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휘석 시인과의 5문 5답
1. 첫 시집 『우리 그때 말했던 거 있잖아』를 펴내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멋지게 표현하고 싶지만, 솔직히 홀가분합니다. 힘겹게 등산하고 집에 도착해 작은 욕조에 몸 누인 기분이에요. 피로가 서서히 풀리면 온갖 걱정이 떠오르겠지만요.
제게 시집은 조사 하나, 반점 하나에 골몰하거나 금간 곳을 매만지다 전체를 뜯어고치기도 하는 어떤 건축 같습니다. 시집이 나오기까지 꽤 오래 걸렸으니 연보 같기도 하고요. 그래도 오래 헤매다 들른 첫번째 휴게소에서 투명하게만 보이던 사람들의 얼굴이 점점 선명해져 기쁩니다. 물론 아직은 민망하고 어색해 한동안 바닥 패턴만 외우겠지만요. 정면에 다정하게 웃어주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 믿고 천천히 고개 들겠습니다. 간밤에 아무도 죽지 않았겠죠.
2. 시집 속 화자들의 정체성으로 특히 두드러졌던 점은 시를 쓰고(「유기」 「김의현 장례식」 「동아리」),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랜덤박스」 「새 인형 공장」 「빈 저택」). 자연스레 시와 노동의 결합이 이 시집에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평소 시를 쓰는 시간 외에 어떻게 보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지금은 회사를 그만둔 상태입니다. 간헐적으로 생기는 소소한 일을 하거나, 일을 해야겠다고 걱정하거나, 일하는 상상만 합니다. 시와 노동은 다르면서도 같은데 그 결합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규칙적으로 노동했던 때가 통째로 지워질 만큼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힘내서 적응해야겠죠.
노동에서 잠시 벗어나 말하자면,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상을 봅니다. 그리고 산책을 해요. 보고 들은 것들을 산책하면서 녹여내는 걸 좋아합니다. 사실은 술을 마십니다.
3. 동시에 이 시집의 화자들은 사랑에 골몰하고 있어요. 홀로 사랑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 주변을 배회하기도 합니다. 이들이 외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사랑을 오롯이 탐구하고 실천해나가는 듯도 싶어 오래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당부나, 이들의 사랑에 대해 부연해주실 이야기가 있을지요?
‘제발 모르겠다고 좀 그만해. 언제까지 모를 건데. 언제까지 도망치고 숨을 건데. 정신 차려.’
잘 모르는 분들이지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근데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의 범주조차 잘못 설정한 채 너무 오래 자란 것 같아요. 사랑받고, 사랑해왔지만,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도망치고 숨기만 한 것 같습니다.
빛도 들지 않는 동굴에서 울다 지쳐 기어나온 사람들. 이제 다 털어낸 다음 먼저 사랑하고, 멀리 사랑하며 살고 싶어 용기 낸 사람들처럼 보여요. 응원합니다.
4. 시집을 다시 돌아보면서, 특히 마음에 남는 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데뷔하고 첫 온라인 매체에서 발표한 ‘유기’라는 시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것들이 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무서운 말을 해요. 아마도 진심은 아니겠죠?
예전에 쓴 시라 엉성하고 거친 부분이 많아 부끄럽기도 하지만, 쓸 당시 유난히 강렬했던 마음이 내내 걸립니다. 지금 보면 섬뜩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저릿하기도 합니다.
별개로 발표할 때 많이 떨었던 게 아직도 기억납니다. 처음 듣는 직접적인 칭찬도요.
5. 독자 여러분께 인사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릴 때, 첫사랑에 실패한 뒤 사랑 노래를 들으며 울다 처음 가봤어요. 지극히 평범하게요.
잠시라도 누군가의 빈틈에 들어가 같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일. 까진 무릎을 서로 가려주는 일. 제가 하고 싶은 건 그런 거예요. 저는 이곳에서 손 내밀고 기다리겠습니다. 시간 나면 잡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