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소위 민청학련 관련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고등학교 3학년 때, ‘3선 개헌’ 반대 운동을 하여 기소되기도 했던 그였기에 대학 진학과 함께 반독재투쟁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는 서울대 재학시절 반유신 투쟁의 민주화 운동인 ‘민청학련’(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으로 10년 형을 선고받고 감옥 생활도 했다. 이 사건은 유신체제 때 국가공권력에 의한 최대의 용공 조작 사건으로, 이 땅에서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지식인이나 학생의 반유신 운동을 영원히 없애서 영구집권하겠다는 독재자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무려 1,024명이 체포·구금되고, 180여 명이 비상군법회의에 기소·구속되었다. 박정권 치하에서 일어난 최대의 용공 조작 사건이었다. 형 집행정지로 1년 여 만에 수감에서 대부분 풀려났지만, 이들의 이후 삶은 결코 편안치 않았다.
‘긴장의 끈’이 너무 팽배하고 30여 년이라는 장시간 지속되어, 대부분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였다. 권력은 개인의 인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러한 짓을 당연한 것처럼 자행하지만, 당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는 시련이었다. 국가공권력에 의해 한 삶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그때의 동지들을 보면서 처절히 느낀다. 대부분 ‘낭인’처럼 살아가기도 하고, 소식조차 끊기는가 하면, 정신 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다. 김병곤·제정구·강구철·여익구·박석률·나병식·방인철·박형선·최민화·김수길·정재돈·하태수 등 40여 분이 5, 60대에 돌아가셨다. 요즘 같으면 요절이라고 하겠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 박형규(작고)·안재웅·정상복·김경남(작고)·이광일·김형기·구창완·신대균·이원희·이상익 등의 목사들이 있다. 목사가 많은 것은 당시 기독교가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서 KSCF를 비롯하여 기독교 계통의 관계 학생들이 많이 관여했기 때문일 것이다. 교수로는 서중석·유홍준·권진관·최권행·백영서·이종구·임상우 등이 있다. 정치 쪽에는 제정구·이철·유인태·장영달·이해찬·강창일·이학영 의원 등이 있다. 모두 합쳐도 3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도 일종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나도 아내가 일정을 물어보면, 짜증을 곧잘 낸다. 감시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트라우마이다. 당시는 몰랐지만 엄청난 고통이었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왔는가 하는 것도 삶의 한 과정이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자신의 대학시절과 함께 이 민청학련 관련 부분을 세세하게 기록해 놓고 있다.
이 책은 이전에 펴냈던 『정면승부』(2011년 11월)와 『여의도에서 이어도를 꿈꾸다』(2013년 6월)의 증보판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그 후에 더욱 보강해야 했던 기억들과 에피소드가 추가 되었다. 특히, 사진을 많이 실었다. 최대한 앨범에서 찾아내고 주변에서 구해서 책에 실었다. 사진 한 장도 사료라는 생각에서. 이 책을 컬러로 찍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책 말미에 인명색인을 넣어 격동의 시대를 함께 했던 이들의 족적을 추적할 키워드로 남겼다.
1장_제주에서의 유년기와 청소년기, 2장_국사학도로서 대학 초입시절, 3장_민청학련사건과 그로 인한 인생 역정, 4장_도쿄대 유학시절의 이야기들, 5장_역사학자로서의 삶과 활동, 6장_4.3운동, 7장_국회의원 시절, 8장_일본대사 시절의 이야기들을 새롭게 엮어 넣었다.
요즘이야 각광받는 섬이지만, 역사적으로 반도의 내부식민지 였던 변방의 섬 ‘제주도’. 그 섬의 서쪽 작은 동네에서 태어난 짱돌같은 소년이 성장하고, 섬을 떠나 시대의 중심에 서서 자기 삶을 개척해 낸, 말 그대로 ‘격정의 55년’을 살아낸 인간 강창일의 면모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