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그저 음악일 뿐일까?
-음악의 자율성, 순수성은 가능한가
이 책은 “‘음악은 음악이다’라는 너무나도 단순명료한 명제가 실제로는 지배 권력의 의도를, 또 사회 구조와 연결된 끈들을 잘 숨겨주는 푸근한 은신처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나치 치하 독일에서 음악가들이 처했던 환경과, 그들이 강요받은 혹은 앞장섰던 정치적 선택과 그들의 음악 행위와의 관련성을 되짚어보며 ‘만인은 형제’라고 선포하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의 합창 〈환희의 송가〉는 히틀러와 나치당의 침략전쟁과 팽창정책을 은폐하는 구실을 하였으며, 정치와는 무관하게 최고의 음악을 들려주려 했던 푸르트뱅글러는 비록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다고 할지라도 나치 독일의 외교관 역할을 수행했고, 카라얀은 나치당에 입당하여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나치 하에서 음악이 수행했던 기능과 그 효과는 음악의 향유와 음악 행위가 개인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지배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치 치하 독일에서처럼 일제 치하에서도 우리 음악의 자율성은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음악의 진정한 자율성은 사회의 역사적· 정치적 현실과 관련이 있으며, 낯선 시각과 비판의 칼날을 통해 사회와 역사에 책임 있는 의식을 가질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임을 이 책은 일깨우고 있다.
잘못된 세상에는 올바른 삶이 없다!
-독일에서 부쳐온 과거사 청산 문제
서구의 음악사 기술은 일반적으로 음악 양식이나 장르 혹은 개별 음악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렇게 기술된 음악사는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 음악사라기보다 음악만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기록에 가까웠다. 망명 음악, 집단수용소의 음악, 나치 치하의 음악이라는 세 개의 퍼즐은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서양 음악 문화의 그림을 맞추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망명 음악, 나치 음악》은 나치즘이라는 광기와 야만에 강제된 어두운 역사의 단면을 비춰낸다.
제1장에서는 망명한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단순히 누가, 언제, 어디로 왜 떠났는지 뿐만 아니라 망명지에서의 삶과 망명 생활이 그들의 작품 세계에 미친 영향을 설명한다. 제2장에서는 집단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음악가들과 희생된 음악가들을 조명한다. 망명하지 않고 독일에 남은 음악가들 가운데 나치에 협력한 자들과 침묵한 자들을 구분해 설명하고 나치가 음악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함께 제시한다. 제4장에서는 앞의 내용을 갈무리하여 전후 독일 음악 문화를 설명한다. 당시 독일에서 희생된 자들과 떠난 자들이 어떤 대접을 받았으며, 살아남은 자들의 ‘과거 청산’은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본다. 맺는 말에서는 독일의 사례에 빗대어 우리 음악 문화의 ‘과거 청산’ 문제를 다룬다. 이와 같은 비판적으로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