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매혹적이고, 목적지를 모르고, 흘러가는
이어진 시인의 이번 시집에 실린 시편들은, ‘자유분방’한 상상력의 유희를, 언어의 유연하고 활달한 사용을 통해 ‘섬세한 미학’으로 완성시키는 성취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완성도가 상당한 뛰어난 우수한 작품들이다. 또한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은 어떤 형식적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수사와 언어적 유희로 스스로의 길을 열어 가는 작품들이어서 그 새로운 언어 감각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어진 시인의 작품이 어딘가 ‘처연한 아름다움’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거나 ‘언어의 연속이 현란하기보다는 미적’ 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아마도 ‘매혹’에 대한 시인의 생각 때문일 것이다. ‘사물’에서 사물의 배후를, 그리고 잔상 속에서 사물의 본질을 역으로 보려는 과정은 ‘순간에서 전인생(全人生)’을 읽어 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즉, 이런 시는 대부분 ‘순간성’에서 ‘영원’을 현현하려는 의지를 보이는데, 이런 의지는 ‘종종’ ‘순간’과 ‘찰나’에 대한 매혹과 ‘비의(秘意)’에 대한 경도로 나타난다. 이어진 시인의 시에도 이런 점이 잘 나타나는데, 그의 시에서 매혹은 곧 ‘사물’의 ‘비의(秘意)’, 즉 이면에 대한 ‘집착’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어진 시인의 시는 단순한 언어유희가 아니라 언어의 착란을 실제의 감각으로 환원시키는 ‘상상력의 감각적 동원’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에 감각을 부여하고 동시에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추상적 이미지에 구체적 감각의 형상을 접합해서 의미의 형성이 가능해지게끔 하는 그런 시적 전략인 셈이다.
사물과 사물의 얇은 틈에 실타래를 끼워 넣고
나를 공기의 음악으로 채워 넣고
이 긴 말들의 놀이로 한 뼘 한 뼘 줄넘기를 할 수 있다면
빌딩과 빌딩의 간절한 간격 사이에 한밤중의 비틀어진 감정을 데려와 내 그림자와 오래 흘러갈 수 있다면
당신과 나의 말들이 머리와 얼굴을 바꾸며 산과 들을 달리는 한 마리 싱싱한 바람이 될 수 있다면
가령 그것은 목을 길게 빼고 하늘에 가볍게 젖어드는 일
두둥실 누워서 바람으로 떠오르는 일
싱그럽게 공기처럼 흩어지는 일
눈을 감고 당신의 입 속으로 스며드는 일
나의 눈동자를 고요한 사물에게 박아주는 일
그리하여 텅 빈 몸으로 사물의 중심을 가볍게 통과하는 일
미치도록 죽고 싶어 다시 돌아오는 봄의 환희
거리에 나서면 그렇게 빼낸 나와 당신의 눈동자들이 겨울의 무거운 옷을 벗고 무수한 꽃을 바람처럼 통과하는 중
(「투명인간으로 사물 통과하기」 전문)
인용한 작품은 앞에서 말한 사물과 하나 되기, 그리고 모든 시간의 동시성을 하나의 장면으로 포착하는 일, 사물과 사물을 연결하고 그 배후를 읽는 일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시다. 이어진 시인의 시가 단순한 언어유희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은 그의 시가 무의미나 의미의 착란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차원의 ‘시적 의미’를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명인간으로 사물 통과하기」는 이 점에서 시인의 시 쓰기에 대한 ‘자의식’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작품으로 읽힌다.
내 눈동자를 빼내어 지폐의 주머니에 넣고
흔들흔들 시장 안을 걸어봤으면
구름의 눈 속에 내 집요한 문자를 한 획씩
집어넣을 수 있다면
이빨들을 빼내어 장미의 주머니에 넣고
산들산들 공원 안을 산책하고 싶어
장미가 얹힌 붉은 담벼락 봄의 말없는 입처럼 고요하지만
시간은 고개 숙인 태양으로 벽돌의 어깨만 흘리고
나는 봄의 머리를 얼굴에 달고
책의 문장 안에 스며들고 싶어
(「봄의 무희」 부분)
이 시는 유머러스하면서도 경쾌한 언어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모든 사물의 ‘혼종 상태’를 언어의 ‘착란 혹은 착종’으로 교차하고 병렬시켜 보여주는 것이 시인의 창작 방법이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이 시는 이런 스타일의 한 표준으로 읽힌다. 내 눈동자, 이빨은 지폐와 장미의 주머니에 넣고, 내 머리에는 몸의 머리를 달고, 구름의 눈 속에 나의 문자를 집어넣는다. 그리고 책의 문장 안에 나의 이런 산책을 스며들게 하는 것. 이런 경쾌한 산책은 아마 온 우주의 사물과 내가 하나로 만나는 시간에 대한 감각화 과정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어진 시인의 시는 단순한 언어유희가 아니라 언어의 착란을 실제의 감각으로 환원시키는 ‘상상력의 감각적 동원’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에 감각을 부여하고 동시에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추상적 이미지에 구체적 감각의 형상을 접합해서 의미의 형성이 가능해지게끔 하는 그런 시적 전략인 셈이다. 이런 시인의 방법론은 모호하지 않고 이미 상당한 구체성을 지닌 시적 자의식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될 만하다. “책의 문장 안에 스며들고 싶”다는 직접적인 발화는 상상력으로 빚은 이미지가 구체적인 의미로 ‘현현’하는 과정을 암시하는 알레고리적인 표현으로 읽힌다. 말이 ‘힘’을 지니 고 있기에, 말로 하는 ‘상상’은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실제적인 ‘감각’을 만들고 현실의 ‘체험’만큼 실감이 가능하다. 책의 문장 안에 ‘봄의 머리’, 즉 ‘봄의 감각’을 스미게 하거나 구름의 눈 속에 ‘문자’를 새겨 넣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말’이 구체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는 상상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다.
ㅡ김춘식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