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없고 순수한” 자연 본연의 모습을 닮은 시인의 진솔하고 진실한 시조집은 가을이 깊어가는 선돌마을의 풍경을 그리면서 시작한다. “그니는 온 데 없고”, “그니는 간데없고”(「귀촌 일기·「287_세월아」)라며 속절없이 잰걸음으로 가는 세월을 안타까워하면서 “별이가/ 요즘 들어/ 말수가 적어졌다// 야간근무/ 마치고/ 들어와도 시큰둥// 아마도/ 가을 타나 보지/ 장가들고 싶은 게지”(「291_가을 타는 남자」)라며 가을의 쓸쓸한 정서를 정감있게 불러낸다.
시인은 반딧불이, 사마귀, 가을비, 고라니, 달개비꽃, 달팽이 등 자연법칙에 따라 가을을 마무리해야 하는 모든 생명의 순리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다. “가을비는 별이 등 타고/ 가만가만 왔다가/”(「295_가을비」), “비를 뚫고 겅충겅충/ 고라니 한 마리/ 허허로운 적막강산/ 길 잃고 헤매는가/”(「297_첫새벽 도청대로」), “…/ 가을이/ 깊어가기 전에 짝 만나길 바랄게”(「294_사마귀야 시집가거라」), “호박잎에 달팽이 한 마리 타고 오르네/ 이 가을 깊어지기 전에 줄기 끝에 닿을까”(「302_단호박밭 달팽이」) 등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자연의 풍경이 참 애틋하다.
곧 겨울을 맞이해야 하는 이순의 가을 남자는 “뼈 시린 겨울이 싫다”. 가을장마가 오래되어 “별이는/ 처연한 비 안고/ 가슴으로 헤는 밤”(「308-가을비(2)」)을 보내고, “울타리 밖 담벼락에/ 때아닌 장미가/ 촉촉이 비에 젖어/ 멍하니 먼 산을 본다”(「313_10월 장미」). 하지만,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니 시인은 다음을 위한 희망 또한 풍성하고 아름답게 그려준다.
“암사마귀 배 속에/ 가을이 익어간다/ 볼록한 그 안에는/ 수사마귀 들어 있다/ 내년 봄/ 태어날 아가/ 엄마 아빠 혼이네” (「303_암사마귀 배 속에 수사마귀 들어 있다」 중에서)
“낮에는 달개비꽃/ 밤에는 반딧불이/ 별이 집 맞은편 숲속에/ 밤낮으로 꽃이 핀다// 이 가을/ 떠나기 전에/ 누가 먼저 별을 딸까” (「299_반딧불이와 달개비꽃」 전문)
한가위를 맞아 “올해는 서른다섯 3대가 옹기종기” 모여 “마당에/ 장작불 놓고/ 우주를 떠받든다”(「324_만추」), “맏사위 상 위에/ 금 송이가 올라간다/”(「325_송이」) 등, 가족과 즐거운, 그림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시편들은 진정 행복한 삶이 어떤 모양인지, 그 안에서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 확인시켜 준다. 이와 함께 자연의 섭리에 따라 이어지는 생명의 존재 원리(“댓돌 옆 돌 틈새에/ 꽃 피고 열매 맺은 가지가 대견하다”(「326_씨톨」))를 사랑스럽게 그려내는 시편은 맑고 순수하다.
“아기가 똥을 싸는/ 꿈꿨다고 야단이네/ 그 똥을 만지고/ 먹기까지 했다는 것// 별이야/ 아기똥 꿈꾸면/ 재수 좋다는 말 맞아”(「323_아기똥꿈」 전문)
‘별이’를 통해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그려내는 시인의 시편은 자연에서 멀어져 버린 우리에게 자연 곁에서 살아가는 물아일체 삶의 진경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순수하고 자연적인 삶의 평화로움과 그 안에서 함께하는 기쁨을 노래한 서정적인 시편의 아름다운 구절들이 마음 깊이 스며든다.
“별이의 하품 안에/ 노을이 스며든다/… // 아배의/ 걸음걸이에/ 가을바람 묻어난다”(「250_가을바람), “별이야/ 너는 하늘과/ 풀밭이 구분되니”(「255_파란 칫솔」), “구름 뚫고 나온 달이 어디로 갔나 했지/ 비 그친 선돌 언덕 어루만지고 있구나”(「268_구름 뚫고 나온 달이」), “…/ 별이야 밤안개가/ 아배를 가두었어/ 차라리/ 못 이기는 척하고 너 안에서 쉴까 보다”(「343_밤안개」) 등.
“앞마당 한가운데 뒷산이 내려왔다/ 철마다 할미꽃 싸리꽃 해당화 다녀간다/ 아내는 숲속에 범 들까/ 돌려주라 성화네// 새들이 집을 짓고 달과 별이 놀이터/ 잡초며 싸리나무 다툴 줄도 모른다/ 동산이 걸어서 떠나기 전/ 떠밀어 낼 순 없잖니”(「248_별이네 동산」 전문).
『귀촌 일기 3』, 1, 2편에 이어 강아지 별이와 함께하는 꾸밈없고 순수한 자연에서의 삶, 동심의 정서, 소중한 일상에서의 사랑 넘치는 풍경까지, 고재동 시인이 그려낸 새로운 시조, 아름다운 세계가 이로써 완성되었다. “자연과 동심의 이중주 속에 빛나는 시조”(김윤희_안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라는 평에 걸맞게 맑고 따뜻한 울림을 주는 시조집, 순수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을 대신 노래한 시인의 정성 어린 결과물에 이제 우리가 감동할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