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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은 묻지 않는다

꽃들은 묻지 않는다

  • 김귀례
  • |
  • 시와사람
  • |
  • 2023-12-20 출간
  • |
  • 160페이지
  • |
  • 125 X 200mm
  • |
  • ISBN 9788956657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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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작품론|

슬픔을 견디는 두 가지 방법

황 정 산
(시인·문학평론가)


1. 들어가며
슬픔은 인간에게 아주 근원적인 감정이다. 채울 수 없는 욕망의 빈자리에 의해 생기는 것이 바로 슬픔이라는 감정이다. 인간의 욕망은 결코 채울 수 없는 결핍에 의해 생기는 것이므로 인간은 이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만 끝없는 욕망의 충족을 통해 그 결핍을 채울 수 있다는 환상 속에서 그 슬픔을 잠시 잊고 있을 뿐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욕망이 더욱 확대되고 그것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 충족 수단이 상품의 형태로 무한히 확대되는 것은 지금 이 시대가 그만큼 더 슬픔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김귀례의 시들은 이 슬픔을 다루고 있다. 그가 다루는 슬픔은 한 개인의 내면의 슬픔에서부터 가족이나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슬픔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시들에 나타난 슬픔은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다. 그가 보여준 슬픔에 자세히 다가가 보자.
2. 슬픔의 근원
김귀례의 시를 읽으면 슬프다. 이 시집의 거의 모든 시에는 슬픔이 배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시들은 시인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슬픔을 과장하거나 독자로 하여금 감상적으로 그 슬픔에 빠지게 하지 않는다. 그의 시들은 슬픔의 근원에 가닿아 있다. 그래서 무엇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다음 시는 김귀례 시인의 시들이 어떤 지향을 보여줄지 예감하게 만든다.

비밀의 방에 입실했어
어둠이 깃을 치기 시작하는 시간이었지

우리는 시의 눈동자를 만나고 싶어했지

누구는 꽃만이 세상의 멍을 지울 수 있다며
맨드라미와 씨름하다가 달려오고
누구는 노점상 할머니의 추위가 눈에 밟혀
가슴 한 편에 눈발을 대신 싸들고 나타나고
누구는 스승의 봉분 앞에서
양은도시락 추억을 울먹였지

돌아가서
다른 문을 열었어
불빛은 희미했어
불법주차 차량처럼 일상이 견인된 채
그녀는 밥도 국도 뎁히지 못하고 저녁을 포기했지
누르지 못한 버튼은
누군가와 함께 가야만 하는 두려움이었던 거야

인생을 스스로 뎁히기 힘든
어두운 거실 속 식어버린 그녀를 위해
별들이 잠들 때에야 저녁밥상을 차렸지

그날 그녀의 눈 속에
젖은 시의 눈동자가 있었어.
- 「시의 눈동자」 전문

시를 공부하기 위해 어둑해지는 저녁 시간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모두 시의 눈동자, 즉 시안詩眼을 찾고자 한다. 그런데 거기 모인 시인들이 시의 요체인 그 시안을 “세상의 멍”이나 “노점상 할머니”, “스승의 봉분” 등 슬픈 것들로부터 찾는다. 우리의 정서 중 가장 근원적인 정서가 바로 슬픔이기에 이 슬픔을 말하지 않고는 시의 눈동자를 들여다볼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시인은 이 시 모임을 끝내고 들어와 자신이 돌봐야 할 가족-아마도 병든 노모로 보이는-을 위해 늦은 저녁을 준비한다. 그리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을 그 노모의 슬픈 눈 속에서 시를 만난다. 이렇듯 김귀례 시인에게 시는 슬픔을 만나는 일이고 슬픔을 찾아가는 길이다.
시인에게 슬픔은 우선 가족으로부터 기인한다.

집이 기울고 있다
똑같은 물음이 반복되며 빨라진다
물음만이 초가의 서까래를 지탱하고
물음이 다시 서까래를 무너뜨린다

처마의 윗니 두 개가 없어진 집이다
물컵에게 행방을 물어도 알지 못한다
혹한에도 끄떡없던
아랫니 떠난 지 반 년이 지났다

물음마저 버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맨몸으로만 입국이 가능한 그곳
...(중략)...

