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을 포개 놓고/ 융단을 깔았더니/ 천둥에 번개로/ 손님 맞는 후쿠오카/ 우박이/ 맨발로 나와/ 격하게 환영하네”(「우박이 맨발로 나와」 전문)라는 여행의 설렘을 그린 첫 시편부터 “4일간 일본 여행/ 기억은 우박 바람 눈/ 아소산 정상을/ 오르지는 못했어도// 내일을/ 기약할 수 있어/ 다행이라 여기네”(「우박 바람 눈」 전문)의 마지막 시편까지 이국에서의 새로운 경험과 서정을 노래한 시편들이 그야말로 정답고 곱다.
“구름 위를 나는/ 후쿠오카행 비행기가”, “첫눈 관측한 서해”를 지나, “찰나의/ 순간을 타고/ 소풍 왔던 길을 가”듯 일본 땅을 밟고 “천오백 고지/ 유후다케[由布岳]/ 산허리 중간쯤/ 600미터 지점에서”(「촌넘」) 여장을 풀었다. 다다미방에 혼탕, 온탕, 일본 맥주, 고구마 소주에 취한 황혼들의 여행 첫날 풍경에 설렘과 유쾌함이 가득하다.
“우리의 온돌방은/ 세계에서 으뜸이라/ 조상님 지혜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일본 땅/ 기껏 첫날인데/ 선돌길 황토방이 그립네”(「온돌방이 최고」 전문)
시인은 유후다케[由布岳] 활화산도, 벳푸[別府]의 하늘도, 유후인인[由布院] 거리도 와야천 집에서 늘 하던 대로 한결같이 다정한 눈길로 바라본다. 눈보라가 몰아쳐도 “동백꽃송이/ 손 흔들어 작별하네”(「활화산과 동침」), “… 하늘은/ 전형적인 와야천 가을/”(「벳푸의 바람」), “바람에 흩날리는/ 저 꽃의 조상님은// 아마도/ 와야천 인근/ 지리산에 살 거야”(「억새꽃 고향」)라거나 일본 삼나무, 청정 미나리, 금린호(金鱗湖)의 온천수 물안개, 아소산의 눈[雪]까지, 유유자적 어디에서나 자연과 함께하는 시인 특유의 물아일체 동심이 고스란히 담긴 시조의 맛이 참 순수하다.
“화장실 바닥에/ 나뭇잎/ 한 장 누웠네// 무수한 발길에/ 밟히고도/ 그냥 곱다// 바람은/ 단풍만 두고/ 저만 빠져나갔구나”(표제작, 「그냥 곱다」 전문)
1,500고지 아소산(“정상을 갈 수 없네/ 밤사이 쌓인 눈이/ 나그네 발길 잡네”) 대관봉을 오르고 내려오며 바람(“대나무/ 쑥과 억새는/ 길을 잃고 헤매네”)과 구름(“얄미운 구름이/ 심술을 부리는구나”), 두 그루 나무(“십 년 후/ 다시 찾을 때도/ 그 자리에 서 있으렴”)를 보고, 아소 시(“소와 말/ 아소산 화산이/ 구억 년을 떠받든다”), 고메즈카(쌀 무덤)의 인자한 모습을 만나고, 매화떡과 색다른 먹거리(”일본의 아침 밥상/ 밤톨만 한 종지”, “점심은 카레덮밥/ 우유 한 잔이 전부다/ …// … 세 숟가락 뜨니 끝”) 문화를 경험하는 등 여행의 3일 차를 그린 시편들은 이국에서의 새로운 풍경과 풍습, 문물이 생동감 넘치게 그려져 있다.
“소국 대국/ 화려한 자태가/ 관광객 유혹하네/ 멀리서 온 할매 할배/ 저를 보고 가란다// 덩달아/ 와야천 할미들은/ 꽃인 줄 아나 보다”(「할미들이 꽃」 전문)
“와야천 할배 할매”들과 함께 하는, 여행의 즐거움, 웃음, 해학이 담긴 시편들은 생활 시조의 흥겨운 맛을 가득 담고 있다.
“칠순을 바라보는/ 와야천/ 할매 할배들// 후쿠오카 바닷가/ 숙소에 모여 앉아// 옛 추억/ 더듬어 가며/ 밤새는 줄 모르네”(「와야천 할매 할배」 전문),
“바를 정 자 김 교장/ 폭탄을/ 장착하다// 김 회장/ 연애담에/ 폭소가 터지네// 과거가/ 무에 대수일까/ 일본 막걸리 익는다”(「막걸리 익는 밤」 전문)
“뱃사공도 고령화/ 누가 저 배 노를 젓나// 여든셋/ 우리 태운/ 뱃사공 할아버지// 형님요/ 흥을 아는 형님요/ 부디부디 건강하이소”(「할아버지 뱃사공」 전문)
드디어 귀향길에 오르는 심정을 그린 시편에서는 여행의 끝남에 대한 아쉬움과 집에의 그리움이 교차한다. “인생은 아쉬움이란 단어와 연애하는 것”이라는 시구를 음미하며 돌아오는 길이다.
“비행기 드디어/ 공항에서 이륙하네// 나흘간/ 일본 여행/ 처음이라 설레었네// 시 한 수/ 남겨 놓았으니/ 덤덤하다 하련다”(「후쿠오카여」 전문)
“후쿠오카 떠나는/ 서녘 하늘 해가 지네// 이륙하는 비행기/ 해를 쫓아/ 현해탄 간다// 일몰은/ 또 다른 일몰 향해/ 선 넘어가는 것”(「일몰과 일몰」 전문)
“나흘간 잊고 지냈던/ 별이와 닭 세 마리// 먹이야 풍족하게/ 담아 놓고 왔지만// 얼큰한/ 순두부찌개 먹고 나니/ 너희가 그립다”(「별이와 닭」 전문)
“집이야/ 누가 업고 갔기/ 만무하다만// 와야천/ 멈추었을 리도 없고/ 무와 배추는// 강추위/ 다녀갔는지/ 무고할까 궁금하다”(「무와 배추」 전문)
“꾸밈없이 진솔하여 독자들의 가슴에 녹아드는” 고재동의 기행 시조집 『그냥 곱다』. “아무 편견 없이 눈에 보이는, 느낌을 적었다”라는 것이 시인의 말인데. 그 모든 느낌이 참으로 곱고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