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위관념과 멀미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의 제목을 [포위관념과 멀미 - 소설사 쓴다]로 붙인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여러 정치학과 사회학 저술들을 읽는 동안 나는 우리가 꼼짝없이 거대 관념에 포위당한 사육인간임을 알았다. 거대한 포위작전으로로 사람들을 장악하거나 몰아놓고 이용하는 악마들은 대체로 그들이 기운 쓸 대상을 필요로 한다. 이런 관념의 제국주의가 곧 포위관념이다.” 이어서 그는 그 포위관념을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세계를 뒤덮고 있는 종교다.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등 전 지구적인 힘을 가지고 퍼져 나간 종교를 지목한다. 그 속의 핵심에는 아주 좋은 원리를 갖추고 있으나 일단 그것이 전파되기 시작하면 그 전파의 힘을 위해 엄청난 집단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성, 인간중심 과학주의다. 과학은 우리 현대를 사는 사람들 삶의 몸에 붙어 있는 가장 큰 포위관념임을 강조한다. 과학의 이름으로 된 것이면 그것이 어떤 결과를 부를 것이든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될 만큼 막강한 관념의 힘을 행사하고 있다.
셋째, 힘이다. 인간을 부리는 막강한 힘이야말로 이 시대를 가장 잘 덮어씌우고 있는 거대한 포위관념으로서, 또한 그 힘은 돈이라는 환상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런 각기의 포위관념들이 아이러니하게도 함께 어울려 어깨춤을 추면서 세계를 뒤덮고 있음에 조소를 던지며(멀미가 난다!), 이런 더러운 세기 속에 우리가 속절없이 놓여 있다는 생각을 이 책들 속에 녹여내고 있다. 즉, 이 책 속에서 이 세 가지 포위관념을 가지고 신명나게 굿풀이를 하듯 현대문학사의 족적을 작가 특유의 날카롭고 현실감각적인 눈으로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소설사 쓴다
저자가 부제로 붙인 <소설사 쓴다>는 항목은 이 저술의 대부분 내용들이 한국 현대소설 작품들을 해석 평가한 것들이기 때문에, 현대소설사에 값하는 내용이면서 지금 그것을 쓰고 있다는 암시를 주려고 한 것이다. 그는 1부에서 한국 현대문학사를 기술하는 일은 근대·근대성이라는 이름의 일본식 틀로부터 자유로운 자세를 취할 때에라야 비로소 제대로 된 것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그 문제의 실마리를 이가원의 ?조선문학사? 기술 태도에서 찾는다. 저자는 ‘근대성’이라는 관념의 틀로 우리 문학사를 기술하는 일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음을 인식하며, 주체적 자기 말 쓰기를 위한 한국문학사의 기술을 시도한다. 그럼으로써 이 책이 근대성 그림자의 한 표징이기를 소원한다. 이 책은 연대기적 순서에 따라 한국문학 작품들을 그 내용별로 또는 주제별로 이어 풀이해 보여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그것이 산출된 시대의 정신을 읽게 한다. 1부 ‘소설 문학사 쓰기의 문제들’에서는 ‘문학사 기술의 근대성 문제’, ‘한국문학과 서양의 잣대’, ‘문학작품 풀이의 제멋대로 틀 짓기’, ‘자아와 민족’, ‘죽음이라는 문학적 화두’에 대해 논의를 펼친다. 2부 ‘한국 현대사회와 포위관념’에서는 ‘새로운 신화시대, 이데올로기로서의 신화’, ‘인문학의 위기와 방향성 모색’, ‘폄과 움츠림의 문학적 진화과정’, ‘로만스 문학시대와 1990년대’, ‘한국소설과 해학’에 대해 논의를 전개한다. 3부 ‘문학과 역사, 사람, 작가’에서는 ‘채만식 문학세계의 역사적 발자취’, ‘박영준의 문학과 인간’, ‘박경리의 생명 경외 사유 읽기’, ‘박경리 문학의 사상적 논의들’, ‘서기원 소설론’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4부 ‘현대 한반도 역사 현실과 소설적 해석’은 황석영, 이균영, 정건영, 김주영, 박범신 등 우리 시대의 대표적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단상이다. 이 책의 매력은 거침없이 쏟아내는 도발적인 질문들과 비판의 칼날을 서슴지 않고 들이대며 현대 한국문학사 기술에 천착해 들어가는 저자의 문학적 힘이다.
작가의 의무에 대해
저자는 머리말에서 “작가란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그들이야말로 이런 시대의 아픔이나 절망을 그가 선택한 언어 공동체 사람들 앞에 드러냄으로써, 그 시대를 읽어 밝히며, 그를 포위한 악마들의 숨결을 피하도록 하려는 사람들이다.” 이를 위한 실천으로 이제까지 우리가 무심하게 쓰고 있는 말들, 일상 용어는 물론이고, 학술용어로 쓰이고 있는 것들에 대한 깊은 검색 태도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모든 말 쓰기에는 언제나 편차가 있게 마련인데, 가령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적 동물로서의 인간’이라고 썼을 때 그 인간의 범위란 유럽인과 페르시아인들을 제외한 그리스인들 뿐이었다는 것이다.(서강대학교의 정치학자 강정인 교수의 저술 인용) 작가들은 이런 악행의 행적들을 꿰뚫어 읽는 사람들이어야 하며, 나아가. 인문학 학자들 또한 이런 말의 치열한 검색주의자여야 한다는 것이 저자 정현기 교수의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