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사회가 불러온 초현실주의
1990년대 말 『풀밭 위의 식사』라는 다소 충격적이고, 컬트적이고, 포스트 모던한 소설을 발표했던 채희철 작가의 새로운 소설들. 그간 철학 에세이만 펴냈던 작가가 오랜만에 다시 소설집을 냈다.
이 소설집의 분위기는 일상의 초현실적 단면을 보여주는 느낌이다. 여기서 초현실은 현실의 너머나 몽상, 꿈 같은 비현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우리가 익히 아는 익숙한 현실의 문법대로 사람과 사물들이 반응하지 않는, 현실의 원리나 법칙이 깨지는 순간을 의미한다. 이 소설집에 실린 모든 소설에서 작가는 충동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그렇기에 초현실적 분위기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억누르고 있는 충동들은 모두 우연한 계기로 스멀스멀 새어 나오고, 불안은 증폭되며 삶은 그 자체가 스릴과 서스펜스가 된다. 작가는 독자가 끝내 숨기고 싶거나 혹은 반대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해서 그만 누군가에게만큼은 들키고 싶은 자신의 충동들을 만나게 하려고 치밀하게 의도한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사물이 일정한 법칙을 갖고 있다고, 그 사물을 그 답게 만드는 원리, 원인, 인과적 질서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사물의 피드백을 경험하며 피드백을 예측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도 한다. 현실 또한 사물과 마찬가지다. 사물의 내재적 법칙이 있듯이 현실도 내재적 법칙을 갖는다. 우리는 현실을 분석할 수 있으며, 예측할 수 있다. 현실은 사물의 연장이며 미래에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피드백을 기대한다. 그러나 충동은 사물의 미래, 현실의 미래를 결코 안정화시키지 못하게 한다. 모든 피드백은 기대에 어긋나며 예측은 빗나간다. 초현실은 충동이 불러온 바로 이런 예외적 현실, 관성에 저항하는 현실이다.
『어반 왈츠』 속 소설들에서 충동의 결과는 현실의 파국이다. 그럼에도 주인공들은 파국 앞에서 담담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주인공들은 갈등의 조정을 포기하고 담담하게 파국을 향해 나아간다. 『어반 왈츠』는 우리가 점점 더 법칙과 질서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이미 불가역적으로 궤도에서 이탈한 시간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어반 왈츠』가 그리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충동사회’다.
이 소설집에 함께 실린 중편 『달나라 장난』은 철학적 테마를 미스터리 누아르 장르에 버무려낸 긴장감 넘치는 소설이다. 헤르만 블로흐, 밀란 쿤데라 등 사변 소설적 계보를 잇고 있지만 그들과 확연히 다른 점은 이 소설이 장르 소설을 읽는 쾌감을 넘나들게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