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을 만나는 새로운 루트
존경의 무게를 객관적으로 증명하다
이순신 장군은 이미 소설이나 TV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접해온 익숙한 위인이지만, 이 책에서는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방식의 만남을 제안한다. 황윤 저자의 시도는 꾸미려 하지 않기에 더욱 극적으로 다가오는데, 단지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서 머물렀던 한산도에 직접 찾아가는 체험과 함께 기록으로 남은 흔적을 꼼꼼히 살필 뿐이라 신선함을 더한다.
문헌에 기반하여 서술된, 있는 그대로의 임진왜란을 고증하고 싶었던 황윤 저자는 한산도 앞바다를 이순신 장군과 같은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한산도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스탠포드호텔에 머물며 임진왜란 당시의 바다를 찬찬히 확인하고, 당시 판옥선과 같은 속도로 바다를 경험하고 싶어 일부러 요트를 빌려 꼼꼼한 설명을 들으며 한산도 앞바다 구석구석을 다녀본다. 평소 매우 검소한 역사 여행을 즐기던 황윤 작가로서는 큰맘 먹고 시도한 새로운 경험이었으나, 독자에게는 마치 조선 수군의 일원이 되어 참전한 듯한 생생함을 전하기에 충분하다.
이순신 장군은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 중 한 명으로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로 유명한 명량해전에서는 133척의 일본 수군에 맞서 통쾌한 승리를 가져온 절대적인 리더십을 보여주어 임진왜란 당시에도 전국민적인 지지의 대상이었다. 일본의 소설 《회본태합기》에 의하면 심지어 적지인 일본에서조차 우상화하는 분위기로 이어질 정도였다. 이 책에서는 이렇듯 호불호 없이 칭송받는 존재인 이순신 장군을 담백하게 조명함으로써 그 존경의 무게를 객관적으로 증명한다.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 녹아있는 임진왜란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과 왕을 비롯한 여러 인물에 대한 기록을 통해 이순신 장군의 존재감을 역설한다.
통영 진주로 떠나게 만든 단 하나의 질문
이순신 장군은 어떻게 생겼을까?
저자 황윤은 ‘일상이 고고학’이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역사적인 인물, 장소, 유물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하면 늘 자발적으로 찾아가 보고 스스로 다양한 자료를 통해 공부하는 작가다. 지방에 갈 때면 반드시 그 도시의 박물관을 찾곤 하는데, 통영시립박물관 2층에 전시되고 있는 두 점의 초상화를 보고 한 가지 의문을 품는다. ‘이순신 장군은 어떻게 생겼을까?’
《일상이 고고학 : 나 혼자 통영 진주 여행》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하여 집필된 책으로, 생전에 공식적으로 남긴 초상화가 없는 이순신 장군의 얼굴을 찾아가는 과정은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어떤 자격이 있어야 초상화를 남길 수 있었는지, 시기별 초상화 기법이나 유행 스타일, 문무관 복장의 특징은 무엇인지 등을 통해 이순신 장군의 진짜 모습을 고증해나간다.
통영시립박물관 2층에 전시되어 있는 이순신 초상화 중 한 점은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1956)라는 영국인 화가가 수채화 기법으로 그린 초상화로, 제목은 ‘청포를 입은 무관’이다. 이순신이라는 직접적인 표기는 없으나 뒷배경인 병풍에 거북선이 그려져 있다.
다른 한 점은 성재휴(成在烋, 1915~1996)에 의해 전통 채색화로 그려진 초상화로, 이 작품은 선배 작가인 이상범(李象範, 1897~1972)의 이순신 초상화를 모델로 1938년에 그린 작품이다.
이 두 점의 초상화는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린 사람이 다르고, 표현 기법이 다른 것도 비교 포인트가 될 수 있지만, 결정적으로 얼굴의 느낌이 매우 다르다.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얼굴은 성재휴 그림 속 얼굴이지만 성재휴 그림이 모델로 삼았던 이상범의 기록이 의문을 더한다. 이상범은 이순신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통영, 여수, 아산 등을 돌며 나름 탄탄한 조사를 하였는데, 이때 일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던 것이다.
선영의 땅인 아산 배아미골(백암리)에 이르러 붓으로 그려진 수백 년 전해 내려온 초상화를 보고 다소 참고하였지만, 요컨대 이순신은 순전히 내 머릿속에서 빚어낸 얼굴이었다. 〈삼천리〉 이상범 1934년 8월호, 163쪽
이순신은 초상을 보았는데, 일반 현대인이 생각하는 명장의 타입을 가진 장군의 얼굴로 보이지 않더군요. 만일 그 초상대로만 그린다면 지금 사람의 눈에야 이름난 장군으로 보이겠어요? 그래서 얼굴에다 살도 붙이고 수염도 힘있게 붙여놓고 여러가지로 만들어놓았지요. 〈삼천리〉 이상범 1936년 8월호, 123쪽
과연, 이순신 장군의 진짜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옛 문헌을 접하며 상상되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고고학적으로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