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있다. 시가 있다.
그곳으로 나는 간다
_ 서경만 디카시집 『작전 본부』를 읽으며
이어산(시인)
서경만 시인이 그동안 써 놨던 디카시 200여 편을 보내왔다. 나는 그것을 읽기 전 “전문 산악인의 길을 가고 있는 그가 왜 시를 쓰고 있는 것일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는 인간의 정복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생과 사가 오가는 산을 오르고 또 오르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국내외 각종 마라톤대회의 풀코스에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험가이자 운동선수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시인의 길에 들어섰고, 디카시집을 내겠다는 것이다. “그에게 디카시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고상돈&콜핑 익스페디션 원정대 등반대장으로 북미 최고봉 데날리 정상(6,164m) 등정, 알프스 오토루트 산악스키(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180km) 등정, 히말라야 콜핑피크 원정대장으로 원정대를 이끌고 아무도 오르지 못했던 험준한 산 정상을 밟았으며, 우치텔 봉(4.040m), 코로나 봉(4,740m), 데케토르 봉(4천441m) 등정, 히말라야 곤도고르라(5.700m) 등정 등, 산악인으로는 그의 이력을 열거하는데 숨이 가쁠 정도로 화려하다. 그런데 그가 시인의 길에도 들어선 것이다.
서경만 디카시의 중심에 흐르는 생명과 사랑, 자유의 시학을 읽으면서 나는 “아, 이것이었구나!”라며 무릎을 쳤는데 “시를 쓰는 이유와 산을 오르는 이유가 다르지 않다”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겸손’이라는 화두였다. 무변광대無邊廣大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는 사상이다. 겸손하지 않으면 오를 수 없는 산과, 겸손하지 않으면 다다를 수 없는 시의 경지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누구의 시집을 해설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을 논하는 일과도 같다. 사실 “시는 그 사람의 다른 시가 해설하고 있다”라고 할 수 있으므로 눈 밝은 사람에겐 시집 해설이 사족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디카시집에서 느낀 감상평을 짧게 덧붙이고자 한다.
한파가 이끄는
동장군을 물리칠 지휘부에
다급한 낭보가 날아들었다
입춘의 진군에 초목이 꿈틀거린다
사랑을 노래할 태평성대가 멀지 않았다
_ 「작전본부」 전문
이 시집의 표제시다. 어쩌면 인간 본래의 모습, “사랑을 노래할 태평성대”를 염원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탐구하는 존재론적 시라고 읽힌다. 디카시가 추구하는 본질에 근접하고 있는 작품이다. 사진을 따로 떼어놓거나 언술만으로는 그 진의에 다다르기 어렵지만, 이 둘이 합쳐졌을 때 더 큰 의미로 확장되어야지만 ‘디카시’의 존재성이 제시된다. ‘한파’라는 현실의 땅에 발을 딛고 있지만, 동시에 인간이 염원하는 ‘행복’이라는 운명적인 속성에 이르는 순간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라는 희망을 전하는 메시지다. 그의 시에서 계속 발현되는 생명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의 호흡 소리조차도 느끼는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이
생명을 지켜주는 믿음과 신뢰의 관계
끈으로 연결된 우리는 애초부터 한 사람이다
_ 「파트너」 전문
자연과 인간, 그리고 관계의 존재성이 병렬로 형상화되고 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특히 산 사나이에겐 파트너와의 실존적 거리가 행복과 운명을 가르는 거리일 수 있다. 즉 단독자로 살아갈 수 없는 세상과 개체적 인간 관계망을 포괄하는 의미의 시다. 이처럼 디카시는 사진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거나 언술이 사진을 꾸미지 않으면서도 서로 떼어놓고는 설명되지 않는 장르다. 이처럼 서경만 시집에서는 그가 추구하는 생명 사상이 끝없이 흐르는 대하大河를 만날 수 있다.
매미 울음소리 빛을 잃어가고
영원할 것 같은 푸르름도
굽은 허리로 지팡이 짚고 떠나는 길
기후 재난의 상처뿐인 여름에
오랜 길동무 같았던 길
_ 「그대가 이 길을 묻는다면」
그의 인생론이 담겨있는 시다. “영원할 것 같은 푸르름도/ 굽은 허리로 지팡이 짚고 떠나는 길‘이란다. 그렇다. ‘태어남과 죽음’에 이르는 길은 이런 과정을 거친다. ‘곧은 길’이란 인생에선 없다. 녹음방초綠陰芳草도 한 시절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 시들이 천착하는 자아탐구의 길에서는 그 만의 생명 사상이 드러난다. 즉 ‘기후 재난’이라는 시대의 화두를 던지며, ‘자연은 오랜 길동무이자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상처뿐인 여름/ 오랜 길동무 같았던 길”이 재난에 다다르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일깨우며 세상을 향해 경고하고 있는 나팔 소리 같은 시다. 그의 이런 자세가 이 시집의 본류本流를 형성하고 있는데, 앞서 언급한 “인간은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야 할 존재”라는 숙명적 사명의 발로이기도 하다.
‘시인은 시대의 나팔수’라고 하지 않던가, 서경만 시인은 어쩌면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그는 자연 중시, 생명 사랑이라는 큰 주제를 편편의 다카시에 숨겨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는 강직한 것만은 아니다. 그는 큰 키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로맨티스트고, 휴머니스트다.
낭만에 살고 서정에 울컥하는
고독한 사나이 가슴에
하늘하늘 치맛자락 날리며
가녀린 그녀가 피고 있었다
_ 「그녀를 만났다」 전문
여름이면 우리의 산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코스모스에서 “그녀를 만났다”라고 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에 웃고 사랑에 운다’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그의 가슴에도 “낭만에 살고 서정에 울컥하는/ 고독한 사내”라는 뜨거운 서정이 꿈틀거리고 있다. 이것은 젊은 날의 한 시절일 수도 있지만, 여기에서 읽히는 배경과 분위기는 ‘시詩’라는 애인이라야 맞겠다. 이 시는 건강하고 맑은 기운으로 충만하다. 코스모스는 신이 천지를 창조할 때 가장 먼저 만든 꽃이라는 전설이 있다. 그러기에 홑꽃이고 줄기와 잎은 가녀리고 흔들리는 연약한 여성처럼 불완전하게 만들어진 피조물이라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사랑하는 대상의 대다수는 불완전하고 연약한 그녀 같지만, 결코 쉽게 꺾이면 안 되는 존재, 귀하게 여기고 보호해야 할 대상임을 말하는 듯하다.
『작전 본부』라는 디카시집의 숲길을 거니는 동안, 나는 굵지만 섬세한 서경만 시인의 감성에 젖어 들었다. 또한 그의 언어는, 가장 순한 말로 「집게」라는 시에서 죽비처럼 정치와 사회를 꾸짖다가, 「그립습니다」에서 보듯 평범한 산골 천수답을 보며 아버지를 떠올리기도 한다. 배고팠던 시절의 아버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끈이며 그분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보인다.
이 시집에 동원된 시적 언어는, 생의 양면성을 부각시키는데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제 서경만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인생론의 큰 그림을 감상하면서 이 평을 짧게 맺는다.
세상 앞에 두려워 말자
우리는 혼자가 아니냐
서로를 의지하며
당당하게 한 걸음을 나가는 것
_ 「진정한 용기」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