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때 서울에 나타난 여러 건축 현상을 사회미학의 관점에서 다양하게 분석하고 있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는 서양 건축이라는 이질적 이방 양식이 처음 서울에 등장하기 시작한 시대로 그 사회적 · 역사적 의미가 남다른 시기이다. 이때 시작된 서양화가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우리 손으로 직접 운용하기 시작한 근대화에 긍정과 부정의 양면적 영향을 끼친 점에서 그러하다.
이 책은 현재 우리가 겪는 정치 · 사회적 병리 증세는 상당 부분 일제강점기 때 그 싹이 튼 것이며, 이것이 올바로 청산, 극복되지 못하고 근대화로 이어지면서 점점 악화되었다는 생각에서 출발하고 있다. 건축은 이러한 ‘청산되지 못한 역사’의 증거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분야로서, 저자는 일제강점기 건축의 역사적 의미를 한마디로 ‘압축 근대화에 나타난 악영향의 총 본산’으로 진단한다. 다시 말해서 현대 한국 사회의 병리 현상의 근(近)과거적 뿌리는 일제강점기에 있으며, 건축 환경의 갑작스런 변화가 세부적 차원에서 그 주범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이질적 건축 환경에 군국주의의 식민지배 이데올로기의 가치를 실어 강요한 탓에 상태가 더욱 악화되었고, 이런 상황이 해방 이후 전혀 청산되지 못하고 압축 근대화라는 또 다른 부정적 역사 진행과 합해져서 현재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책의 특별한 점은 단순히 일제가 우리의 전통을 말살했다는 일반론과 그를 증명하는 건축적 증거를 수집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서양 건축이 시작된 개화기 시대 건축의 의미는 무엇이며, 일제강점기 때 건축 활동 가운데 구체적으로 무엇이 악영향의 출발점이 되었고, 또한 어떤 경로와 방식으로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는지를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데 있다. 즉 그동안 일제강점기 건축의 주된 연구 경향이었던 자료 발굴이나 실측, 연대기 등에서 벗어나 그다음 단계인 해석 작업을 시도하고 있는 매우 의미 깊고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연구서라 할 수 있다.
세부적으로 흥미를 끄는 부분들도 많다. 외관상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의 서양 건축물들이 건축 주체의 자주성 면에서는 분명히 구별해야 할 내용들이 많이 있으며 이런 차이는 실제 건축적 특징에도 일정 부분 나타났다는 저자의 분석은 특히 눈여겨볼 대목이다. 또한 이 시기 서양 건축 속에 부분적으로 흘러들어간 한국 전통 건축의 특징을 추적한 부분과 그것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한 ‘자주적 서양 양식’과 ‘일제강점기 민족 건축’에 관한 분석도 매우 흥미롭다.
저자는 이번 서울의 개화기-일제강점기 시대 건축 연구를 시작으로 이후로 근대화기 서울 건축, 현대 서울 건축까지 후속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이것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도시이자, 500년간 연속성을 유지해온 세계적인 도시인 서울의 건축의 역사와 그 사회미학적 의미를 일괄할 수 있는 귀한 작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