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의 사랑은 번번이 실패하는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페미니즘의 핵심 주제가 된 ‘사랑’
프랑스 여성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모나 숄레가
사랑의 실패 원인으로 가부장제를 지목해 분석하고
우리에게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반복되는 사랑의 실패, 원인은 가부장제?
‘페미니즘 리부트’의 시대를 맞아 사랑은 더 어려워졌다. 최근 실시된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미혼 남녀 10명 중 6명은 연애하고 있지 않다. 여전히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와 사랑 노래,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은 왜 연애하지 않을까? 반복되는 사랑의 실패로 우리는 좀처럼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고 교류하는 것을 더 어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18년 출간 후 지금까지 40만 부 이상 판매되고 128주간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킨 《마녀》의 저자인 모나 숄레는 이 책 《사랑을 재발명하라》에서 가부장제가 이성애 관계, 사랑을 망가뜨린다고 보고, 이를 위해 페미니즘의 렌즈를 문학, 드라마, 영화부터 여러 사건, 사고와 이를 다룬 언론 보도에 들이대어 대중문화 전반을 섬세하게 관찰한다. 책은 이렇게 다양한 사랑의 사례를 다루며 가부장제를 면밀히 분석하고, 사랑을 단순한 개개인의 일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영향을 받는 사회적인 것으로 재조명한다.
가부장제는 어떻게 우리의 사랑을 망가뜨리나?
여성의 열등성을 낭만화하는 대중문화부터
가정폭력 가해자를 옹호하는 언론의 보도까지
모나 숄레는 먼저 프롤로그에서 우리 사회에서 사랑이 발휘되는 문화적 배경부터 짚는다. 프랑스의 위대한 연애소설인 《주군의 여인》에서 보이듯, 사랑의 현실적인 면보다는 열정에만 주목하는 대중문화의 면면을 꼬집고, 이러한 열정이 남자 주인공을 여성에 대한 불신 가득하고 미숙한 관점 속에 가두며, 일상적이고 육체적인 세속적 삶을, 그리고 동시에 이것과 연관된 여성을 멸시하는 엘리트주의적 태도를 가리는 가림막처럼 쓰인다고 지적한다.
그러고 나서는 1장에서 우리의 낭만적 표상들이 어떻게 여성의 열등성을 승화하면서 구축되었는지 살펴본다. 그 결과 많은 여성이 한 남성의 총애를 받기에는 너무 크고, 너무 거세고(문자 그대로의 의미이자 물리적 의미로), 너무 똑똑하고, 너무 창의적이라는 등 ‘너무 과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렇다고 모든 조건을 충족해서 남성의 자아를 위협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여성이 훨씬 행복한 사랑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당연하게도 자아가 제한되고 부정되는 토대 위에서 자아의 개화를 구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장에서는 가정폭력의 메커니즘을 비정상이나 일탈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을 통해 남성과 여성에게 처방된 행동의 논리적 결과로서 살펴본다. 자신의 애인인 여배우 마리 트랭티냥을 살해한 프랑스 음악가 베르트랑 캉타를 포함해 많은 가정폭력 가해자들이 피해자가 폭력을 스스로 초래한 것처럼 말하는 것이나, 연쇄살인범에 끌리는 여성의 사례들을 분석하며, 폭력적인 남성을 포함해 모든 남성의 감정, 경험, 관심사 등에 우월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사회의 부조리함을 철학자 케이트 만의 ‘힘패시himpathy: him과 sympathy의 조합)’ 개념을 빌려와 지적한다.
3장에서는 여성과 남성이 각자 사랑을 다르게 평가하는 것을 관찰한다. 여성들이 사랑을 과대평가한다면, 남성들은 사랑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여성과 남성이 사랑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에서 오는 불균형에 대해 분석한다. 여성이 연애 관계에 더 강력한 투자를 하는 것을 모성의 욕구로 설명하는 에바 일루즈의 주장을 여러 다른 경우의 사례를 가져와 반박하며, 사랑에 빠진 여자로서의 정체성이 어머니로서의 정체성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여성이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성차별적인 사회를 비판하고, 이런 의존을 만드는 여러 사회적 조건을 하나씩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여성이 남성의 환상에 부합하는 정숙한 이미지를 제공하는 아주 오래된 역할에서 벗어나 욕망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를 살핀다. 《O 이야기》와 같은 성애 소설의 사례를 가져와 여성의 성적 욕망과 그것의 표현을 두고 남성들이 보인 모습을 돌아보고, ‘우리의 환상은 정말 우리의 것일까?’, ‘평생 남성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 젖어 지냈는데 어떻게 해야 자기 고유의 상상계를 되찾을까?’ 등의 여러 의문에 답을 해나간다.
저자는 가부장제가 이성애 관계에 개입하는 다양한 측면을 훑고, 이상적이거나 현실적인 여러 개선 방안을 제안한다. 저자는 많은 동거 커플이 상대의 부재를 기뻐하는 모습을 관찰하는데, 독립된 주거지의 원칙을 이야기하며 비동거의 여러 이점을 열거하고,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나 프리다 칼로와 같은 실제 사례를 가져와 이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따로 사는 것이 집안일의 분배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점도 언급한다.
또한 자립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하며, 자립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은 성이나 사랑의 삶을 완전히 거부하는 게 아니며 자기 안의 질서를 바로잡는 일로 설명한다. 이를 통해 성행위를 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 등에서 자유로워지고, 자신의 ‘중심’을 남성에서 자기 내면의 새로운 곳으로 옮길 수 있다.
이외에도 모나 숄레는 우리가 이성애 관계에서 사랑을 재발명할 수 있을 여러 이상적, 현실적 방안을 내놓는다. 특히 남성들에게도 도움이 될 여러 조언을 하는데, 남성들이 여성만큼이나 타인과 깊고 만족스러운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며 과감하게 ‘사랑한다는 사실과 연계된 취약성’을 끌어안으라 권한다. 이와 관련해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에서 아둔해 보였던 애덤이 어머니의 조언에 따라 과감하게 ‘사랑한다는 사실과 연계된 취약성’을 끌어안고, 자신의 사랑에 솔직해지는 모습을 사례로 가져온다.
사랑을 재발명하라
흔히 페미니즘을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 알약으로 비유하는데, 페미니즘을 알게 된 사람은 이제 영원히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과거와 같이 사랑할 수도 없는 것이다.
모나 숄레는 《사랑을 재발명하라》에서 글쓰기를 통해 사랑의 격정을 되찾으려 한다며, 가정폭력 같은 이성애 관계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면서도 사랑을 언제나 감당할 만한 위험으로 보고 사랑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점차 사랑을 잃어가는 한국에서, 모나 숄레의 분석과 제안은 사랑 앞에서 항상 헤매고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훌륭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