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남정간의 심미적 갱생과 신성한 융흥(隆興)
-김태경(문학평론가)
1.
지면에 산줄기를 일으켜 세우는 시인이 있다. 김보한 시인이다. 시인은 시집 「진부령에서 하늘재까지」와 「하늘재에서 천왕봉까지」, 시조집 「백두대간, 길을 묻다」를 발표하면서 “현존하는 거대한 산줄기를 직접 체험하고 느껴” 본 이력이 있다. 이른바 ‘현상의 시’, 즉 산악시와 산악시조를 구현한 것이다. 그는 “다시, 현상의 시학이다. 山몸詩다. 몸무게 58kg 배낭 무게 28kg 남짓으로 갈길 또는 산길을 헤아렸다”라고 자술하였다. 이에 대해, 구모룡 평론가는 “지용과 노산의 산행 시가 없었던 바 아니지만 경로와 행보의 총체에 있어 전무한 문학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일”이라고 평하였다. 김보한 시인이 시도했던 특별한 시적 행보는 이번 신작 시집 「낙남정간을 읽다」에서도 지속된다.
산세의 음극은 양극과 아옹다옹 음양수를 낳았다네 쓰다듬는 안개돌이의 길목에서 물안개드레스를 간간이 덮어 주고 있네, 눈물샘의 눈물은 골짝 숲길을 빠져나가 각별한 영상도 농축된 옛 사연도 견고한 광장 위에서 축음기로 막막 풀리네
날 새노라 앉았노라면 옹달샘 용솟음이 해맑은 옹알이로 조잘대고 지난했던 울림들을 귀살푸시 들을 수 있다오, 삭혀보시게 통한의 쓰라린 애간장도 이젠 도닥도닥 달래지고 있고 숱한 세석산장 돌아든 실존의 개념들도 곰삭아 옛 정취를 하나씩 양각시켜 조명발을 받고 있다오, 쌍쌍이 맺은 백 년 언약 선경의 길도 호롱불 밝혀 주네요
예전 원시림 남부능선의 가시덤불 앞에서 수월하기만을 빌었네 산신의 공덕에 눈살피는 뭇짐승들 눈구멍 건안하기만을 다독였네, 통일신라시대 고승 도선국사와 동행하고서 합장했다네 백골로 묻힌 귀기鬼氣들의 복장 치는 그 눈빛마저 감기데요 - 「음양수에 감기다」 전문
시인은 위 시에서 ‘산세’의 ‘음극’과 ‘양극’이 “아옹다옹 음양수를 낳았다”는 재치 있는 입담으로 ‘음양수’라는 지명을 풀어내고 있다. 곧이어 음양수에 안개 낀 모습을 “쓰다듬는 안개돌이의 길목에서 물안개 드레스를 간간이 덮어 주고 있”다 라고 감각적으로 묘사하여 작품의 품격을 높여준다. “눈물샘의 눈물은 골짝 숲길을 빠져나가”고 ‘각별한 영상’이나 ‘농축된 옛 사연’도 “견고한 광장 위에서 축음기로 막막 풀”린다는 묘사도 이를 뒷받침하는 적절한 표현이라 할 것이다.
시인은 신성하고 웅건한 산세와 산의 정기를 나타냄과 동시에 기행시의 필수 요건인 여정을 조화롭게 녹여내고 있다.
2.
시인의 입담은 「옥녀가」나 「신 진주난봉가」 등의 작품에서 유독 돋보인다. 그는 “마법의 실타래를 풀었다가 감았다가 뒤채는”(「한벗샘」) 듯한 가사체와 판소리 사설 형식의 어조로 작품 감상의 재미와 몰입도를 높여준다. 또한 시집 제목에서도 추론할 수 있듯이 전설이나 민담을 소재로 삼아 마치 이야기 보물 창고 속으로 들어가는 체험을 하게 만든다. 「법우스님과 천왕할미」와 「청학동 삼신봉 1」 두 작품이 대표적인 예시라 할 것이다.
민간신앙을 숭배한 한 시 「법우스님과 천왕할미」에서, 천왕할미는 지리산 산신 혹은 마고 할멈, 지리산 성모 등으로 불리었다. 자비심이 많아서, 사람들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천왕할미에게 빌면 그들이 잘살 수 있도록 불행을 막거나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늘 공경의 대상이었다. 늙은 할머니의 모습이지만 “신통술로 뺨은 복사꽃에 비유되고 칠흑 못지않은 머리카락에 눈썹은 중천에 뜬 마치 반달”과 같은 선녀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청학동 삼신봉 1」에는 법우스님과 천왕할미의 여덟 딸 중 셋째 딸에 대한 전설이 담겨 있다.
