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청소년들의 징검다리가 되기를!
저자는 10년 동안 북한 이탈 청소년들을 만나오면서 아이들의 사연에 함께 울고 웃었다. 친구들 중 사연 없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분단이 낳은 아픔을 뼛속 깊이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박경희 작가와 함께하는 인문학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의 최대 관심에 귀 기울였다. 대학입시반인 고3학생들과 가장 가까운 곁에서 든든히 함께했다. 고군분투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울 때가 많았다. 자기 길 찾기를 잘하며 사는 친구들을 만나면 절로 뜨거운 눈물이 나왔다. 그 마음을 일곱 편의 소설로 형상화시켰다. 대학을 졸업하고 당당한 직업인으로 자리매김을 한 친구들을 보며 힘을 얻었다. 기자, 뷰티 아티스트, 패션 디자이너, 무역업상, 간호사, 재활 물리치료사, 조리사 등의 직업을 택한 것은 실제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정든 고향인 북한을 떠나와 중국 등지에 떠돌다 메콩강을 향해 산속을 달리며, 온갖 위험에 노출되어 3일에 초코파이 하나로 버티던 그들이 남한에 정착해 뿌리내리려 애쓰는 모습은 안타까운 한편 가슴 찡하게 장하기도 하다. 리얼리티를 확보한 생생한 이야기들과 공공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그들을 지원하고 응원하는 작가의 시선이 더해져 ‘의미’와 ‘재미’를 갖춘 소설집 「리수려, 평양에서 온 패션 디자이너」가 작가의 바람대로 남북 청소년 모두에게 울림이 되는 책이기를 바라본다.
줄거리 소개
기자를 꿈꾸는 아이
평양에서 온 주인공 ‘나’는 평양의 상류층에서 살던 아이로, 외할아버지가 술김에 젊은 지도자동지에 대해 강경발언을 한 것이 문제가 되어 3대가 탈북을 시도해 남한에 안착했다. 남한에 온 뒤로도 아버지는 북한에서 일했던 경력을 인정받아 철도 공무원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엄마는 대학교에 입학해 학교에 다니는 등 남한의 보통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나’의 학교생활은 녹슨 철마를 탄 것처럼 지루하고 힘들기만 하다. 그러나 ‘수경’이라는 친구를 알고부터 ‘나’의 생활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수경’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되고,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꿈을 갖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수경과 주인공이 서로에 대해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지고 차츰 알아가며 서로를 인정하며 의지해 나가는 모습이 미래의 통일 이후 우리들의 모습을 미리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뷰티 아티스트
주인공 ‘난희’는 알콜중독 아빠와 함께 산다. 엄마는 남한에 오자마자 집을 나가버렸고, 지체장애인인 오빠는 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난희네는 북한에서도 가난했지만 남한에서도 ‘극빈자’ 신세를 벗을 길이 없다. 학교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알아주는 아영과 어울리며 난희는 동대문 패션시장에서 액세서리 따위를 도둑질해 판 돈으로 용돈을 충당하며 생활한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도둑질을 하던 중 현장에서 붙잡힌 난희는 팀장의 배려로 한 달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간의 죗값을 대신하게 된다. 뷰티와 장신구에 관심이 많던 난희는 적성에 꼭 맞는 일을 하면서 차츰 남한의 생활에 적응을 해나간다. 세심함이 모자라 난희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지만, 늘 난희를 지원하고 지지하는 센터장님의 말처럼 환경이 바뀌어도 잘 적응하고 예쁘게 꽃피우는 개여뀌꽃과 같은 존재가 되고자 결심하는 난희를 응원하게 된다.
리수려, 평양에서 온 패션 디자이너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사고로 병간호가 필요한 상황이 되자, 엄마가 돈을 벌기 위해 중국의 장마당을 오가며 집을 비울 때면 수려는 혼자서도 외롭지 않았다. 바늘과 실만 있으면 친구가 필요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의 연락이 끊긴 뒤로도 수려는 바느질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바느질을 할 때면 엄마에 대한 그리움도 미래에 대한 불안함도 모두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떠난 지 5년이 되던 해, 서울에서 보낸 브로커를 따라 죽음의 강을 건너 엄마를 만났다. 남한은 너무나 낯선 땅이었다. 일반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도 아이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학교를 그만두고 수려는 패션디자인학원을 다니며 자신의 적성을 찾아나간다. 엄마가 바느질 재료들을 갖다 버리면서까지 뜯어말린다고 해서 그만둘 수려가 아니다. 도리어 수려는 엄마에게 ‘정성이면 돌 위에서도 꽃을 피운다’는 말로 엄마를 설득하며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찾아 나선다.
