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내 맘에 앉은 건
어느 뜻밖의 순간.
몸을 낮추고 눈을 맞추던
시작의 순간.
이승환 님의 ‘그 한 사람’이라는 노래의 노랫말입니다.
살다 보면 이렇게 어떤 사람으로 인해 삶이 바뀌는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올해가 그랬습니다.
그 어느 봄날 교사 연구년 공동연구를 위해 처음 만난 일곱 명의 우리가 어색한 표정으로 책상만 내려다보고 있던 처음 순간이 떠올라 살짝 웃음이 납니다. 아직은 품은 속내와 내공을 드러내지 않은 탓에 무려 제비뽑기로 리더를 뽑고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그저 소개만 했을 뿐인데, 20여 년을 교사로 산 치열했던 시간의 고단함과 쉼의 간절함, 교육에 대한 애증이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서로 다른 연구 주제와 관심을 가졌으나 우리는 모두 비슷한 교사로서의 삶과 여러 모양의 글쓰기를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이야기는 ‘교사의 글쓰기’로 모였고, 글쓰기가 주는 두려움과 설렘 그 어디를 서성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연구년을 빌려 교사로 살아온 이야기를 써 보기로 하였습니다.
사실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하는 교사들이지만 어찌 보면 글쓰기는 몇몇 교사들의 전유물일지 모릅니다. 그만큼 이렇게 작정하고 교사로서의 삶을 들여다보는 글을 써 본 적이 없고, 그것을 공유한 적은 더욱 없던 터라 이런 작업이 우리에게 신선하긴 했지만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는 글쓰기가 성장과 치유를 주는 고도의 작업이라고 하는데 정말 우리에게 그런 것을 줄 수 있을지, 글을 쓰고 공유하는 것이 상처 입은 학교 공동체를 세우는 지주대가 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글쓰기가 어떤 특별한 힘이 있어 오랫동안 교사로 산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 수 있기를 막연히 바라기도 했습니다.
‘글’과 ‘교사 삶’를 주제로 총 35편의 이야기를 함께 쓰고, 서로의 글을 본 소감을 공유했습니다. 말이 아닌‘글’로 서로를 알아가는 경험은 또 특별해서 깊은 유대감과 친밀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서로 다른 일곱 개 빛깔의 삶에 공감과 공명을 주고 살아온 삶에 위로와 살아갈 삶에 크고 작은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모아 책으로 엮는 놀라움에 이르렀습니다.
책을 만들게 된 건 우리의 글쓰기 실력이나 학교에서 쌓은 알량한 치적들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열심을 내어 교사로 살면서 가슴에 삭이고 목젖으로 눌러 앉힌 수많은 학교의 순간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 선택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지금 우리가 보낸 시간 속을 걷고 있다면, 그래서 힘들고 지쳐 있다면 위로와 응원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부끄럽고 많이 부족하지만 먼저 걸어간 우리가 있고 당신의 편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책 쓰기를 시작하며 주저했을 때 우리를 북돋아 주고 이끌어 준 막내 밀알샘이 하던 말이 있습니다.
“괜찮아요. 우리의 삶은 다 의미가 있잖아요. 그걸 글로 쓰면 됩니다. 누군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이 말을 들은 우리는 “정말 그럴까? 아닐 껄? 아닐 수도 있어. 그냥 말로 해도 되잖아.”라며 출간에 대한 소심함을 농담으로 주고받았습니다. 그런데 결국 우리의 글은 서로에게 의미와 위로가 되고 고마움과 기다림이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마침내 그 한 사람이 되어 각자의 마음에 살포시 들어와 앉았습니다.
삶에 중요한 것들을 만드는 말로 ‘짓다’가 있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우리를 만들어 준, 함께 지은 수줍은 글들을 엮어 냅니다. 이 책을 읽게 된 뜻밖의 순간 당신이 미소 지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그 한 사람’이면 정말 기쁘겠습니다.
2023년 가을. 진심을 담아.
교사 이선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