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서 ‘통’하고 ‘통’해서 아름답다
1월이 생일이라서 단 한 번도 학교에서 친구들과 생일잔치를 못 해 봤다는 아이가 있다. 아이는 6학년이었고, 12월 30일에 졸업식까지 다 끝나 버렸다. 방학은커녕 졸업식까지 끝난 마당에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일 자정에 반 친구들과 선생님이 마련해 준 생일상을 받게 되었다. 친구들과 선생님이 작당(?)을 해서 아이 엄마에게 미리 건네 준 생일 케이크와 선물들. 그리고 생일잔치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낮에 줌으로 다시 만나 먹고 놀며 다시 한 번 아이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개학 첫날 폭설이 내렸고, 눈밭에 파묻히고 싶다는 친구의 소원 덕분에 아이들은 눈밭에 파묻히는 걸로 6학년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6학년을 맡아 온 김영미 선생은 아이들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한 해 계획을 짠다. ‘자신에게는 열정을, 타인에게는 배려를’이라는 급훈이 아이들 삶에 닻을 내릴 수 있도록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 궁리하고 일을 벌였다. 자신들의 말에 온몸으로 답하는 선생님 덕분에 아이들은 ‘사서 하는 쌩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학교 전체 사물함 정리부터 마을 토마토 농장에서 수확하고 포장하는 일까지 거뜬히 해낸다. 1년 동안 같이 공부하고 ‘쌩고생’까지 함께했으니 생일잔치가 소원이라는 친구의 말을 어찌 흘려들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땀 흘려 일해서 번 돈으로 마을 어른들과 외국인 근로자분들한테 선물을 드리기도 한다. 모두 학생들 스스로 회의를 열고 의논해서 결정한 일이다. 아이들은 지금 곁에 있는 친구와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온몸으로 배우고 즐겼다.
작아서 할 수 있고, 함께해서 할 수 있는 일들
작은 학교는 학교가 있는 자리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교통이 불편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나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선생님이 발품을 팔고 교육청의 지원이 있으면 뜻밖에 새로운 일을 쉽게 벌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이든 함께한다는 것이다. 선생님과 아이, 부모님 그리고 학교 밖으로 나아가 마을까지 함께 참여하는 다양한 일들을 해 나가고 있다.
체험학습을 떠날 때도 학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참여해 계획을 세우고, 마을 사진관에서 사진을 배운 뒤 전시회를 열고, 아침마다 교사와 아이들 교직원들까지 함께 운동장을 걸으며 못다 한 수다를 떨고,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여섯 명씩 가족을 만들어 일주일에 한 번 같이 밥을 먹고, 학부모가 기꺼이 내어 준 토마토 농장에서 일해 보고, 눈 오는 날 마을 길을 쓸고. 아이 한 명이 자라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아이 한 명 한 명을 마주 할 수 있는 작은 학교는 아이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세상이 되어 주고 있다.
연대를 통한 배움의 확장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관계를 맺으며 적극적으로 학교생활을 하지만 작은 학교를 바라보는 어른들은 또 다른 걱정을 한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작은 세계에 머물러 있지 않나 하는 걱정이다. 맞는 말이다. 아이들이 만나는 세상이, 살아갈 세상이 마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친구와 선생님, 작은 학교의 울타리가 아이들의 뿌리라면 마음껏 뻗어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작은 학교가 만들어 나가는 배움의 장은 학교와 마을을 넘어 더 큰 세상으로 확장되고 있다. 작은 학교의 특성상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늘 같은 친구들과 어울릴 수밖에 없다. 이 장점은 장점대로 살리고 아쉬움은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 새로운 만남의 장을 열게 되었다. 다른 지역에 있는 같은 학년들을 온라인으로 연결해 공동 수업을 기획하고, 체험학습을 떠날 때 서너 학교가 버스 한 대를 빌려 함께 여행을 떠난다. 서울에 있는 큰 서점을 찾아가 아이들이 직접 책을 고르게 하고 그 책을 읽은 뒤 작가와 만나는 자리를 열고, 환경교육을 위해 생명다양성재단의 전문가 선생님과 꾸준하게 만날 수 있게 자리를 만들며 아이들의 세상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아이들에게 음악을 선물해 주고 싶은 홍천의 황승환 선생은 교내 합창단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중학교 방과후 교실에 전문 음악 강사를 모셔 아이들이 제대로 된 악기 수업을 받게 했다. 그리고 가까운 초등학교하고도 연계해서 5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계속 이어서 악기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었다. 이런 노력으로 비록 비대면 온라인 공연이었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 아이들 72명이 함께 오케스트라 공연까지 하게 되었다. 특정한 소수의 아이들이 아니라 원하는 아이들 누구나 참여해서 멋진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아름답고 귀한 일이다. 그리고 황승환 선생이 가까운 다른 중학교에도 수업을 하게 되면서 두 중학교가 연계해 ‘중ㆍ중 연계 윈드 오케스트라’까지 탄생하게 되었고 2021년 10월에 멋진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도 선생님들에게도 가슴 벅찬 순간이었으리라.
경제 논리로만 생각해서 작은 학교들이 문을 닫아 버렸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규모가 작아서 문제가 아니라 작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상상하고 실행해 낸다면 지역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교육의 장이 열릴 것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그 생생한 순간들을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강원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 교육은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학생 수가 많은 도시 학교는 어쩔 수 없이 번갈아 가며 등교할 수밖에 없고, 대면수업과 비대면 수업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작은 학교는 방역 지침을 지키면서도 아이들 모두 학교에 가고, 계획했던 교육과정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변화해 가는 환경 속에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옆에 있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스스로 성장해 갈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강원도교육감의 추천사처럼 이 책은 “우리가 걸어온 길이며 걸어갈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