기울어져가는 집을
버티고 있는 한 마디
“나는 다 먹었다. 너 먹어라”
생선 한 토막 살코기 몇 점 남은 밥상에서
미리 써놓은 유언장처럼
메아리 되어 물음 위를 맴돌고 있다.
- 「대답은 낙엽이 되어 그 집에 도달하지 못한다」 부분

집이 기울고 있다는 말은 낡은 집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가족 구성원들이 죽거나 떠나 가족이 해체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것을 고향집에 돌아와 느낀다. 그 느낌을 시인은 “처마의 윗니 두 개가 없어진” 모습으로 비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결국, 그 기울고 있는 집은 “물음마저 버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맨몸으로만 입국이 가능한 그곳” 즉 죽음으로 귀결된다. 그 낡은 집에서 이제 부모님 중 한 분만 남아 가족 간의 사랑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려 애쓰고 있다.
그런데 시인은 왜 시의 제목을 “대답은 낙엽이 되어 그 집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길게 달았을까? 물음은 가장 쉬운 관심의 표현이다. 그리고 사람 사이에 물음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 사이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노모는 물음을 통해 끝없이 가족 간의 관계를 되돌리고 과거의 안온했던 집을 되살리고자 한다. 하지만 시인은 그런 노모의 물음에 답을 할 수 없다. 낙엽이 되어 나뭇잎이 나무를 떠나듯 이미 이별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귀례 시인의 또 다른 시들에서 이 슬픔은 가족에서 사회로 확대된다.

썰물 같은 사람들만 모여 살까요. 서해 만조 수위 같은 사람들만 고시원에 모여 들까요 조선시대 걸인들의 보금자리였던 청계천이 있는 이곳 종로구에 희망을 걸었던 것일까요

다닥다닥 붙은 방문 닫아 건 칠흑 같은 사람들 한 줌 재를 택했을까요 행운의 숫자 일곱에 희망을 걸었을까요 일곱이서 함께 손잡고 고통의 강 넘으려 했을까요
조개로 바닷물 퍼내는 듯, 외줄타기로 오지탐험가로 살아온 그들 죽음은 9시 뉴스에 잠시 회자되고 말면 그뿐인가요. 그들 앞에 따뜻한 숙면이 부끄러운 불면의 밤은 하루쯤이면 되는 건가요

...(하략)...
- 「우리가 우리에게 회초리를 들면 안 될까요」 부분

시인은 고시원 화재 사건으로 희생된 일곱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 시를 썼다. 그것은 슬프고도 안타까운 사건이다. 특히 그들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사회가 만든 재난이기도 하다. 가난 때문에 고시원에 모여들고 결국 그 열악한 환경 때문에 그들이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죽음은 9시 뉴스에 잠시 회자되고 말” 뿐 우리의 뇌리에서 금방 사라질 것이다. 시인은 회초리를 드는 심정으로 그 슬픔을 기록한다. 자신의 몸에 고통을 각인하여 그 슬픔을 쉽게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다음 시는 좀 더 사실적이다.

그날
신문의 1면에는
또 다른 김용균 1,200명을
위패처럼 나란히 세워놓았다

활자처럼 살아난 이들이 무언의 말을 하고 있다
입사 3일 만에
명복을 누리려고 일한 것이 아니었노라고

“한 달에 이틀 쉬고. 급여는 150만원보다 조금 높아. 6개월에서 1년 정도 부사수 하다가 사수 달면 300만원부터 시작한대”

...(중략)...

베테랑 선원의 몸이
어선원들의 산재 박물관이 되어가는 지금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부분

김용균은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이다. 시인은 그 사건을 알린 그 당시 신문기사의 표제를 그대로 시의 제목으로 삼아 현장감을 강조하고 그 사건의 슬픔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의 핵심은 한 사람의 죽음에 있지 않고 매일매일 수많은 노동자가 김용균과 같은 위험과 죽음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에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슬픔과 고통을 강요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인가 시인은 우리에게 통렬하게 묻고 있다. “오늘도 /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는 마지막 구절은 우리의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3. 슬픔을 기억하기
슬픔에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면 사람들은 빨리 그 슬픈 일을 잊으라고 한다. 하지만 슬픔은 쉽게 잊히지 않고, 또 잊는다고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 깊은 곳에 내재하여 더 큰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그렇게 마음속에 넣어둔 슬픔은 화가 되어 폭력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정신을 파괴한다. 반대로 슬픔을 견디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하여 우리의 의식으로 끌어내 제어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 때 슬픔은 비통함이 되지 않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또 다른 에너지로 변화된다. 다음 시가 그것을 보여준다.

