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시대 속에서 꿈을 향해 나아간 아이, 홍도
1930년대 말 일제의 폭압은 극에 달했습니다. 조선 예술의 명맥을 끊어 놓으려는 횡포 또한 대단했습니다. 조선의 예술 정신을 이어 온 예술 기생이 대접받는 시대는 끝난 듯했습니다.
아버지를 잃고 갈 곳 없는 열한 살 어린 홍도는 노래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 가지고 달성 권번에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향화 행수에게 기생 수업을 받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당시에 노래를 잘하는 기생은 레코드 판을 내고 가수로 활동했으니까요. 예술 기생의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어린 소녀들이 기생이 되는 것을 우려한 향화 행수는 쇠심줄 같은 홍도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결국 수업을 받도록 허락합니다. 홍도는 기생 수업에서 춤, 노래, 서화뿐만 아니라 조선과 조선 예술의 정신을 배웁니다. 노래 실력이 뛰어난 홍도는 대회에 나가 상을 받고, 일본 레코드사 사장의 눈에 띄어 음반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하지만 의로운 일을 나선 향화 행수를 떠나 보내고, 악극단에서 조선인들을 위해 공연하며 홍도는 고민하게 됩니다. 레코드 판을 내고 일본이 허락한 노래를 부를 것인가, 조선 팔도를 떠돌아다니며 조선 사람들을 위해 노래할 것인가. 홍도가 가수가 되어 진정으로 부르고 싶은 노래는 무엇일까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의로운 이들을 기억하며
일제 강점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신분이 높고 낮음을 떠나 나라를 되찾기 위해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조선 독립을 외쳤습니다. 천한 대접을 받는 기생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조선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독립을 외쳤습니다.
《조선의 가수, 홍도가 온다》의 등장인물 이름은 실존했던 기생과 여성 독립운동가의 이름에서 가져왔습니다. 김문주 작가는 “이름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의롭게 살아간 사람들이 밀고 가는” 역사의 한 장면을 포착해 그들의 정신을 작품 속에 녹여 냈습니다.
2023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사업에 선정된 《조선의 가수, 홍도가 온다》는 강영지 작가의 감성적인 일러스트를 통해 암울한 시대 속에서 가수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홍도의 희망차고 밝은 기운을 담았습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옳은 일을 해 온 향화 행수와 그 가르침을 잊지 않고 꿈을 이루는 홍도의 모습에서 의리가 가진 단단한 힘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