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고, 간극을 좁히며!”
"Cross the Border-Close the Gap"
경계해체의 시대, 하이브리드 문화와
하이브리드 예술의 시대가 온다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의 경계가 무너지고 각기 다른 것이 서로 뒤섞이는 ‘크로스오버’시대, 또는 ‘하이브리드’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나라가 순혈주의에서 벗어나 다인종/다문화사회로 진입했으며, 그 과정에서 문화는 서로의 경계를 넘어 자연스럽게 타문화와 혼합하게 되었다. 경계해체와 이종혼합은 보다 더 강하고 바람직한 새로운 ”하이브리드 변종”을 탄생시켰으며, 그러한 현상은 오늘날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한 변화는 문학에서도 일어났다. 장르해체이자 혼합예술인 그래픽 노블이나 비주얼 노블은 문학의 관습적 경계를 와해시켰고, 트랜스휴머니즘과 트랜스내셔널리즘은 각각 인간과 기계의 배타적 구분을 초월하는 문학과, 두 나라의 국경을 넘나드는 새로운 문학을 산출했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의 확산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구분을 소멸시켰으며, 본격문학과 판타지/SF/추리 소설의 혼합은 주류문학과 서브장르문학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경계해체는 또한 과학에서도 기계와 인간의 이상적 합일과 크로스오버를 시도하는 ‘트랜스휴머니즘’이 생겨났고, 국제사회에서도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습적인 경계를 해체하는 트랜스내셔널리즘이 부상했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수명연장과 육체능력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인간이 기계의 도움을 받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인간과 기계 사이의 이분법적 구분과 서열을 해체했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에서는 인간이 되기 위해 인간의 장기를 이식해 결국은 늙어죽는 로봇이 등장한다. 그런 면에서 <바이센테니얼 맨>에서 인간의 장기를 가진 로봇 앤드류와 인공장기를 이식한 인간(소청심사위원장)의 대화는 대단히 상징적이다.
위원장: “네가 아무리 인간과 닮았다고 해도 너는 인공적 존재일 뿐이야.”
앤드류: “하지만 인공장기를 이식한 수많은 사람들은 그럼 무엇인가요? 위원장님도 인공신장을 이식하셨지요.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는 위원장님도 인공적이지 않나요?”
위원장: “부분적으로는 그렇지.”
앤드류: “그렇다면 저도 부분적으로는 인간입니다.”
(본문 중에서)
트랜스휴머니즘이 인간과 기계의 이상적 결합 가능성을 탐색한다면, 트랜스내셔널리즘은 하나의 국가에만 속한 개인의 정체성을 확대해 국경을 넘나드는 통문화적 존재로 보는 새로운 사조이다. 예컨대 재미 한인교포작가들은 그동안 미국에만 소속되고 미국에만 충성을 바쳐야 하는 미국작가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트랜스내셔널리즘에 따르면, 이제 교포작가들은 한국과 미국, 또는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두 세계에 속한 작가’들이 되었다. 과학자들은 서로 다른 유전인자가 만나서 생성되는 하이브리드는 아름답고 총명하며 강인한 반면, 순혈주의는 기형이나 열성 유전인자를 확대 생산한다고 말한다. 경계해체 역시 새로운 것들과의 융합과 혼합을 통해 원래보다 훨씬 더 강인하고 더 우수한 우성인자를 산출해내게 될 것이다. 앞으로 새로운 주류로 자리 잡게 될 혼합문화와 혼합예술은 새로운 개념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며 우리를 새로운 인식의 세계로 데려갈 것이다. 경계해체와 크로스오버, 또는 퓨전과 하이브리드는 이제 부인할 수 없는 범세계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경계해체 시대의 문화는 다양한 문화가 혼합된 ‘하이브리드 문화’일 것이고, 미래의 예술 또한 부단히 다른 세계를 탐색한 예술가들이 창조해낸 ‘하이브리드 예술’일 것이다.
사라져가는 경계들과 겹치는 영역들
이 책은 경계를 넘어 다른 영역을 탐색하고 다른 문화와의 융합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하이브리드 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다각도로 성찰하고, 문학작품의 분석을 통해 읽어내고, 우리가 나아갈 길을 탐색해보기 위해 씌어졌다. 최근 문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을 포착하고, 새롭게 등장한 문예이론들을 성찰하고 있다. 즉 ‘트랜스’시대의 대표적인 문예이론들을 점검하고, 관습적인 경계를 초월하고 있는 새로운 문학 장르들을 성찰하고, 최근 미국문학의 특징인, 1960년대 이후 미국 문화와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오고 있는 ‘탈중심주의적 인식의 변화’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또한 하이브리드시대에 다시 읽어봐야 할 문학작품을 간단한 내용설명과 함께 분석하고 있다.
쇼크는 놀랄 만한 마네킹이었다. 그것은 슈라우드처럼 만들어졌지만, 살은 거품 비닐, 피부는 비닐 플라스티솔, 머리는 가발, 눈은 성형용 플라스틱, 그리고 치아는 존경받는 미국인들의 19%가 하고 있는 틀니로 되어 있었다. 가슴에는 혈액 저장소가 있고, 중앙에는 혈액펌프가 있었으며, 복부에는 니켈 카드뮴 건전지로 된 동력 공급원이 있었다. …… 그는 경비실로 돌아가다가 슈라우드 앞에서 멈춰 섰다.
“아니, 이게 뭐지?” 그가 말했다.
“너보다는 나은 존재야.”
“이럴 수가!”
“너나 이럴 수가! 해라. 나와 쇼크는 너 같은 인간들이 언젠가는 되고 말 그런 존재야.” (Pynchon, V. 1961, p. 266)
각기 다른 경험을 대위법적으로 바라봄으로써, 그리고 내가 뒤엉키고 중첩되는 역사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어가면서, 나는 ‘비난의 정치학’과, 그보다 더 파괴적인 ‘대립과 적대의 정치학’을 초월하는 제3의 대안을 제시하려고 한다. 거기에서 더욱 흥미있는 형태의 세속적인 해석이 생겨나는데, 그것은 단순히 과거를 부정하거나, 제국주의의 종말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거나, 또는―폭력적이고 너무 쉽고 유혹적이기 때문에 더욱 소모적인―결국 위기를 초래할 서구와 비서구 문화의 적대를 야기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무언가가 될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일어나는 것을 수동적으로 지켜보고만 있기에는 세계가 너무 작고 너무 상호 의존적이다. (사이드, 「문화와 제국주의」, 1995, p.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