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일상의 풍경으로 삼는 비망록
박미정 〔시인·평론가〕
한승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서로가 서로에게』는 여성적인 섬세함으로 자아 성찰의 자세를 보이고 있으며, 천성적으로 밴 시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실려 있다.
이러한 시인의 목소리는 자연을 일상의 풍경으로 삼고 경계하지 않는 데 매력이 있다고 할 것이다. 생활 속에 우러나오는 생활 감정을 자연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하는 목소리의 톤은 진정성을 지향하고 있어 작지 않은 울림이라 할 수 있다.
바람 한 점 날아서
햇살에 흩어지는 하늘가
기다림도 흔적도 삼켜버리고
구름에 걸린 채 무심하다
풀숲에 앉은 바람의 소리
산마루에 가랑잎 삭아지듯
구름자락에 숨어
어둠을 한가슴 매달아 놓고
낯선 언덕을 넘고 넘어
떠가는 바람도 손끝에 잡고
내가 아닌 다른 이로
가는 집착이 매섭기도 하다
멈추지 못할 세상이라면
최면이라도 걸리고 싶어
지나간 것은 탐하지 않는
노을만 붉게 사위어 간다
- 「구름에 걸린 낙조」 전문
시에 있어서 제목은 시의 전체적인 의미나 주제를 포괄적으로 함축하거나 요약해 제시해 주는 경우가 많다고 현대시의 이해 방법에서 말하고 있다. 그래서 제목을 분석하는 것은 시를 감상하는데 있어서 관건이 아닐 수 없다. 「구름에 걸린 낙조」라는 제목이 주는 전체적인 암시는 구름과 낙조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자연이다.
이것에 정지시키고자 하는 이중구조는 떠남의 현상을 아픔으로 구축한 시인의 절망이기 때문이다. 구름에 걸렸더라도 있으면 절망이 극복되는 내적 비애로부터 생성된 것이다. “지나간 것을 탐하지 않는”에서 나와 자연과의 다름을 인정하고, “노을만 붉게 사위어 간다”는 자연의 본질을 조감하며, 특별한 뜻을 더해 주고 있어 시인의 재치라고 하겠다.
마음과 마음의 거리
공간은 가깝지만 달갑잖은 언어들
마주한 시간만큼
공허한 숨소리에 젖어 들어
믿음의 폭 좁혀졌나
인정의 연민은 짙어
미소가 아롱거리고
눈에서 멀어지는 거리만큼
미로의 길이 왜 생기는지
나,
무엇을 베풀었을까
모든 것을 알고도
애잔한 미소에 갇혀버린
갈증에 연연한 빛
강바람에 파고드는 숨결
잎사귀로 감싸듯
사색에 담긴 마음의 소리
울컥한 햇살을 초연히 바라보고
푸르게 피어서 채우지 못한 것
꿈으로 솟아
목마른 졸음에 물오른 가지는
서로의 소리를 귀하게 담아
옷자락에 물들이고 싶다
- 「서로가 서로에게 」 전문
위 시에서 ‘언어들’이 과거에 대한 자각이라고 한다면, ‘숨소리’는 현재의 사실을 체득하게 된 것이며 ‘믿음’은 지향하고자 하는 바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거듭나기를 하는 것은 단순한 개선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설 가치를 재구성하려는 ‘나’를 찾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하지 않은 현상으로 “무엇을 베풀었을까”를 표출하며 ‘나’는 타자를 의식하여 새로운 생성의 밑자락을 담보해 낸다. “갈증에 연연한 빛”은 형이상학으로서의 그리움이며 시인은 ‘나’의 자발적인 삶의 가치를 타자의 ‘마음’과 ‘소리’라는 두 세계를 진정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삶의 가치를 가진다는 구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의식은 다음 시에서 더 진지하여 “향기 같은 사람”으로 삶의 기대와 예감 속에 함께하고 있다. “늘 당신이 서 있다 / 희미한 그림자의 여운이 / 언제 떠날지 알 수 없지만 // 뜨거운 가슴으로 빛을 내려주는 / 향기 같은 사람”(「마음의 향기」 일부)에서 삶을 즐겁고 옹차게, 궁극을 향한 행로를 보이고 있다.