두 달째 사과를 사와요
상처 난 사과만 사와요
이유를 묻는 어머니에게 대답하지 않아요

사과 파는 할머니에게서 아버지를 만나요
상처 난 사과에는 아버지가 살아요
팔지 못한 사과 밥 대신 쌀밥을 달라고 떼를 썼던
어린 시절이 불쑥 가로등처럼 켜져요

...(중략)...

오늘도 상처 난 사과를 사와요
아버지가 우리의 저녁밥이었듯이
상처 난 사과도 밥이 될 수 있어요.
- 「상처 난 사과에는 아버지가 살아요」 부분

시인은 상처 난 사과에서 아버지를 떠올린다. 가난 때문에 상처 난 사과로 끼니를 대신했던 어린 날의 기억 때문이다. 그러기에 상처 난 사과에는 가난과 그 가난의 시절을 견디려는 아버지의 노동의 고통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아버지에 대한 슬픈 기억을 시인은 상처 난 사과에 간직하여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 노력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는 시인에게 든든한 삶의 뒷배로 아직 살아계시고 있다고 생각된다.
김귀례 시인은 슬픔을 기억하기 위해 꽃의 이미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슬픔을 아름다운 꽃으로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정원에 핀 꽃만이 꽃이 아니다
하루에 서너 번씩 고물상 저울 속에
숫자로 피어나는 꽃

눈발 흩날리는 새벽 골목길로 출근을 한다
어제 저녁 모아둔 폐지 40kg에
이천 원

가슴에 철심 박은 수술을 한 후에도
칼바람 부는 저녁까지 인사하듯 굽은 허리를 숙인다

암으로 누운 아들을 건사하며 아흔을 향해가는
저울 속에 피는 꽃

오지 않는 계절은 없다며
꽃을 피우기 위해
폐지처럼 버려지며 폐지를 줍는다

어둔 골목 가로등 아래
아들에게 봄 햇살 가득 채워주고 싶은
붉게 녹슨

한 송이.
- 「저울 속에 피는 꽃」 전문

폐지를 줍는 노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아니 그 존재 자체가 슬픔이다. 생활고의 슬픔과 노년의 쓸쓸함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을 노인은 보내고 있을 것이다. 시인은 그것을 “눈발 흩날리는 새벽”과 “칼바람 부는 저녁”이라는 시간적 배경으로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시인은 그 슬픔을 “저울 속의 피는 꽃”으로 바꾸는 마술을 부리고 있다. 폐지의 무게를 알리는 저울 속의 숫자가 노인에게는 꽃처럼 아름다운 형상으로 나타나고 그 꽃으로 노인은 슬픔을 견디고 있다.
다음 시의 소금꽃도 이와 비슷하다.

오지 않는 사람들은 소금꽃으로 피어난다

하얀 결정으로 부신 사연들이
침몰하거나 수장되거나 부유하다가
이곳
아직도에 도달한다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니라
저녁만 있는 삶이 모여드는 섬
고통 없는 섬이 존재하지 않듯이
아픔 없는 배는 정박하지 않는 섬
아직도

오십 년이
다시 하얀 기다림으로 부서지고
갈등을 구워야하는 오늘이 닳아가고
박음질 당하는 기다림은 잠을 잊는다

텅 빈 우편함은 먼지바람이 오가고
소금꽃이 된 아들을 기다리는
등 굽은 제주도 할망
밀려오는 파도에 하얗게 부서진다

희망버스는 아직도에 아직 오지 않고
서해 끝
격렬비열도가 울음을 운다.
- 「아직도」 전문

“아직도”는 채우지 못한 욕망을 강조해주는 부사어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연기되는 욕망 충족을 표현하는 가장 간단한 말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이 “아직도”에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아직도 가야 할 곳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직도”이다. 과거의 슬픔을 위로하고 치유하고자 한 “희망버스”마저 아직 도달하지 못한 그곳이 또한 “아직도”이다. 그곳이 우리 역사의 아주 큰 비극을 경험한 제주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은 그 아직도의 이미지를 하얀 소금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하얀 소금은 슬픔의 결정이다. 슬픔이 꽃으로 피어 바로 그 소금 결정이 된 것이다. 시인은 우리와 우리 사회가 겪은 슬픔을 아름답고 햐얀 결정으로 만들어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겨두고자 한다.

