 그동안 바랐던 ‘원하는 모든 것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꿈은 말 그대로 꿈일 뿐이었다. 게임이 현실과 맞닿았을 때 벌어지는 틈은 아찔하기만 하다. 캐릭터 뒤로 숨어있던 타인은 낯섦을 넘어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게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범죄라는 어두운 단어를 맞닥뜨리기도 한다. 우린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문구에 숨겨진 책임감을 뒤늦게나마 찾게 될 것이다. 오늘도 나연은 게임에 접속한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플나나 농장의 휴식』은 나연과 나쥬의 목소리가 뒤섞이며 나아간다. 하나의 세계에 몰입해서 읽다 불쑥 끼어드는 또 다른 세계에 놀라기도 한다. 또한 현실 문제를 소설이란 텍스트에 녹여냈을 때 드러나는 전달력과 흡입력은 작품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