하동골 최초의 넝마 무당은 법우와 산신 천왕할미의 기를 받은 셋째 딸 삼신봉이더이다
(중략)
그날로부터 만인으로 하여 신줄기를 내려 점치고 굿하여 두루 돌보게 하였더래요, 아마득한 날부터 누누대로 기가 꿈틀거려 영남의 새끼무당 무녀巫女와 박수를 낳아 무진장 만인의 수를 헤아리기 버겁더래요 - 「청학동 삼신봉 1」 -부분
셋째 딸은 “하동골 최초의 넝마 무당”이다. 2연에는 셋째 딸이 “삼신봉에서 신령을 얻게”된 과정이 드러난다. “꼬박 굶듯이 삼백예순날을 밤낮 호젓한 산허리 길을 내며 삼보일배 해가며 아픈 맘과 몸을 정갈히 닦고 영신봉을 거쳐 남부능선을 통과”하여 얻는 능력이었다. 그 능력으로 “만인으로 하여 신줄기를 내려 점치고 굿하여 두루 돌보게 하였”다. 이것이 시작이 되어 이후 “영남의 새끼무당 무녀와 박수를 낳아” 백여 무당이 탄생하였다고 전해진다.
이에 덧붙여, 시인은“구전의 소문이 자자”한 ‘경계석’(「돌장고개」) 하나에도 관심을 가지고 그것에 얽힌 이야기를 집약하여 풀어낸다.
이외에도 시인은 낙남정간을 답사하면서 그곳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를 수집하여 산문시에 담았다. “신화와 꿈의 의식이 오늘의 바짓가랑이에 배양토로 뒤범벅 시킨 날 산사랑 님들이여 산죽이 그리워지면, 꼭 이곳 와보시라”(「외삼신봉」)는 권유와 함께. 김보한 시인만의 산악 시를 읽는 맛깔스러움이 이에도 담겨 있다 할 것이다.
3.
‘생물 다양성’이 유지될 것으로 보이는 낙남정간이 개간과 대도시의 영향으로 훼손이 이어지는 현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시인의 작품을 통해 살펴보는 바와 같이 낙남정간에는 우리 민족의 혼과 생의 흔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낙남정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자연의 풍만함과 청정은 그 어떤 대체 공간으로도 표현되기 어렵다. 낙남정간의 존재적 가치와 위의(威儀)를 가늠하면서 ‘가화천’으로 이동해보자.
옹골진 장마철이오 진양호 상부가 만삭의 산통 끝에 범람이네, 잠잠하던 내동면 가화천 물줄기는 탱탱하게 부풀어 올라 몸을 풀자 양수를 터트리고 물길을 연다오, 유수교 아래 수문水門에서 가화강으로 남실남실 춤을 추데, 그대 화가 솟구치면 가슴 부풀고 여간 아니라 장관이네
(중략)
가뭄엔 백악기 공용 발자국도 선명하다오, 가화강 상류에는 공룡의 이빨이 선명하다네 경린어류의 비늘 잔재도 널렸다 하네 거북의 배갑背甲도 화석으로 옹기종기 있다오 궁금하네
가화천은 가화강이 되고 늘 무슨 꿍꿍이를 낳네
- 「가화천」 부분
위 인용시에서는, ‘가화천’이 의인화되어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생동감과 생명력을 증진시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진양호 상부가 만삭의 산통 끝에” 낳은 물길이 “유수교 아래 수문에서 가화강”까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자연이 보여 주는 신비를 생명의 탄생으로 비유하여 아름답게 표현함과 동시에, 넉넉해진 ‘가화강’이 주변 사람들의 시름을 덜어주는 부분이 병치되며 그것이 지닌 가치를 드높인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연결된 지점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낙남정간에는 “배경과 평화를 사랑하는 생태둘레공동체가 공존하는 마을”(「배바위 능선에서」)이 터를 잡고 있다. 시인은 인간미가 넘치고 따뜻한 공간을 둘러보면서 낙남정간의 아름다운 산하가 지속ㆍ보존되길 기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희원을 산악 시를 통해서 미학적으로 집성하면서 대상과의 동일성 회복을 도모한다.
4.
시인이 세상에 보여 주는 시적 성취는 자아 탐색과 자연 서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인은 낙남정간을 향한 사색과 산행 체험에서 더 나아가 영원불멸로 숨 쉬는 민족적 기억을 바탕으로 역사적 상상력과 의고적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것은 이 땅의 기억이자, 낙남정간의 은근과 회한의 정기라 하겠다. 또한 준봉마다 어려 있는 시원(始原)에 대한 흔적을 더듬는 시적 행위이다. 거기에는 시간의 폐허를 경험하는 아픔이 담겨 있고, 비극에서 벗어나 밝은 세상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적 언어가 살고 있다.
