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비어천가」는 「훈민정음」과 함께 세종이 기획한 회심의 프로젝트였다. 세종은 「용비어천가」를 편찬하여 지식인과 일반 백성에게 조선 개국의 정당성을 알리고 왕실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했다. 「용비어천가」는 이를 위해 태조 이성계를 비롯한 조선왕실 선조들의 위대성을 중국의 성군들과 비교하여 드러내고, 조선왕조가 그 권위를 하늘과 중국으로부터 인정받았음을 강조한다. 또한 조선의 개국이 갑작스런 왕조 찬탈이 아니라 오랫동안 신령이 예비하고 천명이 움직인 결과라는 논리를 펼친다.
그런데 이러한 「용비어천가」가 조선시대에 중요한 문헌으로 자주 언급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공동저자인 박병련은 자칫 중국과의 사대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질 수 있는 과감한 내용들, 이를테면 고구려를 침략했던 당 태종을 비난하고, 요하 동쪽의 땅이 원래 우리 영토였음을 주장하는 내용 등을 수록한 점을 들었고, 성리학뿐 아니라 불교와 무속 등 전통사상이 드러나고 있어 조선 후기 성리학자들의 논의에서 제외되었던 것으로 본다.
이밖에도 김병선은 문학작품이 아닌 문헌으로서의 「용비어천가」에 주목하여 시가집이자 역사책이며, 사전으로서의 기능이 동시에 의도된 「용비어천가」의 편집체제를 분석하였다. 신대철은 「용비어천가」를 가사로 삼은 음악인 여민락, 치화평, 취풍형의 탄생과 향유, 전승과 단절의 역사와 배경을 살펴보았다. 이익주는 「용비어천가」가 조선 왕실의 조상에 대한 인식을 최종적으로 정리한 책이며, 동시에 왕실 조상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책이라고 보았다. 박현모는 「용비어천가」의 키워드 분석을 통해 용비어천가의 중심 메시지가 폭군 방벌의 정당성, 무모한 대외정벌과 잘못된 왕위 계승의 위험성을 밝히는 데 있다고 보고, 「용비어천가」의 편찬 동기와 배경을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