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첫 시집을 내는 양시연의 시는 이러한 손말의 양상을 다양하게 보여준다는 점에 특정 지을 수 있다. 시의 언어는 필연적인 것같이 보이는 것이어야 한다”는 ‘W.B.예이츠’의 말처럼 양시연의 언어는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상황을 되 비추거나 토설함으로써, 심리적으로 무관한 대상이 아니라 자기의 삶에 의미를 던지는 실존적 상황을 그려낸다. 손말을 통해 사 고와 존재를 통합하려는 시인의 언어는 또 다른 소재인 일상 (제주의 자연과 풍물, 종교와 가족)에 대한 시편에서도 동일한 양상을 보인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말씀(언어)은 신의 존재를 표명하는 기호이지 인간을 향한 계시로, 땅 위에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의 언어로 임재한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시는 항상 그 자체 속에 이상을 좇는 신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 고 말한, ‘C.P. 보들레르’의 말처럼 이러한 신성성은 문학에 있어서 구원성을 지닌다.
그녀가 다녀간 날은 어김없이 비가 왔다
여태껏 한마디 말도 세상에 못 내뱉어본
그랬다 농아였다. 선천성 농아였다.
여성 상담하는 내게 무얼 자꾸 말하려는데
도저히 그 말 그 몸짓 알아듣질 못했다
나는 그날부터 수어(手語)공부 다녔다
기어코 그녀의 말, 그 손말을 알아냈다
그렇게 하늘의 언어 아름답게 말하다니!
- 「손말」 전문
시인은 공직자로 근무할 당시, 여성 업무를 담당하다가 청각장애인을 만나게 되었고 수어 통역사 자격증을 획득하여, 필요할 때마다 통역 자원봉사를 했다고 한다.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손말을 갈고 닦은 시인이 마침내 시인의 길에 들어선 것은 하늘이 내려준 숙명이 아닐 수 없다. 해결되지 못한 상처를 꺼내 치유로 승화시키는 손말은 시인에 의해 “하늘의 언어”로 규명된다. 손말이 태동한 근본이 하늘에 있음을 소명(疏明)한다. 이때, 손말은 시인에 의해, 하늘이 내려준 신성한 말로서의 자격을 획득한다. 이 시 하나가 시집의 특징을 보여주는 노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따라비 가는 길은 묵언정진 길이다
그것도 가을 하늘 단청 펼친 오름 앞에
어디에 숨어있었나, 놀래키는 물봉선
그래 저 떼쟁이 예닐곱 살 떼쟁이야
선천성 농아지만 그래도 소리는 남아
어마아, 어마 어마아 그때 그 소리는 남아
그때 그 소리만 붉디붉은 꽃으로 피어
꽃을 떠받치는 저 조막만 한 하얀 손
나에게 손말을 거네, 어마아 어마어마
-「따라비 물봉선」 전문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는 시인의 감각은 다양한 모습으로 그 비의(比擬)를 드러낸다. 손말의 서정이 만들어낸 감각은, 손말의 세상에서, 입에서 파생되는 건 소리가 아니다. 따라서, 소리를 듣는 귀의 역할도 필요 없다. 입과 귀가 필요 없는 고요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빛이 없으면 손말을 읽을 수 없다. 손말이 ‘하늘이 언어’라는 건, 소리는 없고 빛만 있는 세상에 있기 때문이다. 그 이미지는 구원자가 세상에 나타날 때 보이는 현상과 비슷하다. 불필요한 잡음이 들리지 않는 세상, 사랑한다는 묵언 외에 말이 필요 없는 거룩한 세상을 시인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