동학농민운동 당시 양씨와 이씨의 깔깔한 생명들의 피난처 양이터 닿네
혁명의 전장에서 난세에 몸을 던진 허공 속 투혼들을 온유로 담대한 포용으로 그들 누리에 은혜와 자비로서 치유해 주세요, 절절한 고백을 들이대며 황급하게 헐레벌떡 치올라서네 야트막한 갈등의 재 양이터재 머리를 쳐들고 반기네 주변 사물들이 빤한 몰골을 드러내고 웃는다오
연이어 〈방하착放下着〉이라 방하고지에서 속세의 집착을 버리고 해탈을 꿈꾸라 하는가 끝내 잇닿은 곳 돌고 돌아 넘는 재 돌고지재 닿네, 하동 보부상들 큰 마을 거쳐 진주·산청지방으로 돌아가는 단골 그들 연방 새벽녘길 불 밝히고 순박한 사투리에 시끌벅적하다네, 어른어른 옛 고개가 일렁일렁하네요 - 「돌고지재」 전문
위 인용시는 동학농민운동 당시 “혁명의 전장에서 난세에 몸을 던진 허공 속 투혼들을” 호명한다. 그리고 “온유로 담대한 포용으로 그들 누리에 은혜와 자비로서 치유해 주”길 기도한다. 이름도 없이 사라진 영혼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명예를 기리는 시인의 넉넉한 마음이 헤아려지는 지점이라 하겠다. 이러한 시적 실천 행위는 “순박한 사람들 뻘밭 속 향나무가 불과 얼마 안 되어 용한 미륵불이 될 세상 당도하리라”(「선들재길」)는 믿음에 근거할 것이다.
재차 강조하자면, 시인은 “왜적이 눈에 빤해 궁리 끝에 낸 방책”(「석장대」)의 산성산과 망루대, “임진 난리 통에 고종후 장군의 피 터지던 싸움터 있네 이 길 못 넘긴다고 매섭게 가로막고 호통치던 선열들의 전장터”(「발산재」)를 사수하던 역사의 전적지 발산 재, “백의종군한 성웅 이순신의 다리쉼 자리 터만 온후”(「베토재」)한 베토재, “정유재란 때 연합군을 이끈 명군의 제독 마귀가 왜군을 격퇴한”(「마곡고개 끌어안다」) 마곡고개, “임진왜란 때 절멸의 위기에서 오롯이 사랑한 나라를 지키고자 군사를 무리 없이 정병한”(「정병산」) 정병산 등을 거닐면서 역사적 인물과 지나간 시간을 소환하여 명명하고 낙남정간의 가치를 재확인시킨다. 낙남정간의 여정지를 주요 대상으로 삼으면서 그곳에 얽힌 자연 풍광과 역사적 기억을 접목하여 김보한 시인만의 서정적이고 서사적인 이야기를 담대하게 풀어내는 것이다.
요컨대, 시인의 필치로 인해, 낙남정간은 “사위를 껴안은 채 역사의 모티브로 길 주위 옹골찬 자연추억기록물 숲”이 된다. “기억과 현실의 존재가치가 아름을 사랑으로 다독여져 치유된 상처를 생각”(「사립재」)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로써 낙남정간은 저마다의 공간들에 내재한 돌올한 산정(山頂)과 더불어 민족이 공유하는 상처와 회복의 시간을 모두 품어 안게 된다. 그 가운데 시인의 땀 내음과 발자취가 스며 있다.
5.
시인은 2003년 10월 진부령에서부터 백두대간 남진 구간 단독 종주를 시작하고 2013년 10월에 마무리하기까지, 10년이라는 기나길고 험한 여정을 마무리했다. 곧이어 2018년 4월 1일 ‘낙남정간 종주’를 마침으로써 명실공히 산악인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3권의 시집과 1권의 시조집을 통해 산악 시와 산악 시조를 구현하기 위해서 긴 시간 매진했다. 그렇기에 이번에 펴내는 시집 『낙남정간을 읽다』는 또 다른 유의미한 가치를 부여한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낙남정간에 대한 이번 시집은 현재까지 시의 생산적인 측면에 있어서,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초유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또 낙남정간을 시로 풀어내어 이미 있는 존재를 다시금 아름다운 언어로 갱생更生하고 낙남정간의 존재적 가치를 부각하는 점 이외에도, 산에서 겸손함과 정겨움, 푸름을 배우는 인간의 덕목 또한 엿볼 수 있었다.
“길의 끝이 인생길의 끝인지 궁금하오 꼬불꼬불 내리뻗은 저 길이 인생의 끝인지 궁금하오, 저 길이 확실히 어딘가 그립다오, 길이여 안녕, 운명길이 더 힘차게 뻗길 합장한다오, 뒤범벅 갈림길도 오늘따라 궁금해진다”(「오곡재」)는 그의 고백처럼, 김보한 시인의 고귀하고 특별한 시적 행보로 생성된 시편들이 세상에 차츰 드러나 독자와 공유하는 계기를 마련하길 기원한다. 그리고 시인은 이번 시집의 눈에 띄는 성과를 자양분 삼아, 앞으로도 또 다른 여정이 더욱 눈부시게 빛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리되기를 심연에서부터 소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