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봄날 무참히 짓밟힌 어떤 사랑,
그리고 어두운 지하실에 갇힌 한 소년의 이야기
어린아이가 자라서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누군가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다. 첫눈에 반하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다가 문득 야릇하고 이상한 감정을 느끼거나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신경쓰게 되거나. 사춘기 청소년의 연애 감정은 당연하다. 한국 사회의 높은 교육열이나 학업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연애가 적극 권장되지는 않지만 십대 시절의 첫사랑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난생처음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것은 얼마나 두근거리고 설레는 일인지. 여러 사람들 중 특별한 한 사람을 알아보고 마음을 준다는 것, 사랑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만약 그 사랑의 대상이 많은 사람들의 통념과 다르다면? 한 남자아이가 같은 반 남자아이를 여느 친구들과 다른 방식으로 좋아하기 시작한다면? 동성(同性)을 사랑한다면?
배봉기의 청소년소설 『햇빛 속으로』는 주인공 수민이가 연극반을 지도하는 예술특기강사, 일명 ‘예쌤’에게 매혹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큰 키에 긴 머리, 패셔너블한 외모, 다정다감하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태도. 고등학생이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이야기란 고전적인 레퍼토리에 속한다. 미숙하고 순진한 주인공이 능력 있는 연장자에게 선망과 애정을 동시에 느끼는 것도 얼마든지 있을 법한 일이다. 문제는 예쌤 정승규가 수민과 같은 남성이라는 데 있다. 더욱이 수민에게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공포와 트라우마가 있다. 4년 전 좋아하는 친구에게 다가갔다가 ‘이상한 놈, 더러운 새끼’라는 욕을 먹고 모욕감과 수치심에 사로잡힌 적이 있는 것이다. 야멸찬 욕설과 경멸하는 눈빛을 대면한 뒤로 수민은 그제야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질까 봐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는 자기 자신을 마음속 ‘지하실’에 깊이 숨기고 억압한 채 조심조심 살아왔다. 늘 함께하는 절친들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성공적이었으나 고2 연극반의 중요한 무대를 앞두고 예쌤을 만난 것이다.
이야기는 예쌤에 대한 마음 때문에, 또 자신의 성 정체성 때문에 고통받는 수민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방황하는 과정을 그린다. 수민은 연극반 연습에 빠지고 예쌤에 대한 마음을 완벽하게 숨기려고 애를 쓰지만 쉽지는 않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일상을 이어갈 수는 있겠지만 지하실에 가둬 둔 ‘소년’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쌤뿐 아니라 연극 무대에 대한 열정도 포기할 수 없는 수민은 예쌤이 출연하는 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을 다섯 번이나 관람한다. 어둠 속 객석에 앉아 자신이 눈에 띄지 않길 바라지만 예쌤은 수민의 문제를 눈치챈다. 그리고 마침내 예쌤이 수민에게 건넨 말. “숨 쉬어. 숨 쉬어야 살아. 그래야 살 수 있어.”
■ 내용 소개
중학생 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느낀 수민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맘속 지하실에 가둔 채 고등학생이 된다. 고등학교 연극반 ‘목소리’에 가입하고 수민은 예술 특기 강사이자 극단 배우인 ‘예쌤’을 만나면서 지하실에 가둔 자신을 다시 보게 된다. 세상의 시선에 맞설 자신이 없어서 끊임없이 맘속의 방황을 겪는 수민에게 연극과 예쌤의 한마디는 힘을 준다. 수민은 방황 끝에 커밍아웃을 택하고, 연극의 막이 오르자 학교 친구들과 인근 학교 학생들 앞에서 온 힘을 다해 솔직하게 커밍아웃을 한다. 이것이 자신의 인생이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기에 앞으로도 한순간 한순간, 진실에 응답하는 삶을 살겠다고 한다. 성소수자 청소년의 고민과 두려움이 잘 드러나고, 세상에 자아를 드러낼 수 있도록 응원하는 청소년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