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에게 ‘조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보통 양반이나 선비의 모습이다. 그러나 조선에는 양반과 선비뿐만 아니라 상인이나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니까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양반들의 삶뿐만 아니라, 상인과 농민들의 삶도 함께 바라봐야만 한다. 그런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처럼 국가 기록에서는 이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도 개인의 일기나 서간집 등 다양한 사적 기록이 발굴됨에 따라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일기나 서간집을 남긴 사람들이 주로 식자층에 속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한계는 있지만, 상인이 남긴 일기도 있는가 하면, 마을 사람들이 남긴 마을의 이야기도 있어 그동안 알기 어려웠던 주변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통생활사총서는 이처럼 조선의 변두리를 살아간 사람들의 일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들을 따라서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조선 사람들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원익, 삶으로 재상의 표준을 제시하다”
저자가 밝히는 대로 이원익은 조선 500년 역사에서 수없이 많았던 재상 중 한 명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원익이 반드시 모든 재상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행정업무 처리능력, 청렴, 재직 기간, 업적 등 무엇으로 보나 재상을 대표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원익은 선조, 광해군, 인조라는 세 왕을 겪으며 모두에게 인정받은 재상이었고 청렴하기로 신하들 사이의 칭송을 받기도 했으나 우직한 삶으로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려 모함을 당하고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전쟁과 반정을 겪거나 모함을 당하여 유배를 가기도 했고 때로는 정면으로 왕의 정치를 비판하기도 했으며, 끝내는 왕의 존경을 받아 최고의 예우를 받기도 했다. 이렇게 볼 때 이원익만큼 오랜 기간을 재직하며 다종다양한 사건을 만난 재상도 드물다고 할 만하다.
그런 만큼 이원익의 삶 자체도 중요한 의미를 지님에도 그보다는 이원익이 보여 주는 재상의 모습 자체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바 또한 대단히 많다. 저자는, 한편으로는 조선의 재상이 차지하는 위치의 중요성으로 인해 재상을 모르고서는 조선 역사를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즉 재상은 조선 정치의 핵심적인 위치에 자리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재상의 표준이라고 할 만한 이원익의 삶을 차근차근 조망하는 것만으로도 조선 정치의 핵심 축인 재상을 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