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라주모프는 부모도 일가친척도 없는 고아다. 그에게 자신의 결핍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출세뿐이다. 그러나 그의 개인적인 욕망은 라주모프의 동료 학생 할딘이 국무위원 P 씨를 암살하고서 라주모프의 하숙방으로 피신해 오며 위기를 맞는다. 사회적 명분에 개인의 이익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라주모프는 비극적 결정을 내리기에 이른다.
《서구인의 눈으로》는 제정 말기 러시아 사회를 배경으로 한 조지프 콘래드의 마지막 걸작이다. 작가의 전성기에 쓰인 이 소설은 독재정치와 혁명에 대한 작가의 정치적 견해나 사상이 잘 드러나 있는 정치소설인 동시에, 대학생 라주모프가 경험하는 이념적 갈등과 욕망의 좌절, 배신과 죄의식, 고백 및 구원을 보여 주는 심리소설이다. 이 소설은 또한,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들과 어스킨 칠더스의 《사막의 수수께끼》 그리고 작가 자신의 이전 작품인 《비밀 요원》과 더불어 스파이 소설이라는 장르의 토대를 만드는 데 이바지한 작품으로 평가되며, 제임스 조이스나 버지니아 울프 같은 모더니즘 작가들의 작품에 길을 닦아 주어 초창기 모더니즘 소설의 발전에 기여한 작품으로도 평가된다.
제목 “서구인의 눈으로”는 이 소설의 토대가 된 단편소설 〈라주모프〉를 장편으로 개작하면서 붙은 것이다. ‘서구인’의 눈은 다름 아닌 이 소설의 화자인 ‘언어 교사’의 눈을 의미한다. 화자는 러시아의 정치 상황과 아무 관련이 없는 제3자로서, 객관적인 태도로 전제정치와 혁명주의자들에 대해 서술한다. 언어 교사의 이런 중립적인 서술 방식은 주제의 극적인 효과를 강조하는 데, 즉 전제정치와 혁명의 폭력성을 강조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또 콘래드는 작중 화자에게 여러 역할을 맡게 함으로써 소설에 특이점을 부여한다. 즉, 작중 화자인 언어 교사는 라주모프의 전기 작가인 동시에 라주모프의 수기의 편집자 겸 번역자로서 언어와 문화, 동유럽과 서유럽, 사실과 허구의 영역들을 가로지르는데, 이로써 콘래드는 작가로서의 창작 본능이나 창작 유희 또는 작가 자신의 억압된 무의식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