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무엇인지 알고 쓰는 작가는 인생을 보는 통찰력이 깊다. 김만성이 그렇다. 더욱이 그는 오랜 기간 끝내 좌절하지 않고 피나는 노력으로 작가수업을 해왔기 때문에, 그만큼 작가로서 내공이 깊다. 우선 그의 소설은 문장이 밀도가 높고 서사가 풍부한 것에 비해 주제도 뚜렷하다. 기실 서사가 다양하고 풍부한 작품에서 주제를 비중 있게 드러내기란 쉽지가 않다. 이야기에 비중을 두다 보면 주제에 소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김만성의 소설은 이야기가 풍부하면서도 결코 주제를 섣불리 다루지 않는 강점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철저한 이야기 중심의 리얼리스트이면서 주제 중심의 관념적인 작가이기도 하다.
이제 김만성은 첫 창작집을 통해 빛나는 작가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진정한 시작은 이제부터다. 시작이 늦은 만큼 앞으로 그의 작가정신은 중단 없이 치열하게 불타오를 것이라고 믿는다. 무엇보다 김만성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근면성실한 직장인이고 가장이며 소설 쓰는 자세 또한 매우 성실하고 투철하다. 소설을 대하는 태도가 엄숙하고 경건하며 삶의 문법이나 행동이 분명한 작가인 것이다. 좌절할 줄 모를 만큼 견고하게 다져진 뚝심의 작가이기에,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 소설가 문순태
김만성은 소설을 통해 인간의 물질성을 말한다. 자본주의 시대 물질을 좇는 인간은 여지없이 추락한다는 ‘추락 서사’인데 이들은 하나같이 가족이나 타인을 위한 삶을 살지 않는다. 단지 자신만을 위한 욕망을 채우다가 추락한다. 인간 본성을 민낯 그대로 보여주는 작가의 의식이 존경스럽다. 이는 묘한 이끌림으로 작용한다. 우리 안의 선한 천사를 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주인공이 추락 후에야 자신의 욕망을 후회하듯 독자도 그의 추락 서사를 따라가다가 마지막에 책장을 덮으면서 후회할 것이다. 여지껏 김만성이라는 소설가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음으로. 인간이 위대한 것은 성찰이므로 이제 그의 이름을 기억하기로 한다. 작가에게 문운이 함께 하기를 나 또한 기원한다.
- 소설가 장마리
새로운 소설가의 탄생을 두고 까마득한 밤하늘에 새로운 별 하나가 반짝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면 과장일까? 게오르크 루카치의 통찰을 믿는다면, 밤하늘의 별과 소설가를 하나로 바라보는 일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 속에서 인간의 삶이 풍요로웠던 시절, 우리는 얼마나 자주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았던가! 게다가 그 별을 헤아려 삶의 지표로 삼고, 그 별의 이야기를 상상해보던 우리의 가슴은 얼마나 서늘했던가! 그 별빛 아래 밤새워 소설을 읽던 날들이 까마득하게 여겨지는 지금, 새로운 소설가의 소설을 읽는다.
김만성의 소설에 등장하는 문제적 개인은 대체로 남자다. 이 경우 남자는 생물학적 존재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부유하는 욕망의 기호에 가깝다. 그런 까닭에 소설에서 남자들은 한순간 뜨거운 심장처럼 자기 삶을 분출해낸다. 이렇게 말하면 김만성의 소설이 남자들‘의’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직하게 말하자면 김만성의 소설은 남자들‘에 관한’ 이야기로 읽힌다. 자본주의적 욕망으로 충만해 있는 남자들 이야기 말이다. 그러나 김만성의 소설은 여기에 한 겹의 서사를 덧붙여 놓고 있다. 그건 남자를 넘어서고 초과하고 초월한 세계, 다시 말해 남자의 욕망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자본주의적 세계에 관한 작가 개인의 경험적 통찰이다. 그 통찰은 ‘남자에 관한’에서 ‘남자’를 괄호 안에 은폐해버리고 남은 세계이다. 그럴 때 ‘~에 관한’이 지시하는 세계는 남자가 소거된 공백의 세계다. 그러니까 김만성의 소설은 두 겹으로 읽어야 한다. 하나는 남자의 이야기로, 다른 하나는 남자가 빠진 이야기로. 이렇게 김만성의 소설을 읽는 이유는 그의 소설이 남자를 다루면서도 남자를 제외한 자본주의적 세계에 대해 들려주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세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이자 소설이 다루고 있는 세계 말이다. 별이 반짝이려면 캄캄한 어둠의 세계가 필요하듯, 김만성의 소설에서도 남자를 존재하게 하는 자본주의라는 세계가 있다. 그의 소설에서 자본주의는 욕망을 충동질하는 심장 박동처럼 생생하게 살아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자본주의의 심장에서 수혈한 피로 뜨거운 숨을 내쉰다. 김만성의 소설은 그러한 자본주의의 탐욕과 공포를 우리 시대의 욕망으로 표출해낸다. 그리하여 그의 소설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의 욕망이 어떻게 이 세계에 탐욕과 욕망이라는 자기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지 확인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