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마치며
우리는 이미 많은 예술형식과 담론을 접하고 있다. 더 이상 예술의 형식과담론을 정의하려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을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규정하고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마치 그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창조적 행위는 언제나이론적 일반화보다 먼저 일어난다. 그러나 이론적 일반화가 없을 때, 그러한 창조적 행위는 기존의 틀 안에서 사장되거나 심지어 부정될 수도 있다..
미술역사에서 유사한 형식언어와 표현방법, 작품의 구성원리가 서로 다른 장르나 사조로 불리는 것들이 존재해왔다.그것은 바이오디지털아트BDA가 바이오아트, 뉴미디어아트, 사이버네틱스와 다른 예술형태로 구분되어야 할 근거를 제공한다. 이를테면,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은 1932년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1898-1976)의움직이는 작품들을 보면서 ‘모빌Mobiles’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방식은 다양한 기하학적 형태의 대비적인 움직임에 의해,우연하게 변화하는 형태를 연출하는 ‘모빌’이라는 하나의 양식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키네틱아트Kinetic Art’는또 다른 방법론에 의해 움직임을 나타내는 작품의 총칭이자‘모빌’과 같이 움직임을 작품의 조형적 요소로 수용하는 또 다른 개념이다. 이처럼 예술장르 중에는 별개의 의미를 내포한 각기 다른 정의와 형식이 존재하며, 예술에 대한 아이러니가숨어있음과 동시에 인식의 차이와 해석의 새로운 사고가 새로운 예술경향을 만든다.
새로운 현상이나 사조를 예술로 인정하느냐, 아니냐는제도적 자격수여의 여부에 달려 있겠으나, 예술제도는 얼마든지 새로운 예술현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탄력적이고 가변적이다.83) “예술은 정의할 수 없다”는 모리스 와이츠(MorrisWeitz, 1916-1981)의 주장과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아서 단토(Arthur Danto, 1924-2013)의 주장은 “해석은 자유롭다”는 주장과 이어진다. 변화하는 새로운 시각예술의 등장, 표현의 도구, 프로그램과 컴퓨터 알고리즘, 디지털 기술의예술창작 가능성, 감상자의 영향과 참여 등 오늘날의 예술작품이라고 정의하는 요소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다. 모방적 작품, 표현적 작품, 형식적 작품 모두 예술로 인정받는다. 예술가가 의도한 세계, 작품의 형식적 구조가 자체적으로 구현하는 세계, 비평가가 구성해내는 세계, 역사적 또는 문화적 문맥속에서 발현되는 세계 등 많은 해석이 필요하며, 예술은 다양한 비평을 통해 풍요로워진다. 또한 많은 작품의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 필요하다.84) 예술과 기술 그리고 환경의 영역을 융합하는 시대를 대변하는 바이오디지털아트BDA는 기존의 바이오아트와 다른 의미, 디지털아트와 또다른 비평적 관점에서 출현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의 바이오디지털아트BDA에 상응할 수 있는 작가들과 작품들을 고찰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본 저서에서는 혼종적 예술형태로서 바이오디지털아트BDA의 형식을 적용한 동시대 미술현장에서 필요한 개념적 프레임워크Framework를 제시하였다. Covid-19으로 더욱 급박해진 환경문제와 기후재앙의 위험, 이러한 환경이슈의 지질학적 배경이 되는 인류세 그리고 과학기술의 혁신으로 바이오,디지털, 인공지능으로 인해 인류에게 제기되는 포스트휴먼 주체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된다. 가속화되고 있는 바이오테크와디지털테크의 융합으로서 바이오디지털, 이러한 시대적 요청과 분위기는 바이오모픽과 뉴미디어아트의 혼종교배로서 바이오디지털아트BDA라는 새로운 유형의 예술형태를 탄생시키고 있다. 하지만, 바이오디지털Biodigital은 물론 바이오디지털아트BDA도 익숙하지 않은 용어이며, 동시대는 물론 다가올 미래를 예단하는 아직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개념적ㆍ장르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이다.
항상 개념보다 실천이 먼저 오기 마련이다. 이론적 정립과는 무관하게도 최근 예술활동은 이미 바이오아트의 디지털버전, 디지털아트의 바이오 버전, 사이버네틱아트의 공생ㆍ공진화 모델을 통해 바이오디지털아트BDA의 출현을 예고해 왔다. 바이오디지털아트BDA는 환경문제의 자각, 시대적 변화,첨단기술의 진화와 같은 달라진 전시환경을 선취한다. 또한,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을 수용한 융합예술의 흐름을 사이버네틱아트에서 발전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게다가 철학적문제의식과 시대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므로 다방면으로 확장 또는 융합이 가능하다. 이러한 융합은 기술매체가 발전함에 따라 더욱 다층화, 복잡화, 다종화의 길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컴퓨터 발전으로 점점 일상화되고 있는 ‘바이오’와‘디지털’의 융합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비평적ㆍ개념적ㆍ이론적 모델을 제시할 필요가 있는 시점에서〈바이오디지털아트: 생명, 환경, 테크놀로지와 공생하는 미술〉은바로 이러한 요구에 응답하려는 시도이다.
바이오디지털아트BDA는 동시대의 첨단기술과 융합된 예술로서 백남준의 사이버네틱아트와의 연결고리를 가지며 국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예견된다. 나아가, 바이오디지털아트BDA는 기술매체의 발전과 더불어 동시대의 뉴미디어아트와의 접점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둘의 만남은 새로운 변종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바이오디지털아트: 생명, 환경, 테크놀로지와 공생하는미술〉 책을 통해서 바이오디지털아트 개념의 내포적ㆍ외연적확장 가능성을 꾀하였다. 아직은 명확하게 규정하기가 쉽지않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개념의 특성화’라는 관점을 취했다. 내포적 측면에서는 혼종성의 가속화,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의 포스트휴먼적 공생, 테크노에틱스의 인간, 자연, 기술의공존의식을 제시하였고, 외연적 측면에서는 국내외의 다양한사례를 검토함으로써 바이오디지털아트BDA의 확장 가능성을탐구하였다. 또한, 바이오디지털아트BDA 연구와 전시가 다양하게 생산될 수 있는 개념적ㆍ이론적 초석을 설명해 놓았다.
기술의 급진적인 발전과 인류세나 환경악화가 쉽게 사라질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바이오디지털아트BDA는 더욱 주목받는 예술형식이자 장르로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