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시 무쓰오라는 신전
한성례(시인·일본번역가)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마지막 연인이었던 다카하시 무쓰오 시인.
“시는 공중에 떠 있는 누각이다. 그에 비해 소설은 지상에 지은 몰골스런 건축이다.”라는 편지를 보내 다카하시 무쓰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던 미시마 유키오. 이들 대문호는 문학과 삶에서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던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어쩌면 다카하시 무쓰오에게 미시마 유키오는 ‘신’이었을지도 모른다. ‘신’을 논할 때 거기에는 ‘평범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미시마 유키오는 10대 무렵에는 시를 쓰는 소년이었다. 소설가가 되었지만 다카하시 무쓰오 시인을 만나 자신의 소설에 새로운 시경(詩境)을 펼쳤으리라. 그의 소설은 풍부한 수사와 현란한 시적인 문체가 특징이다,
다카하시 무쓰오의 시 세계는 그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과 성소수자로서의 삶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천재적인 시인 다카하시 무쓰오는 일본을 가장 대표하는 시인 중 한 사람이다. 현재 살아 있는 일본 시인 중 『20억 광년의 고독』을 쓴 다니카와 슌타로와 쌍벽을 이룬다.
다카하시 무쓰오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가난한 모자 가정에서 자란다. 누나는 숙모가 빼앗다시피 데려가고, 어머니는 먼 곳으로 일하러 가고, 자신은 조부모에게 맡겨지지만 친척집을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 재학 중에는 폐결핵에 걸려 2년을 요양소에서 생활한다. 후쿠오카 교육대학을 졸업했으나 결핵 병력 때문에 교사의 길도 막힌다. 도쿄로 가서 일본디자인센터에 겨우 일자리를 구하지만 아르바이트였다. 몇 년 후 광고회사로 옮겨 카피라이터로 일할 때까지 난관으로 관철된 삶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니카와 슌타로 시인과 대화했던 한 좌담회에서 “어렸을 적에 고통스럽게 살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혜택을 받은 셈이다. 그러한 경험은 동년배에게 거의 없었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풍부한 경험’이었다. 어떤 환경이라도 거기에서 어떻게 창조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인지가 중요하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타고난 시인은 다른 것 같다.
그는 일본 시인들 중 현대 자유시와 전통 정형시 양쪽을 자유롭게 오간 유일한 시인이다. 일본의 여러 전통 시가는 형태만 다를 뿐 현대시와 동일하다는 입장에서, 정형을 지키면서 여러 장르를 병행하고 시대를 초월하여 유연한 시 창작을 해왔다. 그의 시는 현대시이지만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천오백여 년 전의 시집 『만요슈[萬葉集]』의 와카를 비롯하여, 단카와 하이쿠 등 전통시의 언어가 깊이 스며들어 있다. 시 외에도 소설, 오페라 각본, 일본의 전통 무대극인 노, 교겐, 조루리 등의 대본도 창작했다. 서양과 동양의 고전문학에도 박학다식하여, 여러 그리스 비극의 연극 각본을 썼고, 이백의 한시를 현대 일본어로 번역하는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문학 장르에서 활동해왔다. 작풍은 단아하면서도 대담하다.
성스럽고 신비로운 세계, 형이상학적인 세계, 허(虛)와 무(無)의 세계, 동성애의 탐미적인 세계……, 그리고 정액과 피와 죽음의 냄새가 감도는 시에서는 그의 신전에 모인 죽은 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오욕이 뒤섞인 삶을 미적 가치관으로 채색하고, 부도덕하다고 여기는 것을 어떤 종류의 윤리적 가치관으로 바꿔서, 그 만의 독특한 시학과 신화적인 상상을 과감하게 도입한 시 등, 이 시집을 번역하면서 자주 전율이 일었다. 그의 시는 이 시대가 가진 언어의 가능성을 가장 멀리까지 펼쳤고, 최대이면서 최고인 시의 진수를 보여준다.
2000년대 이후로는 환경파괴, 가족붕괴, 테러, 핵에너지 문제, 정보화에 따른 언어 파괴 등 사회문제를 주제로 한 새로운 시도 선보이고 있다.
이 시집은 일본 시초샤(思潮社)의 일본대표시인선 겐다이시분코(現代詩文庫) 시리즈로 출간된 1969년의 『다카하시 무쓰오 시집』, 1995년의 『속(続)ㆍ다카하시 무쓰오 시집』, 2015년의 『속속(続続)ㆍ다카하시 무쓰오 시집』에서 작품을 정하여, 각각 1부, 2부, 3부로 나눠서 번역했다. 이 시집에는 그의 소년 시대부터 최근까지의 시가 폭넓게 실려 있다.
다카하시 무쓰오의 시가 한국에서도 널리 사랑받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