4. 또 다른 슬픔과의 연대
슬픔을 견디는 또 하나의 방법은 다른 슬픈 존재들과 연대하는 방법이다.

구제의류 매장 앞에
불 꺼진 노인 앉아 있다

그를 맴돌던 떠돌이별도
은백양나무에 걸린 꽃내음달도
이제 빛을 내지 못한다
맞은편 은혜교회의 찬송가도
종일 쉬지 못한 태양광 가로등도
어둠을 몰아낼 수 없다

...(중략)...

허물어진 연민으로
빛바랜 표지석이 된 노인에게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구절이 있다
‘나는 당신입니다’

오늘도
밤을 켜는 점등인 없는 휘어진 골목이 외롭다
- 「정전」 부분

시인은 도심 한 구석에 앉아 있는 노숙자 노인을 보고 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슬픔을 떠올린다. 그 슬픔을 시인은 “불 꺼진 노인”이라는 감각적 표현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슬픔을 하늘의 별도, 교회의 은총도, 가로등이라는 국가의 시설로도 지울 수 없다. “나는 당신입니다”라는 구절로서 그 슬픔을 함께 하는 것만이 우리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시인은 생각하고 있다.

단 한 번도 묻지 않았지

빗소리만 들리면 가슴이 콩닥콩닥
짝짓기만을 위해 땅 위로 기어 올라온다고
그래서 너희들의 귀향 따위는 터무니없다고 예단했지
포식자 같은 땡볕에 의한 헛된 죽음일 뿐이라고

...(중략)...

흙을 먹고 토하고 헤집어야 하는 슬픈 사랑과
비온 뒤 목숨을 건 오체투지를 손가락질 했지
걱정 없이 체온이 유지되는 땅 속을 버린 채
불볕을 포복하는 너의 절박함을 수박 겉핥기 했지

작은 흙 알갱이들과 손잡고
네가 만든 떼알구조 덕분으로
식탁이 채워지는 것을 잊는 것처럼
열탕과 혹한 속 외국인 노동자들의 비닐집이
태풍으로 무너지는 그 참담한 소식은
여우비처럼 태풍과 함께 바로 소멸되었지
그들이 기른 채소와 쌀이 저녁 밥상을 차렸어

이제는 네가 정독되어야 할 시간이야
밟으면 꿈틀거리는 것들과 함께.
- 「오독」 부분

시인은 지렁이를 보고 이 땅의 가장 낮은 것들을 생각한다. 지렁이들이 기어 나와 햇볕에 말라 죽는 고통을 보고도 왜 그들이 그래야 하는지를 한 번도 묻지 않고, 그들의 절박함을 무시해 왔음을 시인은 반성하고 있다. 이런 지렁이를 대하던 평소의 태도는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 같은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위치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인은 지렁이들의 삶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 우리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고 있음을 생각한다. 외국인 노동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없으면 우리 사회의 번영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밟으면 꿈틀거리는” 약한 존재들이 결코 하찮은 존재가 아님을 시인은 진지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는 네가 정독되어야 할 시간”이라고 시인은 다짐한다. 시인은 이런 약한 것들의 슬픔을 나의 슬픔으로 만들어 그들과 연대한다. 이런 슬픔을 나누는 행위가 슬픔을 만들어 낸 우리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 의미 있는 실천이라고 시인은 믿고 있다.
다음 시는 이러한 연대를 구체적인 사실로 강조해 보여주고 있다.