일상 속에서 마모되지 않은 자아의 관찰은 현실에 대한 확신에 기여한다. “봄 햇살에 얼굴 내밀고 / 현란하게 날개를 펴면서 / 땅 위를 오르며 봄이라고 외친다”(「봄 마중 가다」 일부)라는 삶의 생성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름다운 꽃길을 만들고 / 시원한 봄바람에 푸르게 젖어 든다”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나름의 성취의 세계를 지향한 성실성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무친 억겁의 언어들 / 이슬비를 맞으며 / 함부로 토할 때마다 분홍빛으로 / 갈증을 풀었다”(「언어의 만남」 일부)에서 ‘함부로’의 실상은 현재의 나는 ‘함부로’에 함몰하지 않고 즐기게 되는 균형 감각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의 시에 일관하고 있는 정신은 보다 순수한 세계로 향한 새로운 시도의 꾀함을 뜻하고 있다. 그것은 현상적 세계 속에서 새로운 국면을 환기시키며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윤슬에 빛나는 제라늄꽃 개화는
봄은 낳고
이럴 때
싱싱한 잎사귀는
어제오늘의 일도 아닌데
날마다 훔쳐보게 하는 매력을 풍기네
봇짐 풀듯이
바람결에 꽃잎 터트리며
스치는 기척에
긴 꽃대 가늘게 흔들릴 때
나도 꽃이 되네
가만히 흔들리는 꽃, 제라늄
- 「제라늄의 미소」 전문
「제라늄의 미소」는 꽃을 닮으려는 현상적 의미가 전부가 아니다. 자연의 질서에 융합하려는 시인의 진실을 함축하고 있다. 제라늄꽃 개화가 이끌고 가는 것은 놀랍게도 봄이다. 제라늄 잎사귀가 유독 싱싱하다고 한 것은 그것이 생명의 불꽃으로 변용되기 때문이 아닐까. 탐미적 감성은 그러한 현상에 용해되어 흔들리는 꽃, 제라늄이 되는 것에 극적이며 진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천변의 새떼」는 즉흥적인 현상에 의해 형상화되지만, 메시지가 예사롭지 않다. “다툼에 밀려서 떨어지는 놈 / 약삭빠른 몸놀림에 파고드는 놈 / 그들의 재잘거림 서열인가 / 쉬어갈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 방황의 뜨거운 싸움인가 // 날마다 낯선 시간을 찾아서 / 쉬어갈 다툼이라면 / 끈끈한 우정으로 서로 양보하며 / 기쁨인 시간을 왜 싸울까 / 다투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천변의 새떼」 일부)에서 새떼의 재잘거림을 인간 조건에 대한 근본적인 욕망 의식으로 인식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아이러니 양식은 “어느 날 베란다에서 마주하니 / 잎사귀가 시들하고 성장이 멈춘 듯 / 잎 말라 일주일 만에 죽임당한 꼴 / 누군가의 배신이 얄미운 가시였다”(「소유의 집착」 일부)에서 자연을 의인화하여 시적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문명인의 질곡이 아닌 아이러니를 의미한다.
“구름 한 점 어디로 /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 어딘가 숨소리도 두렵게 // 풀잎은 미완의 바람으로 / 산마루에 가랑잎 삭아지듯 / 고독에 나풀거린다”(「낡은 햇살」 일부)에서 자연을 통해 그리움을 고독으로 병치하는 기법이 단순성이나 작위성과 거리가 멀다.
“너 아닌 다른 이로 / 푸른 날의 언덕을 지나 / 떠가는 집착이 무겁기만 하다”라고 하여 고독은 표 나게 내세워진 환상이 아님을 드러내고 있다. 외형적인 것을 자기의 것으로 동화하여 적극적인 개념이 된다.
입술 닮은 꽃 타래
싱싱하게 웃고 있는 덩굴이
서로 엮이어 엉킨 채
가슴을 열어 보이고
불같은 정열 활활 타올라
바람에 실려 온 꽃잎
꽃비가 무늬로 피어오른다
향기 담은 꽃 편지
가시와 봉합되어 개봉도 못 하고
젊음을 사르는 물들인 가슴
담장 위의 불꽃은 붉게 타고
고향 집 울타리를 넘던 붉은 장미도
오월의 꽃바람에 흔들거려
하늘을 바라보며 몸살 앓는다
- 「덩굴장미」 전문
위 시에서 “싱싱하게 웃고 있는 덩굴”이란 무기력하게 위축되지 않고, ‘불같은’에서 형용사 〈같다〉가 직유의 표현 기교를 구사하면서 새로운 논리를 정립하고자 한다. 거기에는 ‘정열’이라는 강한 암시성이 있다. 정열은 불에 의해 꽃비가 무늬로 피어오르게 하는 내부를 은은히 드러내 보이며 ‘꽃 편지’라는 새로운 시도를 꾀한다.
여기에서 시의 선도를 주도하던 정열이 가시에서 차단되는 비극성을 한층 심화시키는 것에 눈 여길 필요가 있다. 시 흐름의 방향을 꺾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오월의 꽃바람으로 환치된 정열은 젊음을 사르는 물들인 가슴으로 병치 되었다가 하늘을 바라보며 몸살을 앓는 것으로 표백하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생에 대한 천착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바다 냄새 그리운」은 자연을 통해 그리움을 감내하는 모습이 표상된다.
