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건축의 시공기술 분야 연구가 중요하다
조선 후기는 우리가 전통이라 여기는 것들과 상당 부분 연결되어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은 고려 시대의 것으로 봉정사 극락전과 부석사 무량수전을 비롯해 몇 동에 불과하다. 근대 이전 현존하는 건축은대부분 임진왜란 이후에 조영된 것들이다. 전통건축이라고 하면 대개 조선 후기 건축이 연상되는 이유는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전통건축 연구에서 조선 후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문 분야의 성패는 우선 기초자료의 구축 정도에 따라 갈린다.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실(현 국립문화재연구원)에서 1973년부터 발간한 『한국의 고건축』 시리즈를 비롯해, 문화재청과 지방 자치 단체에서 발간한 각종 건축문화재 실측조사보고서는 한국 건축 연구의 밑바탕이 되었다. 이러한 실측조사 자료를 토대로 조선 후기 건축은 구조와 의장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가 진척되었고 풍부한 성과를 이루어냈다. 이는 건물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단계의 연구 성과이다. 이에 반해 건물의 생산 단계인 시공기술 분야는 전체 공정을 충분히 이해할 만큼의 결과물이 도출되지 못하였다. 가장 큰 이유는 시공기술 관련 기초자료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공기술 연구의 접근 방법과 기초자료 구축의 어려운 점을 헤아려보면 그러한 상황이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산릉의궤와 정자각을 주목하다
시공기술 연구의 어려움과 영건의궤가 가지는 사료적인 한계를 극복하고자 저자가 주목한 것은 조선 후기 왕릉 조성 공사보고서인 산릉의궤와 현존하는 40여 동의 정자각이다. 비록 작은 규모의 건물이지만 동일 유형으로, 산릉의궤별 기술체계도 유사하여 문헌과 실물 유구의 통시적인 비교분석이 가능하다. 산릉의궤에는 정자각에 사용된 철물의 종류와 양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작은 규모의 정자각에 5,000개 이상의 철물이 쓰였고, 창덕궁 인정전에는 무려 103,000개 이상의 철물이 들어갔다. 저자는 이렇게나 많은 철물들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궁금증을 가지고 이러한 의문을 해소해 보고자 연구를 시작했다. 산릉의궤와 정자각의 목록을 정리하고 산릉의궤 기술체계를 정리하고, 번역해나가면서 주요 공정별로 시공기술 연구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되었다.
정자각이 지닌 시공기술의 위치
이 책에서는 정자각이라는 건물 1동을 건립하기 위한 관리ㆍ감독 조직의 구성, 투입된 각종 장인과 보조 인력의 구성, 자재의 조달과 제작 방식, 제한된 공사 기간 내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시공관리, 현존 정자각과 비교를 통해 기초부터 석공사, 목공사, 지붕공사 등 정자각을 짓기 위해 구현되는 시공기법 등 시공기술 전반을 총체적으로 조망한다. 정자각(丁字閣)은 정전(正殿) 3칸, 배위청(拜位廳) 2칸이 정(丁)자 형태로 결합된 작은 건물이지만 왕릉의 중심 전각으로 궁궐의 정전, 종묘의 정전과 비교하여 그 위상이 낮지 않다. 그렇지만 정자각이 관영건축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근정전, 인정전과 같은 다포를 꾸민 중층의 팔작지붕 건물에 비해 정자각은 대부분 익공을 갖춘 단층 맞배지붕으로 단순한 건축이다. 하지만 전통건축에 가장 많이 쓰인 삼량가(三樑架, 배위청)와 오량가(五樑架, 정전)로 구성된 정자각은 가장 기본적인 시공기술을 차근차근 익혀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가장 중요한 공종에 해당하는 목공사의 경우 정자각과 같은 규모의 사묘정전과 비교를 통해 관영건축에서 정자각의 시공기술의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다.
관영건축 시공기술 연구의 의의
관영건축은 국가가 직접 영조한 건축으로, 근대 이전 국가 역량의 상징이며 당시 과학기술의 총화라 할 수 있다. 조선 시대 관영건축공사는 의궤를 기준으로 영건역(營建役), 산릉역(山陵役), 축성역(築城役) 등으로 나뉜다. 영건역은 궁궐, 종묘, 사묘 등 주로 도성에서 펼쳐진 공사이고, 산릉역은 도성을 벗어나 풍수를 고려한 산지에 봉분과 정자각(丁字閣) 등을 조성하는 것이며, 축성역은 국방 관련 도성을 비롯해 산성과 읍성을 조영하는 일이다. 이 외에도 각종 다리, 제방, 지방의 관아 등도 관영건축공사에 포함된다. 삼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불교건축 중 다수가 국가 재정이 투입된 관영건축에 해당한다. 현존하는 고려 시대 불교건축은 당시 관영건축 기술 수준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이기도 하다.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 시대로 내려오면 불교건축은 관영건축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더 이상 지원받지 못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 의례와 관련된 관영건축에 한하여 재원이 집중되고 당시 최고 수준의 기술이 적용되는 혜택을 입게 된다. 즉 조선 시대 관영건축은 당시 건축 기술의 수준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이다.
문헌과 실물을 비교 연구한 전통건축의 시공기술사
조선 시대 관영건축에 대한 연구는 영건의궤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어왔다. 이에 비해 산릉의궤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산릉의궤는 영건의궤에 비해 많은 권수가 남아 있다. 영건의궤가 다양한 건축 유형을 다루었다면 산릉의궤는 정자각 등 동일 유형의 건축공사에 대한 반복적인 기록물이다. 즉 산릉의궤는 동일 유형의 건축에 대한 변화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저자는 한국건축의 본질에 한 발짝 더 다가서기 위해 그동안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시공기술 연구가 더는 늦춰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같은 의지는 동일한 유형의 변화상을 탐색하기에 유효한 산릉의궤와 정자각을 주요 사료로 삼아 조선 후기 관영건축 시공기술의 변화 양상과 특징을 밝히고, 한편으로는 시대적 한계를 조명하는 것으로 빛을 발했다. 저자의 본 연구는 문헌과 실물을 비교하여 한국 전통건축의 시공기술을 체계화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아 제13회 심원건축학술상의 수상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