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가 아무리 달콤하다 한들, 누군가는 죽는다.”
어떤 죽음이 곧 나의 생존과 연결되는 기묘한 세계
빛과 그림자, 불행과 행복 사이에서
단요 작가가 그려내는 지금 이 시대의 방정식
『케이크 손』의 “세상은 악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고통뿐만 아니라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고통으로도 가득 차 있다.” 업소에 나가는 엄마를 둔 나는 마땅히 받아야 할 보호를 받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채 열여섯 해를 살아왔다. 나를 조종하는 안혜리의 뜻에 따라 같은 반 학생들을 ‘개’라고 부르며 투견처럼 싸움을 붙이고 또 싸움으로 상대를 폭행한다. 나는 ‘악인’ 혹은 ‘기인’이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탈선을 막으려는 사람들에게 ‘배제당하는’ 존재다. 그런 나를 안혜리는 아름다운 눈동자와 막대한 애정으로 품어준다. 나뿐만이 아니다. 미성숙하고 외로운 아이들이 안혜리가 창조한 비좁고 기묘한 세계 속에서 갇혀 산다. 나는 안혜리의 다양한 쓸모 중 하나일 뿐이지만 그것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 남자는 ‘외부’의 기준으로 정상의 범위에 속해 있었지만 맨손으로 만지는 모든 생물이 케이크로 변하는 저주에 걸렸고 나는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한다. 남자는 주기적으로 케이크를 만들지 않으면 신체적인 고통에 휩싸인다. 그런 까닭에 어쩔 수 없이 쥐와 길고양이를 케이크로 만들면서 혼자 고립되어 살아간다. 어떤 죽음이 곧 생존과 연결되는 이율배반의 세계 속에서 그 남자의 인생은 그렇게 ‘추락했다’. 나는 그 남자의 곁에 머물며 ‘앞뒤가 맞지 않는 방식으로 질서정연한’ 세상의 흐름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그의 고통과 선택을 지켜본다. 그리고 달궈진 손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남자에게 스스로를 내민다. 하지만 남자는 나를 케이크로 만들지 않는다. 그 순간, 숭고한 눈을 가진 안혜리 대신 남자가 새로운 신으로 자리 잡으며 나는 조금씩 바뀐다. 안혜리에게서 벗어나, 세상의 바깥에서 세상의 일부가 되기를 선택하며 모두를 포용하고, 미래를 생각한다.
단요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케이크 손』은 명백히 가해자들의 이야기다”라고 말하는 동시에 “악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고통과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고통의 결과”가 과연 “어마어마한 차이로 세상에 드러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이 작품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는다. “삶과 죽음, 빛과 그림자, 불행과 행복, 구린 과거와 빛나는 미래”로 나뉘는 세상의 구조와 분류법에서 우리는 “좋은 것을 원하지만 모두에게 좋은 것은 불가능하다.” 어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고 누군가는 모두가 꺼려하는 지점에서 살아간다. 단요 작가는 이런 세상을 회피하지 않고 온전히 바라보고 차분하게 그려낸다. 매끄러운 세상의 피부를 손수 벗겨내고 그 아래의 흉측한 레일들을 누구보다 세심히, 오래 들여다본다. 그 결과, 계속 파고 들어가면 야금야금 맑고 달콤한 샘물이 고인다. 이기호 작가의 말대로 단요 작가의 소설은 그래서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