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은 시인은 지금, 고요의 안거(安居)에 들고 있다. 비우고 비워 조용히 들어선 그곳은 그리움의 밑자리를 향기로운 자리로 바꾸는 ‘적요’의 자리에서 ‘나’로 되돌아가는 ‘삶’을 응시한다. ‘나로 되돌아가는 삶’이라니!(「시인의 말」 참조) 시로 온전히 살아온 시인의 삶은 ‘꽃 진 자리’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어서, 세상 모든 ‘꽃 핌’의 다정함과 애틋함 외에도, ‘꽃이 진’ 그 이후의 시간마저 품어 몹시 쓸쓸하고도 고요하다.
꽃잎의 이정표엔
견딤과 기다림의 원산지 표기가 있고
빗살무늬 햇살과 바람과
비의 칼로리가 명시되어 있어요
신선도 유지를 위한 아침이슬의 드레싱까지,
그늘지고 서늘한 곳에 보관하라는
향기로운 안내도 넘겨받습니다
아름다운 마침을 위해
딱 한 주먹만 들어내면 안 될까요
가벼워지면 좋겠죠
이렇게 말하는
한 잎 한 잎 적요로운 그녀,
꽃
-「꽃, 그 이후3」 전문
꽃이 핀 오늘, 혹은 어제의 일이 ‘꽃 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다는 점이 위 시에서 상기된다. ‘끝’은 ‘다른 시작’이라는 아포리아가 새삼 되새겨진다. 그러나 신병은 시에는 이를 해명하는 “꽃잎의 이정표엔/견딤과 기다림의 원산지 표기가 있”어서 “햇살과 바람과 비의 칼로리”가 적합하게 필요하다. “햇살”을 기다리고 “바람”과 “비”를 마주하며, “한 잎 한 잎” “아름다운 마침”을 위해 “적요”를 담담히 포옹하는 “적요로운 그녀”인 꽃이여…. 마침내 “꽃, 그 후”의 일이 ‘적요’의 자리로 스며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