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편지가 가득 쌓인 비밀스런 서랍장을 열어젖힌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눈앞에 쏟아진 편지들에는 이제 도저히 닿을 길 없는 ‘당신’을 향한 안타깝고 쓸쓸한 마음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하나였을 때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모두 서로에게 전해졌”(「우주적」)지만, 더이상 함께일 수 없는 지금은 ‘당신’의 존재를 실감하고 ‘당신’의 마음을 가늠하기 위해서 편지라는 통로가 필요하다. 그래서 시인은 엽서에 “뒤늦은 사랑”(「먼 곳」)을 쓴다. “사랑을 쓸 수 없다면 저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에요”(「불타버린 편지」)라고 쓰라리게 말하며 쓴다. 하지만 편지 쓰기는 결국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감을 끊임없이 환기하기에 “수많은 통점으로 뒤덮인 글쓰기”(「사랑의 폐광」)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렇게 애타게 써 내려간 편지가 ‘당신’에게 제대로 도착할지도 알 수 없다. 엽서를 촘촘히 채운 문장들은 잠에서 깨고 나면 감쪽같이 사라져 언제나 “슬픈 백지”(「가장 불행한 사람」)만이 남기 때문이고, “우리 사이에는 집배원이 없고 길이 없”(「한산(寒山)」)기 때문이다. 홀로 ‘편지의 시대’에 남은 이처럼, 수신에 대한 희망 없이 절실하게 계속되는 시인의 편지 쓰기는 그 애절함과 강렬함으로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편지란 비어 있어서 우리가 거듭해 꿀 수 있는 꿈이에요”
백지 위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연결의 상상력
언뜻 열렬한 연문(戀文)으로 읽히는 시편들은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낭만이 짙게 드리운 언어 뒤편에서 시인은 ‘편지’라는 형식에 대해 존재론적으로 고찰한다. 시인에게 편지 쓰기란 ‘당신’과 가까워지거나 무언가를 주고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만 ‘당신’이 거기 있음을, ‘당신’의 “현전을 확인”(「고도를 기다리다보면」)하는 것으로 그 소임을 다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당신’을 부르며 언제 돌아올지 모를 응답을 기다리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의 존재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자신의 결여를 메우기 위해 타자의 심급이 필요하”(「죽지 않는 구멍」)기 때문이다. 시인은 ‘당신’으로 대표되는 “미지(未知)”(「롱 러브레터」)의 타자들을 엽서 위에 반복해 불러내어 자신의 “빈 곳”(「죽지 않는 구멍」)에 “또다른 얼굴이, 얼굴들이 솟아나”(「언덕 위 관음」)게 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재를 완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시인이 편지-시 안으로 불러들이는 타자는 연인 같은 구체적 대상을 넘어, 텍스트 안에서 재구성되는 영화, 웹드라마, 연극, 동화 속 장면과 목소리 들로 확장되고, 가차 없는 폭력과 끔찍한 야만으로 인해 “우리가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 있는 곳”(「책갈피」)으로까지 나아간다. 이때 편지는 이곳의 우리를 저곳의 부재 또는 상처와 매개하는 필수적인 통로로, 단절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거듭난다. 우리의 존재는 타자를 경유하지 않고서 설명될 수도 가능할 수도 없다는 듯 멀리서나마 편지를 통하여 타자와 연결되어 있으려는 노력은 이 시집에서 장이지의 시를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된다. 이렇듯 “편지의 존재론”(해설)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모든 시편들이 편지를 풍성하게 사유하는 바,『편지의 시대』를 읽는 일은 그 안에 스민 철학적 깊이와 집요함에 새삼 전율하고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선 곳에서 연결은 어떻게 성취되는지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