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식객>, <올드보이>, <타짜>, 드라마 <쩐의 전쟁>, <궁>, <풀하우스>, 컴퓨터 게임 <리니지>, <바람의 나라>…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원작이 만화라는 점이다.
만화는 이처럼 영화, 드라마, 게임,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면서 빠른 속도로 대중 속에 파고들고 있는 대중문화 예술이다. 이 책은 사회적인 영향력이나 학문적인 가치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의 전유물로 또는 할 일 없는 어른들의 소일거리로 여겨져 그동안 연구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만화를 문화사회학자와 만화 애독자인 저널리스트가 재미있지만 가볍지 않게 풀어보고자 시도한 결과물이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최샛별과 최흡은 남매지간으로 각기 전문적 지식과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인 ‘문화사회학’이라는 학문과 ‘만화’라는 분석 대상을 공동 연구하여 한 권의 책으로 탄생시켰다.
사실 우리가 ‘만화=만화책’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순간 만화는 이미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광고 전단지에서의 한 컷짜리 그림들, 신문의 시사만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각종 캐릭터 등 만화는 우리가 생활 속에서 항상 접하는 매체가 되었다. 또한 만화는 어렵고 새로운 분야로 나아갈 때 그 진입 장벽을 낮춰주고 대중들과 쉽게 교감하게 하는 대중 친화적인 매체이다. 이처럼 만화가 막강한 문화 콘텐츠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이 달라지고 있기는 하나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만화를 ‘저급한 것’으로 여기는 정서가 지배적이었다. 그에 따라 만화에 대한 학술적 접근도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국내에 소개된 만화와 관련된 학술적 논의는 외국의 연구들을 번역하여 소개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으며, 한국 만화에 대한 연구의 경우 개인적인 시각을 가지고 만화를 정리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책은 문화사회학적인 분석 시각을 가지고 만화를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줌으로써 그 속에 반영된 우리 사회의 모습, 더 나아가서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해준다. 만화를 문화사회학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면 지금까지 가볍게 읽고 지나쳤던 만화가 우리의 사회와 문화를 설명해주는 보석 같은 문화적 텍스트로 변화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말괄량이였던 캔디가 한국에 수입되면서 ‘참고 또 참는’ 인고의 여인으로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만화에서 추남’으로 그려지던 한국인의 얼굴이 경제 발전과 88 서울 올림픽 등을 계기로 ‘훈남’으로 변해가는 추세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공포의 외인구단>에서의 지옥 훈련이 한국 사람들의 폭발적인 공감대를 얻은 이유와 그 이면에 내재된 국민 의식은 무엇일까? <신의 물방울>과 <식객>처럼 음식을 주제로 한 만화가 점차 인기를 얻게 되는 현상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런 의문점을 가지고 만화를 분석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이 책에서는 아직 한국에서는 생소하다고 할 수 있는 문화사회학의 다양한 이론들을 대중에게 친숙한 여러 종류의 만화에 적용시킴으로써 문화사회학을 보다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학술적 논의를 이끌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만화에 대한 참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냄으로써 독자들이 만화 자체에 대해서도 더욱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이 책을 통해 문화사회학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은 만화라는 친숙하고 사랑스러운 사회학적 분석의 대상을, 또 만화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고 싶은 독자들은 문화사회학이라는 해석의 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총 2부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문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개념을 짚어보고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차이, 그리고 문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인 문화사회학에 대해서 설명한다. 또한 문화사회학적 분석 대상으로서의 만화를 언급하고 그 중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다양한 만화 작품들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만화가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만화와 그 주변국인 일본의 만화를 사례로 제시한 것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인데, 국내의 문화사회학 관련 저술들이 주로 서구의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실정에 맞는 적절한 예시를 들거나 설명을 하는 것이 부족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제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만화에 대한 문화사회학적 탐구가 진행되는데, 사회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다양한 종류의 만화를 분석하고 중요한 문화적 텍스트로서의 만화가 일반 대중과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 및 그 상호 연관성을 반영 이론, 형성 이론, 문화의 다이아몬드 이론 등 사회학적 이론들과 결부시켜 학술적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또한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한 디지털 만화의 등장 등 기술과 만화의 관계, 대여점 시스템으로 인한 만화 유통 체계와 만화의 생산 및 소비층의 변화 등도 충실하게 추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