당당하고 멋진 무역상
혼자 탈북의 과정을 거쳐 남한에 정착한 연수는 아르바이트를 2개씩이나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혼자만 남한에 왔다는 죄책감만큼 북에 두고 온 식구들의 생활비와 아픈 엄마의 수술비를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기 때문이다. 학교를 마치고는 인사동 옷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을 하고, 저녁에는 ‘불나방’이라는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고등학생인 연수지만 고향 언니의 주민증으로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속이고 취업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루 일을 마치고 파김치가 되어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는 열악한 원룸으로 돌아와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연수지만, 이대로 살지는 않겠다는 결심을 다진다. 자신을 닦달해주는 선생님들과 학교 친구들을 의지하며 다시 한번 힘을 내어본다.
청색 대문 집의 비밀
함경북도 은성이 고향인 주인공은 남한에 와서 마사지를 배웠다. 정부에서 하는 직업훈련소 경락반에서 마사지를 제대로 배워 자격증까지 땄다. 경락반에서 만난 아주머니의 소개로 대궐 같은 할아버지 댁에 입주 마사지사로 들어가게 되어, 오전에는 학교를 다니고 오후에는 할아버지의 마사지를 하면서 남한에서의 삶을 차근히 꾸려가고 있다. 주인공의 꿈은 ‘재활 물리 치료학과’를 졸업해 물리치료사가 되는 것이다. 통일이 되면 북에 계신 할머니를 만나 손수 마사지를 해드리고 싶다는 소망도 가지고 있다. 열일곱부터 뼈가 부스러지도록 일해 떡 벌어지게 일궈놓은 할아버지의 재산을 등에 새끼처럼 피 빨아먹으려는 자녀들의 세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주인공의 처지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하얀 가운 입은 천사
북한을 떠나 중국을 정처 없이 떠돌던 미희는 엄마가 서울에서 보낸 브로커를 기적처럼 만나 남한으로 올 수 있었다. 국정원을 거쳐 하나원 생활을 끝내고 나서야 10년이나 헤어져 있던 그리던 엄마를 만날 수 있었지만 남한에서의 엄마는 혼자가 아니었다. 엄마가 힘들 때 만났던 사람이라고 소개한 아저씨는 험한 말은 물론 날마다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두려운 존재였다. 어느 날 아저씨의 주정 속에서 엄마가 미희 자신을 데려오기 위해 아저씨에게 돈을 빌렸다는 것을 알게 된 미희는 중학교를 다니다 만 실력이지만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엄마의 빚을 함께 갚아나가는 데에 힘을 보태기로 결심하고 간호보조사 일을 시작하게 된다. 탈북자들을 위한 제도 덕분에 탈북자를 등쳐먹는 족속이었던 아저씨에게서 벗어나게 된 미희와 엄마의 앞으로의 날들이 기대가 된다.
통일 밥상 쉐프
엄마와 함께 남한에 온 강희는 엄마의 재혼으로 새 식구를 맞이하게 된다. 같은 식당에서 일 마치고 서로 힘들게 살아온 이야기를 하다가 정이 든 아저씨와 엄마는 ‘통일 밥상’이라는 식당에서 북한 음식을 판매하며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강희는 아저씨도, 동갑내기인 아저씨의 아들도 어색하기만 하다. 북을 떠나 중국의 사람 장사꾼에게 팔려 대머리 남자에게 겁탈 당할 뻔했던 일과, 식당에서 일을 돕다가 성희롱을 당하던 일까지… 무방비 상태의 열두 살 어린 여자아이에게 세상은 너무나도 험했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가족이 있다. 다리가 불편해 절뚝이는 아저씨지만 강희를 지켜줄 든든한 아버지가 생긴 것이다. 강희네 가족은 두물머리로 소풍을 가서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새 가족이 함께 화합할 것을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