물빛 흔적에 눈망울
마음이 마음을 따라가듯
고우니 생태공원 시의 바다는
갯내음 글꽃에 희석되고
갈대꽃 휘감는 울음에 진종일
하늘은 파도에 씻겨
수평으로 부드러운 바람을
해맑게 토해내고
변함없는 보고픔에 눈을 끔뻑거리고 있어
다시 만나 한없이 반가워
자연의 흐름에 따라
가고파서 바라본 자리
그리움의 세월은 눈물이 난다
- 「바다 냄새 그리운」 전문
‘눈망울’은 마음을 따라가는 행위에서 “갈대꽃 휘감는 울음에 진종일 / 하늘은 파도에 씻”기는 섬세한 통찰과 예민한 감각으로 이동하고 있다. 바슐라르는 시인의 풍경이 혼의 상태라고 말한 바 있다. 시의 바다 풍경을 보며 시인은 스스로 그리움을 열고 있어, 시인의 정신적 세계가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특히 “자연의 흐름에 따라 / 가고파서 바라본 자리”에는 제목이 제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냄새’에 대한 기억이며 동경이다. 이러한 관조의 세계는 내부로부터 발산되고 있는 그리움이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바람이 여행 중인지
떠나고픈 곳으로 간 것인지
무엇이 진심인지
젖은 독백을 어찌하랴
무심한 마음 그것 탓
유유자적
머물던 순간이 바람이라
돌아갈 수 없는 자리에
향기만으로 무지개가 뜨고
혼자서 그를 만난다
해무와 수심이 밀려와
풀어진 반란에 흐린 그림자
숨소리조차 불빛에 열려
가쁜 호흡이 세차게 풀어져
그리움에 파고든다
- 「해무의 그리움」 전문
한승희 시인의 시에 일관하고 있는 정신은 자연으로부터 전해 받는 일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자연을 가까이하며 끊임없이 말 걸기를 시도한다. “바람이 여행 중인지 / 떠나고픈 곳으로 간 것인지”도 말 걸기 중의 한 화법이다. 시인은 그러한 관심을 보이는 행위에서 더욱 절감하는 것은 그리움이다. 또한 시적 방법으로는 “혼자서 그를 만난다”의 진술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그리움을 구가한다. 그것은 종결에서 그리움에 파고든다는 것을 진부하게 들리지 않게 하는 기술적인 것에도 해당한다고 보겠다.
물든 감잎 손끝에 들고
붉은 살점에 곱게 입힌 편지
달콤한 가을을 사랑에 담아
행간을 음률의 미소에
시향詩香의 언덕을 넘어 아직도
그 자리에
그림자로 그냥 있겠지
그곳이 참 그립다
- 「가을 편지」 일부
‘편지’는 나와 타자를 잇는 통로의 의미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자리에 / 그림자로 그냥 있겠지”라고 하여 과거를 회상하는 그리움의 자각으로 쓰이고 있다. 시인의 감성에 오직 나로부터 멀어진 ‘달콤한 가을’을 배경에다 두고 그리움이란 상징적 의미를 조화롭게 구사하려는 구조를 보이고 있다.
즉 ‘시향詩香’으로 편지를 대신하는 발전적인 과정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적인 구조도 “그 자리에 / 그림자로 그냥 있겠지”의 귀결로 연결되는 정적인 변화에 그리움을 구가하는 데 쓰이고 있다. 이러한 시인의 갈망은 「나를 돌아보며」에서 “눈부신 곳을 바라보는 / 인연의 고리, 시향詩香’의 교감인가”라고 하여 ‘시향詩香’의 교감으로 그리움의 현실을 자연스럽게 이끌고, 삶의 뿌리로 변용되면서 독자적인 체질로 「오후의 여백」을 경이롭게 나타내고 있다.
“징검다리 건넌 노을빛 / 온몸을 뒹굴어 비늘을 털고 // 바람을 만지는 깊은 언어에 / 서술하는 마디마디 / 십 리나 먼 갈맷길 숨소리 가볍다 // 바람은 물빛에 젖어 / 돌아오는 바람 돌고 돌아 // 간절한 생명의 몸짓을 / 여백의 요람에 묻어두고 / 동행하며 걷고 걷는다”(「오후의 여백」 전문)에서 “바람을 만지는 언어”라고 하여 언어를 의인화하여 바람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시인은 바람과 언어를 벗어나 자유스러운 경지에 도달하여 동행하며 걷는 메시지가 아름다움으로 형성되고 있다.
한승희 시인의 시는 자연과 함께하는 체험을 통한 진실이 있다. 그리움을 뿌리에 두고 있으면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통로가 되고 있는 것은 자연이다. 자연의 순환을 통해 순수한 자아를 찾으려는 몸짓인 것이다. 그러한 반복을 통해 자연스럽게 의연함을 구사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여운이 길 것으로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