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네이스》는 라틴어로 쓰인 서사시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으며, 후대에 강한 영향력을 끼친 작품이다. 그 뛰어난 완성도에 힘입어 베르길리우스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과서로 널리 사용됨은 물론, 로마의 국교가 기독교로 바뀐 이후에도 신의 소명에 전적으로 충실한 아이네이아스가 갖은 고난과 역경에 부딪혀 괴로워하면서도 꿋꿋이 이겨내는 것이 기독교적인 가치를 담고 있다고 여겨짐으로 변함없이 애송되고 필사되었다. 13세기 영원불멸의 거작 《신곡》을 쓴 단테는 1세기의 로마 최고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시공을 뛰어넘어 스승으로 추앙하였다. 단테는 《아이네이스》에 등장하는 지옥상을 《신곡》에 옮겼으며, 베르길리우스를 지옥과 연옥의 안내자로 등장시켰다.
《아이네이스》 전체를 용비어천가로 여기는 관점도 있으나, 농경시나 전원시 등에서 성실하고 건전한 농경생활이나 전원생활을 예찬하고 신봉하는 베르길리우스의 관점에서 볼 때, 아우구스투스는 오랜 로마의 혼란과 전쟁을 종결하고 로마에 밝은 미래를 가져다줄 지도자였을 것이다. 따라서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이스》 내에서 많은 예언이나 계시, 헤파이스토스가 아이네이아스에게 마련해 준 방패의 조각 묘사를 통해 그리스 로마 시대와 아우구스투스 시대를 하나로 묶는 효과를 거둔다. 또한 이 작품은 로마인의 기원이 신과 인간의 사명이자 권리인 정복과 문명에 있음을 제시한다.
아이네이아스가 겪게 되는 수많은 아픔과 고난, 트로이 낙성, 아버지를 업고 아들의 손을 쥐고 가는 필사의 탈출, 그 과정에서 아내의 실종, 오랜 방랑, 또 다른 전쟁과 살육, 특히 모든 자존심을 내버린 채 애원하는 디도와 이별을 감행하는 것 등은 그의 고난을 통해 로마 건국의 어려움을 상징하고자 하는 의도가 들어 있다. 특히 디도와 결합하여 카르타고에 남았더라면, 위태롭기는 해도 왕으로서 새로운 운명을 개척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아이네이아스가 이탈리아에서 왕이 되는 것, 로마를 건설하는 것은 위대한 신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로마인들이 아킬레우스를 무시하고 아이네이아스를 칭송하는 것은, 아이네이아스가 자신들의 시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로마라는 거대한 통치 구조와 문명 앞에 우뚝 선 위대한 개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이네이아스는 로마의 거대함 앞에 개인이 겪는 고통에 좌절하지 않고 운명에 대한 꺾이지 않은 희망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와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아이네이스》는 트로이 멸망 후 로마의 건립까지 아이네이아스의 라비니움 건설 - 아들 아스카니우스의 알바롱가 건설 - 300년간의 통치 - 마지막 왕 누미토르의 딸 레아 실비아가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낳아 로마 제국이 탄생하는 과정과 신화적 장면을 담아내고 있으며, 주옥 같은 명화 속에 펼쳐지는 흥미 만점의 스토리 전개는 한번 잡으면 놓을 수 없는 마력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