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에게 ‘조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보통 양반이나 선비의 모습이다. 그러나 조선에는 양반과 선비뿐만 아니라 상인이나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니까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양반들의 삶뿐만 아니라, 상인과 농민들의 삶도 함께 바라봐야만 한다. 그런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처럼 국가 기록에서는 이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도 개인의 일기나 서간집 등 다양한 사적 기록이 발굴됨에 따라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일기나 서간집을 남긴 사람들이 주로 식자층에 속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한계는 있지만, 상인이 남긴 일기도 있는가 하면, 마을 사람들이 남긴 마을의 이야기도 있어 그동안 알기 어려웠던 주변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통생활사총서는 이처럼 조선의 변두리를 살아간 사람들의 일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들을 따라서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조선 사람들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조선시대는 문치주의 사회였다. 따라서 당연히 무관보다는 문관이 대접받았고, 이른바 입신양명이란 문관으로서 과거에 급제하여 중앙정계에 진출하고, 학문으로 이름을 떨치는 것을 뜻했다. 그런데 여기 문관이 아닌 무관의 길을 걸었던 어느 양반가가 있다. 이들은 대체 왜 문관이 아닌 무관의 길을 선택했을까? 물론 문관에 비하자면 급제하기가 수월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관이 되는 게 쉽기만 한 길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예컨대 급제한다고 해서 바로 관직에 임용되는 건 아니었고, 이렇게 임용되지 못한 이들을 부르는 말은 지금도 멸칭으로 쓰이는 ‘한량’이었다. 그럼에도 해주 정씨의 양반들은 무관의 길을 걸었고 그 목표를 위해 함께 힘을 모아 무과를 준비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기호지방 출신 일색이었던 정계에 진출하기 위한 지방 양반의 선택이었고,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결과를 거뒀다. 해주 정씨 중 34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무과에 급제했고 그중 7명은 지역을 빛낸 인물로 기록되기도 했던 것이다. 이처럼 당시 풍토상 일반적이지는 않은 길을 과감히 선택하고, 이를 대대로 이어 나갔던 해주 정씨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조선시대 양반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