서툰 한국말로 “불이야 불이야”
불길처럼 가스배관을 타고 올라
십여 명의 사람을 살려 내었다

불법체류자로 내쳐진 너는
치료도 거부한 채 달아나
변두리 공사장을 떠돌며
불안 속에 지내야 했다

엉겅퀴의 가시가
스코틀랜드를 구한 적이 있었다
낯선 너의 이름을
엉겅퀴라 불러주고 싶었다

카자흐스탄에서 날아온 붉은 새 한 마리
알리
너의 국적은 사랑이다.
- 「엉겅퀴」 전문

이 시에 등장하는 알리는 2020년 강원도 양양군 원룸 화재 사건 때 2층으로 올라가 여러 사람을 구한 카자흐스탄 출신 불법체류자이다. 그는 스코틀랜드를 구한 엉겅퀴처럼 이 땅에 하찮은 존재로 살아왔지만 국적과 출신과 “변두리 공사장을 떠돌며” 지내는 자신의 불안한 처지와 상관없이 불행 앞에 뛰어든 용감한 연대의 정신을 보여준 인물이다. 약하고 고통받고 소외된 이 슬픈 존재들의 연대가 지금 우리 사회를 그나마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고 있음을 이 시는 우리에게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5. 맺으며
김귀례의 시들을 읽으면 슬프다. 세상이 모두 삶의 상처와 이루지 못할 꿈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시는 이 슬픔을 분노와 증오의 언어로 토로하지 않는다. 또한 슬픔을 애상적 감상으로 과장하지 않는다. 슬픔의 기원을 찬찬히 되짚어 들어가 그 슬픔의 기억을 선명한 이미지로 되살려 준다. 그리고 슬픔을 느끼는 존재들을 생각하고 그것들과 함께 슬퍼한다. 이 슬픔과 슬픔이 모이는 일이 사랑이며 또한 그것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의미있는 실천이기도 하다.

사랑은 작아도
아침 풀잎을 적시는 이슬처럼 맑아
모이고 모이면
강물이 되어가고

섬마을 바다에서 사랑이 된 짱뚱어가
팔딱이며 노래한다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며
- 「짱뚱어탕」 부분

뻘밭을 기는 볼품 없는 짱뚱어는 이 땅의 모든 슬픈 존재들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슬픔을 알기에 짱뚱어탕처럼 뜨겁고 푸근한 사랑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김귀례의 시가 바로 그 사랑이다.

목차

꽃들은 묻지 않는다 / 차례


시인의 말 · 9


제1부 산수유에게 말 걸기

산수유에게 말 걸기
당신에게
오독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입동 경고는 봄부터 시작되었다
원시림에서 걸어나온 그녀
난민
해가 지지 않는 배달의 나라
엉겅퀴
이동권은 아줌마의 이름이 아니다
꽃들은 묻지 않는다
그날 그곳의 온도
다음에
울컥
저기압
바람에게 붙잡힌 바람
내가 라면을 먹을 때
미럭곰차두 2
불쏘시개
아스퍼거증후군
오토바이
폭설
역전 국밥
쌍둥이의 이름은
골목길이 부활할 수 있을까


제2부 두루말이 화장지를 위하여

아다지오 미소
두루말이 화장지를 위하여
미얀마 양곤항에서
영혼의 건축가
그 많던 그들은 어디 갔을까
우리가 우리에게 회초리를 들면 안 될까요
시의 눈동자
아직도
가을에는 영혼을 수선하게 하소서
길 위에서 길을 가르치다
정전
저울 속에 피는 꽃
깃발
녹내장나무
상처 난 사과에는 아버지가 살아요
스무 살 봄을 불러들여
기대어 사는 일은


제3부 한수제 배롱나무 앞에서

겨울 들판은 나체로 눕는다
약령시장을 서성이는 처방전
풍경
달맞이꽃
애기단풍
강아지로 오셨을까
하얗고 가벼운 옷 한 벌 입혀
스쿨존
돌림 노래
체중계
나이아가라 폭포
동백꽃 두 송이 기도인 줄 아시나요
짱뚱어가 춤을 춘다
한수제 배롱나무 앞에서
다만 내가 아니었을 뿐
은행잎의 마음
무안 사거리 반점에서
오랜 눈부심


제4부 볼레로와 골덴바지

볼레로와 골덴 바지
“예” 입속말로 녹아드는 그녀
대답은 낙엽이 되어 그 집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대를 한 줄도 읽지 못했네
아버지의 식사
그믐달을 켜다
엄마는 아장아장
압력밥솥
그 배는 안동역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출항

작품론
슬픔을 견디는 두 가지 방법 / 황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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