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이 할머니가 묻힌 묘역과 나치가 동네 사람들을 가두고 고문하던 성당 동굴, 관을 파는 장의 가게와 같은 흥미로운 에피소드에는 작가 우경미의 유럽 생활 경험이 생생하게 녹아 있어 소설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여기에 상처받은 인물들이 토해놓는 묵직한 대사도 울림을 준다. '물고기를 잡지도, 먹지도 않는' 호수는 어둠과 죄의식을 상징하며 서사가 진행되면서 하나둘 드러나는 자신의 악행을 확인하고 괴로워하는 그는 결국 감당해야 할 반성과 사죄의 시간을 갖는다.
“이곳 사람들은 큰 고통을 갖고 있어요. 아픔은 새로 태어나는 아이에게도 전해진답니다. 시간이 알게 하는 거지요. 어떤 일은 너무 오래 걸리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그걸 가르치다 멈추었어요.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 있으니까요. 성인이 되고 내 생활은 싸움의 연속이었어요. 그런데 거기에 김달이 할머니가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 깨달았어요. 잘못된 일이에요. 그것이 당신을 찾게 된 이유지요.”
사죄의 한마디 말을 얻어듣기까지 많은 일을 겪은, 모자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호수 도시에 그는 와 있었다. 운명 따위는 믿어본 적이 없는 그가 말이다.
-본문 153~154쪽
소설의 제목인 '사물의 눈'은 시국사건에 연루된 뒤 고문을 당하고 실종 처리된 시인의 시에서 암시적으로 드러나며 그 의미가 한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준다.
단편집 『나비들의 시간』 이후 십 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 『사물의 눈』은 한 일본군 위안부를 통해 우리의 불행했던 현대사를 반추시키고 아직 고통이 끝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소설의 결말은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는 절망이 아닌, 현재 이 순간까지 진행되고 있는 역사의 발걸음을 되돌아보고 성찰하게 만든다.
<사물의 눈>의 주된 소재는 위안부다.
우경미는 이 소설을 통해 잔학한 범죄 현장을 고발하거나, 범죄를 저지른 일본인들에게 책임을 지라고 소리 높여 외치지 않는다. 다만 낯선 이방의 땅을 배경으로 소설적 장치를 통해 상처를 드러내 보일 뿐이다. 그런데도 독자들은 잔혹했던 범죄의 현장을 보는 것 이상으로 몸서리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경미의 소설은 때로 디아스포라 문학으로 보이기도 한다. 민족국가의 영토를 벗어나서 이주국에 거주하는 이주자의 삶과 정체성을 다룬 문학이라는 정의에 충실하다면 일견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경미의 소설은 그 땅에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닌 그 땅에서 사유하는 이 땅의 이야기다. 그래서 함부로 규정짓기가 어려운 지점에 위치한 소설이다. 그의 소설적 관점이 독특한 공간에 머물게 된 배경에는 그가 오랜 시간 동안 미국과 영국 등에 거주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국적인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 불면의 밤을 보낸 결과물이 그의 소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