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관통해 온 고정된 이미지 허물기
세대와 성별이 달라도 아프리카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다들 고만고만할 것이다.
〈동물의 왕국〉, 〈블러드 다이아몬드〉, 〈부시맨〉, 〈뿌리〉의 쿤타 킨테 등등.
54개 국가가 그저 아프리카로 뭉뚱그려지고, 그 다양한 인종이 아프리카인으로 하나 되는 마법의 회로가 누구에게나 작동하는 듯하다. 사실 ‘아프리카 국가를 말해봐’라는 질문에 열 손가락 다 채우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야생동물과 부시맨, 쿤타 킨테 등과 같은 이미지는 또렷하지만, 과연 그것이 실제 모습일까 궁금해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문화연구자이자 언론학자인 저자는 영상이 정형화해 온 아프리카의 과거와 현재를, 스크린 뒤에 감춰진 영화가 말하지 않는 사실들과 대비하며 흥미롭게 풀어놓는다.
아프리카인〓원시인〓착한 야만인
3부 1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아프리카’ 하면 으레 떠오르는 코카콜라 병을 든 부시맨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부시맨〉은 원주민을 가볍게 연출하여 사람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지금까지 공식처럼 자리한 ‘아프리카인〓원시인〓착한 야만인’이라는 등식을 완성해 여러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이를 거듭 재생산하는 데 일조했다. 〈뿌리〉의 쿤타 킨테도 마찬가지다. 원작이 말하고자 했던 미국 내 아프리카 노예의 비참한 삶과 짓밟힌 뿌리에 대한 애환은 사라지고 영화 속 이미지가 흑인의 전형이 되어 우리의 인식 속에 뿌리내렸다. 2021년에 개봉된 〈구혼 작전 2〉에도 이런 이미지가 변함없이 재현된 것이다.
이제, ‘만들어진 아프리카, 박제된 아프리카’에서 벗어나 각기 다른 54개국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차례다.
피해자 탓하기의 체념을 넘어
‘여기가 아프리카다’로
“이 상은 전 세계에 있는 우리 세대의 아프리카인들을 위한 큰 승리입니다. 이는 모든 아프리카인들에게 교훈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무엇을 계획하든, 당신은 이뤄낼 것입니다.”
나이지리아 출신 버나보이는 2020년 그래미상을 수상하며 인상적인 말을 전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아프리카의 한 음악인은 그래미상 수상자가 되었고, 삶을 영화로 담아내는 나이지리아의 영화 산업은 연 2500여 편의 영화를 만드는 ‘놀리우드’로 성장했다. 물론 수단의 해적이나 수많은 내전과 분쟁, 마약 거래, 상아 없이 태어나는 코끼리 등 뉴스를 채우는 아프리카 관련 내용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좁디좁은 물길로만 흘러가는 아프리카를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아프리카라는 미지의 공간은 미디어가 재현하는 시선에 따라 상상된 것이다. ‘아프리카’로 단순화된 집단의 정체성이 아프리카 대륙의 다양한 국가나 구성원 개개인의 특수성을 묵살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고 지적한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아프리카의 속담처럼 더디지만 자신만의 속도로 하나씩 이루어가는 아프리카 대륙의 모습을 응원하며, 저자는 4D(Death, Disease, Disaster, Despair)를 넘어 4H(History, Healing, Health, Hope)를 담고 있는 영화를 제시한다.
영화 속 4H 찾기
〈부시맨〉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이 책은 정형화된 이미지를 담은 영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저자는 비교적 대중에게 잘 알려진 세대를 아우르는 영화를 비롯해 OTT 서비스나 유튜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를 선정해, 그동안 아프리카를 정의해 온 4D를 넘어 미래를 만들어나갈 아프리카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서구의 렌즈에 가려져 잃어버린 아프리카의 역사History를 되찾고, 뼈아픈 과거사로 인한 아픔을 치유Healing하는 동시에 건강한 신체와 마음Health을 회복하여 아프리카 스스로 희망적인 내일Hope을 꾸려갈 때다. 에필로그:안녕? 안녕, 아프리카,318~319쪽
책 끝머리에 남긴 저자의 말은 긴 여운을 남긴다.
“우리가 생각해 온 ‘그’ 아프리카는 생각보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